<유럽 가족 소풍 - 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아이와 90일간의 여행> / 문지희 지음 / 홍성사 펴냄 / 304쪽 / 1만 5500원

[뉴스앤조이-김은석 사역기획국장] 저자는 "첫째 아이의 발달장애로 인해 새롭게 시작된 인생 3막을 특별한 선물로 여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렇다. 이 책에는 다섯 살배기 발달장애아의 가족이 90일간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네덜란드, 영국을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가 담겼다. 다섯 살배기 발달장애아를 데리고 세 달간 유럽 여행을 했다는 것도 대단한데, 네 살배기 동생까지 동반했다. 이 정도면 '극한 여행' 아닐까. 초반부 파리 개선문 꼭대기에서 두 아이 똥기저귀를 간 이야기는 이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토록 무모해 보이는 여행 속에서 아이는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가족은 잊지 못할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난다. 용기 있는 모험을 감행한 아이 부모의 내면도 한 뼘 성장한다. 마지막 소풍 이야기에서는 이 가족이 5주간 머문 영국 라브리 공동체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아이가 단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몇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아이가 비록 어떤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이에게 감정이 없거나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가 얼마나 아이에게 내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아이에게 '네 감정을 말로 표현하라'고 다그치면서 정작 나는 얼마나 아이에게 내 느낌과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니, 나야말로 낙제점이었다. 아이에게 매일 하는 말이라곤 '먹어라, 씻어라, 치워라' 등등의 지시어나 명령어가 대부분이었다. 

언제 한번 아이의 눈을 마주보고 앉아서 '오늘 엄마는 이러이러해서 기분이 아주 좋았어. 행복하다고 느꼈어' 혹은 '오늘은 이런 일로 마음이 아팠어. 아주 속상하고 슬펐어', '정말 미안해. 엄마가 이런 잘못을 하다니 정말 부끄럽구나. 너에게 참 미안해.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있던가. 아이는 어쩌면 감정 표현에 대해 배우지 못해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소풍. 프랑스', 53쪽)

"겸이의 마음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분수 저 분수 구경하느라 온통 정신이 들떠 있는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엄마에게 꽃을 주고 싶어졌을까? 다른 아이들처럼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도 못하고, 자기감정을 분명한 말로 전달하지도 않는 아이인지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참 답답할 때도 많았는데 (중략) 겸이가 건네 준 민들레꽃 한 송이는 이런 내 마음을 부드럽게 위로하는 치료제 같았다. '엄마, 나 괜찮아요. 잘 자라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소풍. 독일',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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