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박정희 독재 정권은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한다.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 인사들의 활동을 뿌리 뽑기 위한 극단적 조치였다. 180명이 구속되었고 8명이 사형을 선고받는다. 구속된 사람 중에는 당시 서울제일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박형규 목사도 있었다. 빈민 선교, 인권, 노동, 민주화 운동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온 박형규 목사의 사역과 존재가 독재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조작된 내용만으로 목사가 구속됐다는 소식이 일본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일본의 기독인들은 박형규 목사의 구속 소식을 <뉴욕타임스> 전면 광고란에 싣는다. 전면 광고의 정가운데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그림이 있었고, 좌우에는 한국의 정치 상황과 기독교인들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내용, 그리고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 선언'이 적혀 있었다.

일본의 극우 정권, 반성할 줄 모르는 제국의 잔존 세력들이 막말을 일삼고 다시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꿈꾸며 전진할 때도, 일본의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퇴보를 막는 보루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7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한 한국 기독교 단체들과 NCCJ(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는 '한일 기독교,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아베 정권을 규탄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양국 기독교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높였다. NCCJ와 KCCJ(재일대한기독교회)는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만나 일본 식민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일본의 기독인들은 한국에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던 시절부터 반민주, 독재 세력에 맞서는 든든한 후원자였고,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를 갈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동지와도 같았다. 1970년대부터 이어진 'NCC-URM(Urban Rural Mission) 협의회'는 이러한 한일 기독인 연대의 핵심 역할을 해 온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한일 관계가 얼어붙은 지금도 평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사진 제공 이종건

올해로 12회를 맞은 한일 NCC-URM 협의회가 7월 22~24일, '동아시아의 평화 공동체'를 주제로 오사카에서 진행됐다. 아베 정권의 부당한 수출 규제 조치로 위협받고 있는 양국 관계와 불안한 동아시아 정세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양국의 기독교 시민사회가 만나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협의회는 각 주제에 따른 한국·일본 측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일본의 빈곤 현장과 부락민 차별 현장에 방문하는 두 개의 필드 워크가 준비돼 있었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 개의 주제 강연과 여섯 개의 발제 및 한 개의 특별 보고를 듣고 전체 토론 및 공동 성명서 작성까지 마쳤다.

제12회 NCC-URM 협의회. 사진 제공 이종건

첫 번째 발제 주제 '이주 노동자'에서는, 한국 측에서 NCCK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형묵 목사가 '노동의 위기와 이에 대한 교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사회 노동과 이주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발제했다. 일본 측에서는 지난 2018년, 평생을 재일교포 인권 증진을 위해 사역해 NCCK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사토 노부유키 목사가 발제했다. 한국은 '이주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재일교포와 같이 피해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가해 국가의 위치성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양 발제를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URM이 도시농촌선교위원회의 약자인 만큼, 농촌 섹션 발제도 진행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농어촌선교부 백명기 총무가 '농어촌 선교와 마을 목회'로, 한국 농촌 상황에 필요한 선교방식에 대해 발제했다. 기독교인이면서 기타카타시의회 시의원이기도 한 사이토 진이치 의원은 '방사능 오염과 농업'을 주제로,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건 이후 일본 농업인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과 고통에 대해 발제했다.

마지막 주제는 성적 마이너리티(성소수자)였다. 한국 측에서는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일본 측에서는 일본성공회 고토 카오리 사제가 발제했다.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있어 한국교회 상황이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에 있다는 것, 그러나 일본 교회 또한 성소수자를 제도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것을 넘어 교회의 구성원으로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별 보고로는 젠트리피케이션 등 전반적인 도시 문제와 도시 사회 선교에 관해 옥바라지선교센터가 발제를 맡아 진행했다.

도시, 농촌, 마이너리티, 노동 등 각 주제들을 두 개의 관점을 통해 바라보고, 각 국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서로 간 차이와 공통점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 아래 차별과 빈곤이라는 문제에 있어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한 연대의 가능성 또한 열려 있었다.

마이너리티 발제. 사진 제공 이종건

마지막 날 홈리스, 일용직 노동자의 거리 '가마가사키' 방문이 인상 깊었다.

가마가사키 입구에 위치한 거대한 일자리 알선 센터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단지 일자리를 알선하는 것을 넘어 노숙인 100여 명의 쉼터이기도 했고, 일용직 노동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공공의 공간으로서 기능했다고 한다. 그랬던 센터를 지난 4월, '내진 설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에서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지역 사람들과 활동가들은 내진 설계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속내는 2025년 열리는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위해 보기 싫은 존재들, 즉 홈리스와 일용직 노동자들을 도시에서 깨끗하게 치우겠다는 것이다.

센터를 철거하고 나면 관광버스 주차장을 세운다고 한다. 센터 주변 거리에는 주차장을 만들었고, 주차 업무와 관계없는 경비원들을 세워 놓았다. 거리에는 경찰들이 지나다니고 있었고 무슨 이유에선지 한 노숙인이 연행당하고 있었다.

한국 또한 미관상 이유로 노점상을 철거하고, 서울역의 노숙인들을 쫓아낸다. 관광호텔을 짓겠다고 시민 공간을 축소하고, 안전을 핑계로 세입자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마을을 철거한다. 서울의 도시 빈민, 쫓겨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가마가사키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가마가사키 일자리 알선 센터. 사진 제공 이종건

지난 7월 15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삿포로에서 연행 사건이 있었다. 아베 총리가 선거 지원 유세를 나왔는데 한 시민이 연설 중에 구호를 외쳤다. "아베 사임하라! 돌아가라! 돌아가라!" 구호를 외친 지 10초도 되지 않아 경찰들이 그 시민을 끌어냈다. 아베 총리는 자리를 옮겼지만 또 다른 시민이 구호를 외쳤고, 그 시민 또한 바로 연행당했다. 이 사건은 '반대 의견'을 함부로 낼 수 없는 억압적인 상황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아베 반대'를 외치다 연행당한 삿포로 사람에게 공감한 가마가사키 지역 활동가가, 반대 의견 묵살을 위해 공권력이 개입한 것을 규탄하는 사설을 신문에 낸 것을 보게 되었다. 평소 공권력에 자신들의 공간과 그 공간에서의 주권을 침해당했던 가마가사키 사람들의 경험이, 삿포로에서 연행당한 시민들의 처지와 맞닿은 것이다.

일본의 많은 사람은 각자의 위치와 사정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아베를 반대하고 있다. 나에게는 가마가사키 노동자와 한반도 노동자의 거리가, 오사카 대도시 홈리스와 서울역 홈리스의 거리가, 그들과 아베 사이의 거리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가마가사키 거리. 사진 제공 이종건

한일 NCC-URM 협의회는 일정 동안 진행된 발제와 토론 내용에 따라 '제12회 한일 URM 공동 성명'을 준비했고, 곧 발표할 것이다. 전쟁을 금지하는 일본의 평화헌법 9조 수호에 대한 의지, 일본의 수출 규제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한일 양국 교회 간 연대를 긴밀히 해 나가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노동자, 도시 빈민, 성소수자 권리 보호와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 원인 해결을 위해 교회가 민중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하나님나라를 실현해 나가자는 다짐도 담겨 있다.

제국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일본 내 군국주의자들, 마찬가지로 평화를 두려워하는 한국 내 극우 세력들, 고통받으며 싸움의 길을 걷고 있는 홍콩의 민중들, 미국-중국의 패권주의 등 동아시아의 상황은 점점 미증유의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엄혹했던 시기에도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혐오와 폭력의 시대를 지나올 수 있었다. 이번 URM 협의회와 같이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 및 그리스도인들의 교류가 더 깊어지고 잦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국 민중의 연대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꽃피우길 바라며.

이종건 / 도시 문제 전반에 걸쳐 사역하고 있는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빈곤 문제와 도시의 권리에 대해 관심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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