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루터의 개혁 정신이 살아 있는 모범 교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중앙루터교회

이근복   기사승인 2019.07.24  11:33:43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ad42

"1938년 9월 12일, 장로교단이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의 전투기까지 헌납했던 시기,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그는 교회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교단에서 출교 처분까지 받았습니다. 산골짜기에 들어가 그 암흑의 시절을 보낸 이후에… 여운형 선생은 물론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그를 찾았으나. 그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신사참배로 무너진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이원영 목사)

흰 두루마기를 차림으로 전국을 순례하며 교단을 재건하고자 했고, 그렇다고 신사참배를 강행한 교단 지도부를 공격하지도 않았던 종교인의 품격… 그는 한국 개신교의 자부심으로 기억됩니다. 등록된 신자만 10만 명이라는 교회… 퇴임하고 2년 후에 아들이 자리에 앉았으니 세습이 아니라고 버티는, 이 대형 교회의 억지식 교회법 논란은 오래 이어질 것 같습니다." (JTBC 7월 17일 손석희 앵커브리핑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림형석 총회장) 총회 재판국(강흥구 재판국장)은 7월 16일, 교회는 물론 사회와 전 언론의 관심을 끈 명성교회 세습 사건 재심 판결을 또 미루었습니다. 작년 103회 총회에서 총대들이 세습 금지를 규정한 총회 헌법 취지에 맞게 다시 재판하라고 결의했는데도 이런 상황까지 이른 것입니다.

교회가 1938년 자행한 신사참배가 일제 강압의 산물이라면, 지금의 재심 판결 연기는 명성교회 금권력이 작동하는 수치스러운 사건입니다. 올해 다시 '명성교회불법세습총대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실무준비위원장을 맡은 저는 참담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지난해 총회 결의를 이행하지 못하는 총회 임원회를 탄핵해야 한다는 절규를 들으면서, 최주훈 목사님이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를 바로잡기 위해 2018년 12월 작성한 '신학 소견서'가 떠올랐습니다.

이 신학 소견서는 교단 최고 책임자인 총회장 역시 교단 전체 총의가 모이는 정기총회에서 선출되어 '계약된 직무'로 위임되었을 뿐이라고 밝히면서, 부정과 불법을 저지른 죄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중앙루터교회 당회는 2016년 10월 30일,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 주일에 '김철환 총회장 불신임 결의에 대하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6월 30일, 중앙루터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정면에 자리한 커다란 십자가를 바라보며 제 마음은 숙연해졌고, 말없이 응시하는 것만으로 주님을 떠올렸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거룩한 양식인 성찬이 새하얀 면 보자기에 덮여 있었습니다.

성가대 입장으로 예배를 시작할 때, 찬양대 입장 동선을 따라 회중이 선 채로 몸과 시선으로 응시하며, 성가대와 회중이 연결된 느낌을 얻으며 마음이 더욱 푸근해졌습니다. 150여 명이 드리는 예배에 성찬식이 시작되자물결처럼 교인들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성찬 순서가 다가오자 약간 설렜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최주훈 목사님의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주시는 빵은 보이지 않고, 넣어 주시는 사제의 검은 눈망울이 깊은 호수처럼 크고 깊어 보여서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아멘.'

빵을 입에 넣고 기도하면서 놀란 정신을 다독였습니다. 아무래도 예수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저의 죄가 떠올라 부끄럽고, 신선한 힘을 얻어서 기뻤습니다. 예배당에 거룩하고 기쁨 가득한 기운이 뭉게뭉게 가득했습니다." (너른들교회 유희정 집사 글에서)

7월 14일, 중앙루터교회에서 예배하고 나오면서, "루터의 신학을 목회 현장에서 구현하는 바른 교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점심 식사를 나누고 헤어질 때, 최 목사님이 "이걸 꼭 봐야 한다"는 말뜻을 '지원상목사기념기도실'에 들어가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작은 성소였습니다.

중앙루터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3년 과정으로 진행하는 '목회자 기독교 고전 읽기' 2년 차에 접어드는 올해는 마르틴 루터의 저서로 시작했는데, 강사가 최주훈 목사와 강치원 목사였습니다. 최 목사님은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루터를 전공했고, 강 목사님은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종교개혁과 경건주의를 연구했습니다. 두 강사는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독일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서주>, <그리스도의 자유>)을 발제하면서, 복음과 교회의 본질 및 역할에 대해 핵심적으로 강의했습니다.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관심이 큰 '만인사제직'에 대해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영적 신분에 속하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 구별 외에는 아무 차이도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성직자와 평신도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창했습니다. 자기를 위한 직업은 성직이 아니고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직업이 성직이라는 루터의 '직업소명론'은 거룩의 영역을 일상과 노동의 현장으로 확장해 세속 직업에 영적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는 루터가 말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이웃 안에서 산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신칭의'以信稱義(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 받는다)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단순한 개인 구원의 선포로 받아들여 루터의 핵심 사상을 왜곡하는데, 다른 발제자인 강치원 목사는 루터의 말을 인용하며 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루터는 "만일 믿음이 의롭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면 왜 선행을 명령했는가?", "하늘의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저 도와준 것과 같이 우리도 몸과 행위를 통해 이웃을 거저 돕고, 각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자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흘러가야 한다"고 썼습니다. 더욱이 <공동 기금을 위한 조례>에서는 "궁핍한 사람을 돕고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사랑보다 더 큰 예배는 없다"고 소개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개혁 운동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갔소. 말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온몸으로 저항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종교개혁 운동의 도화선이 된 '95개조 반박문'에 담긴 의미를 바르게 알 수 있었습니다.

최 목사님은 논제의 핵심은 1조에 있다고 하며, 루터가 "우리의 주요 선생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회개하라' 명하실 때, 그 회개는 우리의 전 삶이 돌아서는 것이다"고 성서를 해석한 것이 보속 개념과 연옥을 만든 중세 교회 교리 시스템을 흔들었다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가 1000년 이상 불변의 진리로 내세운 라틴어 성경 <불가타>는 마태복음 4장 17절을 "죗값을 치러라. 천국이 가까웠다"로 번역했고, 이를 이용한 교회는 보속 교리를 만들고 재산을 불리고 기득권을 수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루터교회가 매우 드물고(49개 교회) 생소하지만, 루터교인은 전 세계에 약 8700만 명이 있습니다. 장로교인 5000만 명보다 많고, 세계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한국루터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맹해 활동 중입니다.

우리나라가 루터교회와 인연을 맺은 사건으로는 독일인 방문 선교사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가 1832년, 충남 보령시 고대도에 들러 한문 성경과 전도지를 돌리고 감자와 포도나무 재배법을 가르쳐 준 일이 있습니다. 한국 루터교회는 미국 루터교회의 한 교단인 미주리시노드(synod)가 1958년 1월 13일, 박덕인(Paul Bartling), 지원용 등 4명의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다른 교단 선교 정책과 달리, 미국 루터교회 선교사들은 '교회를 섬기는 교회'라는 정책을 세워 '루터란아워'로 방송 선교와 통신 강좌를 진행하고, 컨콜디아사 출판사로 문서 선교를 했고, 베델성서로 성경 공부를 보급하며 한국교회에 자양분을 제공했습니다. 저도 신학교 시절, 유머가 넘치는 지원상 목사님이 이끈 베델성서에서 성서를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1986년에는 루터대학교가 학력 인가를 받아 인재 양성에 나섭니다. 첫 루터교회는 1959년 서울YMCA 회의실에서 시작한 임마누엘교회(도봉교회)입니다.

중앙루터교회는 1967년 1월, '삼위일체교회'라는 이름으로 박덕인 선교사를 담임목사로 하여 창립했습니다. 그해 5월에 지원상 목사가 2대 담임목사가 되었고, 1975년에 중앙교회로 바꾸고 루터교센터로 건축된 새 교회당에 입당합니다. 2010년 5대 담임목사로 최주훈 준목이 청빙되어 이듬해 담임목사로 취임했습니다.

2017년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펴낸 기념 문집의 '희년을 맞는 우리의 다짐'에 중앙루터교회 정신과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종교개혁 정신의 실천' 2항은 "우리는 개혁자 루터의 정신을 따라 바른 신앙을 견지하며 교회 개혁과 공의로운 세상을 도모한다"고 했고, '거룩한 사귐의 공동체' 3항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각자 맡은 일에 성실하며 서로 연합하여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고 하며, '모범이 되는 신앙인' 2항에서는 "우리는 복음으로 자유케 된 양심에 따라 재물, 명예, 권력 등 세속적 가치의 도전을 이겨낸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기념 문집에는 교인 91명이 참여한 설문 조사를 분석한 내용도 나옵니다. 중앙루터교회의 장점은 은혜로운 설교이고, 신앙생활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며, 교회의 진정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과 헌신을 감당할 의향에 대해서도 70% 정도가 긍정하는 점을 볼 때, 미래가 밝습니다.

앞으로 중앙루터교회는 명성교회와 사랑의교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으로 자존심이 무너지고 상처 입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의 그루터기가 될 것입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교회활력화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쳤다.

ad47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동영상 기사

default_news_bottom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