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전국 교육청이 지난 한 달간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11개 재지정을 취소했다. 기독교 사학도 4곳(안산동산고·배재고·신일고·이대부고) 포함됐다. 지역 명문으로 꼽히던 이 학교들은, 처분이 확정되면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정부와 각 진보 교육감들 공약이었던 만큼, 이 기조는 앞으로도 유지될 전망이다.

자사고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는 대신, 일반고 대비 최대 3배 이상 등록금을 받을 수 있다. 학생 선발이 가능하고 교육과정 운영에서도 일반고보다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이를 두고 교계에는 '종교교육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주장과 '입시 명문화를 꾀하려 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이번 재지정 취소를 놓고도 반응이 다르다.

기독 사학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자사고를 폐지하면 종립 학교 정체성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자사고 자체가 기독교적이지 못하며, 일반고 사학도 충분히 건학 이념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같은 쟁점을 놓고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박상진 소장)는 7월 12일 장신대에서 '기독 자사고 재지정 취소, 어떻게 볼 것인가' 긴급 토론회를 주최했다. 토론회에서 나온 쟁점을 정리했다.

자사고 11곳의 재지정이 취소되면서 자사고 존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11곳 중 기독교 사학도 4곳 포함돼 있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는 기독 자사고 폐지를 맞아 긴급 토론회를 열고, 자사고 폐지 논란에 관해 논의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자율형 사립고' 표현은 모순?
"사학이면 자율성 당연히 있어야,
정부가 고교·학생 간 갈등 조장"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소장 박상진 교수(장신대)는 '자율형 사립고'라는 말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사립고라면 당연히 자율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자율형 사립고'라는 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본질은 사립학교와 국·공립학교 간 문제다. 그동안 정부가 사립학교의 정체성을 제대로 살려 주지 못했다. 자사고 문제에는 한국의 모든 교육 이슈가 다 들어가 있다. 수월성 교육이냐 평등성 교육이냐부터, 기회균등의 문제와 자유의 문제, 학교 선택권이 부모에게 있어야 하는지 국가 주도적이어야 하는지 다 들어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적 문제도 혼합돼 있기에 복잡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진 교수는 기독 사학 위기가 불거진 두 가지 원인으로, 군사정권 시절 시행된 고교 평준화 정책과 대광고등학교 강의석 군 채플 거부 사건을 꼽았다. 박 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헌법적 근거도 없이 학생 선발을 하지 못하게 하고 교육과정을 획일화했다. 사학의 종말을 고하는 제도였지만 강제 시행으로 큰 문제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강의석 사태는 학교와 학생 모두 피해자라고 했다. 선발권이나 종교교육의 자유가 없는 사학과, 마찬가지로 종교의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학생 간 다툼이었다는 것이다. 국가 교육정책 때문인데도, 국가가 아니라 대광고와 강의석 군이 각각 재판의 피고와 원고가 되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당시 대광고 사태를 보며 자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종교교육의 자유를 구가하고 건학 이념을 살리려면 학생들이 원해서 들어오는 방식이어야 한다. 실제 그 이후 기독교 학교들이 자사고로 전환한 이유도, 정부 보조금을 일체 받지 않는다면 기독교 정신을 구현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자사고 논란 역시 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자사고는 2002년 김대중 정부 때 자립형 사립고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후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그는 "자사고를 세밀하게 디자인하고 그 취지대로 학교가 운영될 수 있도록 지도·계도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사학들이 원래 도입 취지와 달리 입시 위주 학교가 되었다면, 그 학교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지만 1차적으로는 (자사고를) 디자인한 국가 책임"이라고 말했다.

재지정 탈락 안산동산고
"틈만 나면 '폐지' 외친 교육감, 의도적"
대광고 "교육과정 자율화 담보로
재정 지원하지 않는 것은 부당"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비판적인 기독 사학 관계자들 발언이 이어졌다. 이번 평가에서 재지정 취소된 안산동산고 조규철 교장은 "교육청이 자의적으로 채점하고 점수를 매겼다"며 평가가 불공정했다고 말했다.

안산동산고는 2014년에도 재지정이 취소됐으나, 교육부 부동의 절차를 거쳐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5년마다 도래하는 이번 평가에서 또다시 재지정 취소됐다. 조 교장은 "교육청이 감사할 때 최대 12점을 감점할 수 있는데 우리는 -12점을 고스란히 받았다. 74.06점을 받아 통과 대상이었으나 감점 12점 때문에 62.06점이 됐다. 평가 지표를 보면 얼마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지 알 수 있다. 이재정 교육감은 틈만 나면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전국 단위 자사고와 광역 단위 자사고 사이에도 불평등이 있다고 했다. "전국 단위 자사고는 대기업(포스코 광양제철고, 현대 청운고 등)에서 하지 않나. 기업이 학교에 투자하더라도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기 때문에) 손해 볼 게 없다. 반면 우리 같은 광역 단위 자사고는 없는 돈으로 법인 전입금을 만드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안산동산고에만 1년에 10억 이상 들어간다"고 하소연했다. 안산동산고는 안산동산교회가 운영한다.

조 교장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교육과정이 자유롭지도 않다고 했다. 그는 "국·영·수·한국사에 대한 교과과정 편성 비율이 50%를 넘지 못한다. 네 과목 수업 비중이 50%를 초과하면 자사고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 주문형 강좌라는 추가 수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광고 교목실장 우수호 목사는 정부가 보조금은 주지 않고 등록금만으로 운영하게 하는 현 실태를 비판했다. 우 목사는 "대광고가 자사고로 전환한 후, 한 어머니가 아이를 자사고 보내려고 식당 일을 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돌아가신 적이 있다. 자사고에도 어려운 애들 많고 중간에 이탈하는 애들도 있다. 그런데도 국가는 원하는 교육과정을 밟으려면 등록금을 세 배 더 내라고 한다. 사학의 자율권을 담보로 국가 재정권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우 목사는 이번 재지정 평가 자체가 자사고의 줄 세우기라고도 비판했다. 그는 "이번에 재지정 취소된 상산고는 아마 교육부에서 부동의 절차를 거쳐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면 전국 단위 자사고는 다 살아남게 된다. 우리(대광고)는 학생 선발권도 없다. 토익·토플 점수 반영도 못하고 추첨으로 뽑아야 한다. 결국 힘없고 돈 없고, 교육청 시키는 대로 눈치 보는 자사고는 떨어지고, 힘 있는 학교는 다 살아남는 건가. 안산동산고 역시 피해자"라고 말했다.

우수호 목사는 자사고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학생 선택권을 들었다. 그는 "교육청은 종립 학교더라도 과목 선택권만 주면 종교 인권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신앙은 삶이지 않나. 과목 하나 가르쳐서 건학 이념을 추구할 수 있겠나. 학교 오면 같이 손잡고 기도하는 등 종교교육은 습관의 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웅 변호사(이명웅법률사무소)는 자사고 도입은 헌법에 기반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에 따르면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자유를 일방적으로 말하지도 않고, 평등을 일방적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고교 평준화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자사고가 설립된 것"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 헌법이나 법률이 아닌 시행령과 교육청 내규로 재지정 여부를 평가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봤다. "100점 만점에 70점이라는 기준은 시행령에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70점 미달이면 자사고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가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는 상식과 사회적 통념에 반하고, 교육감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소지가 높다. 사학처럼 중요한 제도를 행정부가 시행령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흩트리는 것이고, 권위주의 시절 법률 대신 시행령으로 규정하던 현상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자사고 반대 여론이 높은 것도 폐지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헌법은 애초 소수자 권리도 전제한다. 여론조사 결과 다수 학부모 논리라서 (자사고 폐지로) 간다는 것은 헌법 가치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 출발 자체가 잘못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교육,
줄 세우는 게 기독교 교육인가"

이날 토론자 중 유일하게 자사고 폐지를 주장한 김영식 대표는, 기독교적 가치에서 봤을 때 자사고는 서열화를 부추기고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몰아가는 폐단이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자사고 존치를 주장하고 재지정 평가가 부당하다는 발언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좋은교사운동 김영식 공동대표만이 유일하게 자사고 폐지를 주장했다. 김영식 대표는 "재지정이 되건 안 되건 통과 여부로 그 학교를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떨어진 학교 중에서도 좋은 학교는 많다. 그러나 우리가 봤을 때 태생적으로 '좋은 자사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좋은 자사고가 없다는 말은 출발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김영식 대표는 "현실에서는 대입을 잘 준비하기 위해 자사고를 가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사고 들어가기 위해 학원 다니고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입시 설명회에 가 보면, 자사고 입시에 맞춰 학생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 주고, 강남 학원가에서는 자사고 입시반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좋은 대학 가려는 게 나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입 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태생적으로 선발과 선별 과정이 있어야 한다. 좋은 학습 분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니 부모들은 자사고를 선호하게 되고, 자동적으로 고교 서열 체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대표는 학생을 선별해 뽑는 자사고 체제는 교육학적 측면에서도 해롭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란 환경과 조건이 비슷한 친구들과 있으면 학생들 사이에서 갈등할 일이 많지 않다. 문제는 졸업 이후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살기 위한 소양을 기르기 어렵다. 균질한 환경은 특권 의식이 자리 잡는 데 좋은 조건이기에, 교육학적 측면에서도 분리 교육보다 통합 교육을 권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대표는 기독교 사학과 자사고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은사와 능력을 자기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나온다. 그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서열 체제를 통과하는 것은 자기 배경과 노력을 가지고 취득한 권리로 인식된다. 명문대 다니는 학생들이 과 점퍼에 고교 이름까지 새기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선발과 선별을 통해 특권 의식을 주는 게 기독교 정신과 부합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식 대표는 "기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학교를 세우고 좋은 기독인을 세우는 일에 한국교회가 앞장서 왔다. 사회 기여의 통로라는 점도 동의한다. 철저히 기독성을 유지할 때 선교 전략으로서의 기독교 학교가 빛을 발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사고를 운영하는 한 교회 집사와 대화하는데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애들 서울대 보내는 게 기독교 교육이냐'고 되묻더라. 선교 초기 누가 예수 믿었나. 양반 대신 부녀자·노비·천민·주정뱅이들이 예수 믿었다. 지금 자사고에 이런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자사고 틀이 아니더라도 기독교 학교들이 충분히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의 다양화 환경이 조성되고 있고, 숭의여고처럼 일반고 중에서도 종교교육, 채플, 기도회 등을 열정적으로 하는 학교들도 있다고 했다.

단, 김 대표 역시 평가를 통한 재지정 취소에는 부정적이라며 당장 재지정을 취소하지 말고 5년 후 운영 종료 등의 '일몰제' 도입을 통해 전환하는 게 좋다고 봤다. 재지정 취소된 기독교 사학의 종교교육 문제와 관련해서는 "학생들에게 배정 회피권을 부여하는 등 그 학교의 기독교 교육이 싫으면 다른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소장 박상진 교수는, 교계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보수는 자사고 옹호, 진보는 자사고 폐지 같은 이념적 논리로 사안을 접근하지 말자고도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질의응답 시간에는 김영식 대표에게 질문이 몰렸다. "자사고가 다 나쁜 것이냐", "공부가 달란트인 사람에게 다양성 요구는 오히려 힘든 것 아니냐", "공부 잘하는 게 죄이고 부모 잘 만나는 것이 죄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김영식 대표는 "자사고 제도 자체를 지적하는 것이지, 특정 학교들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제도와 학교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뿐 아니라 안철수·유승민·심상정 등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후보들이 자사고 폐지를 공약했다는 것은, 이들이 모두 사회문제를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면서 사람들이 사학을 선호한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엄한 규율과 입시 공부 강하게 시키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자녀를 사학에 보내기 원했다. 일종의 개인 욕망이 투사돼 왔다는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최소한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욕망대로 하기보다 보편 교육을 지향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상진 교수는 토론회를 마치며 "이제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사학의 중장기적 로드맵을 짜야 하는 시점이다. 교계가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특별히 기독교 사학만이 아니라 좋은교사운동과도 함께해야 한다. 기독교 사학이 좋은교사운동마저 설득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적 대안을 내놓기 어렵다. 앞으로 기독 사학 정체성 회복을 위해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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