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 /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 정영목 옮김 / 까치 펴냄 / 464쪽 / 2만 3000원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1417년, 근대의 탄생>(까치)으로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하버드대학교 스티븐 그린블랫 교수가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 관한 역사를 정리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짤막한 아담과 이브 내러티브가 역사에서 어떤 식으로 소개되고 소비돼 왔는지 추적한다. 기독교 관점에서 쓴 책은 아니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둘러싼 역사를 유대교·기독교·이슬람 등의 종교와 문학·회화 등 예술 및 철학 분야를 넘나들며 살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존 밀턴의 <실낙원>, 라 페이레르의 <아담 이전 사람들>에 얽힌 일화가 읽는 맛을 더한다. 아담과 이브 관련 삽화도 실렸다. 부록으로 클레멘스, 그레고리우스, 마르틴 루터 등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 대한 '해석의 예들'과 이집트, 그리스, 시베리아, 토고 등에서 전해지는 인류에 대한 '기원 이야기의 예들'을 수록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유혹과 순수 상실의 일차적 원천을 여자에게서 찾지 않았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찾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존재의 드라마에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중심 삽화로 만듦으로써, 수백 년 동안 첫 여성이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소용돌이 친 여성 혐오의 흐름이 쏟아져 나오게 될 수문을 열었다. 랍비 전승이 이브에게 핵심적인 책임을 묻는 일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거나 <쿠란>이 아담과 이브가 똑같이 과실이 있는 것으로 기술했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형성기의 기독교가 로마의 사회적 질서에서 억압받던 노예나 범죄자 등과 더불어 여성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축복받은 자들의 식탁에서 자리를 내주었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와 그 뒤의 수많은 신학자들이 인류에게 닥친 재앙의 책임을 주로 아담에게 물었다는 점도 중요하지 않았다. 교회 안팎의 다른 많은 권위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이브에게 거의 전적으로 책임을 물었다." (7장 '이브 죽이기', 152쪽)

"수치가 지배하는 중세 초기의 아담과 이브 묘사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예외는 비극적 파국을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가기 전, 즉 이야기의 앞쪽 부분에 관한 것이다. 현재 피렌체 바르겔로박물관에 소장된, 400년경의 아름다운 상아조각은 이름을 받으러 온 동물들과 함께 있는 아담을 보여 준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군대를 사열하는 장군처럼 그들 앞에 서 있지 않다. 대신 마치 유명 동화 작가인 모리스 샌닥의 그림에서처럼, 곰과 사자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함께 일종의 꿈의 공간에 떠 있는 듯이 보인다―자신들의 벌거벗은 상태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더 흔한 것은 창조의 장면들로, 특히 이브의 창조 장면이다. 아담은 누워서 자고 있고, 하느님은 그의 옆구리에서 이브의 형태를 끌어낸다. 둘 다 벗고 있으며, 손으로 몸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여기에서 우리는 몸이 그 불명예에 대한 자각을 드러내지 않는 순간에 들어와 있다." (8장 '체현',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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