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얼마나 대화하셨나요? 당신의 공동체는 평소에 얼마나 대화하시나요? 대화는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을 나타내는 필수적인 표지입니다. 대화는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시켜 줍니다. 또한 우리는 대화를 통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통의 목표를 향해 협력합니다. 우리 몸속 혈액이 끊임없이 흐르듯,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제대로 대화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을까요? 글쎄요, 제가 자라면서 본 어른들은 대개 목소리 크기로 승부하는 말싸움의 대가들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할 학교에서는 오히려 서로를 경쟁자로 보도록 부추겨, 마음을 열고 소통할 친구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미디어에서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프레임을 씌우며 상도덕도 없는 댓글 논쟁이 벌어집니다. 조직에서는 수직적 소통 방식이 지배적인데다 대화나 질문을 시도하면 건방져 보이기 일쑤지요. 우리는 아직 진정한 대화를 하긴 힘든 열악한 환경과 사회에서 살고 있는 듯합니다.

2018년 제1회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를 준비하며 걱정했던 게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과연 한국에서 토론다운 토론, 대화다운 대화가 가능할까?' 그러나 저의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2018년 5월 24일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에서 우리는 '대화의 정석'을 경험했습니다. 한국 첫 베리타스 포럼 스피커셨던 강영안 교수님(칼빈신학교)과 우종학 교수님(서울대학교)은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로 강연 후 토론을 진행하셨을 뿐 아니라, 청중 질문에도 겸손하고 명확하게 답하면서 '대화'를 하셨습니다.

기독교 철학자와 기독교 과학자가 존재와 진리라는 중요한 주제로 '대화'가 가능했다는 것,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과 일반 학문의 관계성을 이야기하며 기독교와 세상의 '대화'에 도전해 성공했다는 사실은 한국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놀라운 수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화를 들은 청중들은 강연이 끝나자마자 소그룹으로 흩어져 역동적인 또 다른 '대화'들을 이어 나갔습니다.

<대화 - 철학자와 과학자, 존재와 진리를 말하다> / 강영안, 우종학 지음 / 복있는사람 펴냄 / 216쪽 / 1만 3000원. 사진 출처 복있는사람

포럼 이후로도 두 교수님들이 직접 만나 대담을 하며 두 분의 콜라보 역작 <대화 – 철학자와 과학자, 존재와 진리를 말하다>(복있는사람)가 출판되는 일이 펼쳐졌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이 귀한 책을 선물해 주시며 서평을 쓸 특권을 주셔서, 작년 베리타스 포럼의 흥분을 상기하며 억제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로 하룻밤 만에 책을 다 읽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누미노제'의 경험을 했습니다.

책 전반에 걸쳐 두 교수님 역시 '대화 부재'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또한 대화 부재 문제는 공부를 오래 하신 학자와 전문가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가나 학자는 결국 다면체인 진리의 한 면을 깊이 분석하고 파는데, 서로 대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쓴 안경으로 파악한 진리의 일면을 다면체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기 쉽습니다. 각자 분야에서 실력과 전문성을 갖추는 일은 참 귀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다른 영역 전문가들을 존중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더 통합적이고 온전한 진리에 함께 대화하며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논조였습니다.

특별히 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1세기에 우리가 경계할 것은 과학지상주의라는 안경입니다. 모든 것을 자연과학을 탐구하는 실증주의 방법론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인간의 이성을 과도하게 신봉해 객관성이라는 허구에 빠져 있는 근대적 신앙입니다. 그런 환원주의적 사고방식과 자연주의 종교가 판치는 과학계에서, 과학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과학의 한계를 명확하게 이야기하며 형이상학적 담론까지 펼치시는 두 교수님의 대화 세계는 신선하고 풍성했습니다. <대화> 전체 뼈대를 정리하면서 구체적으로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적어 보겠습니다.

강영안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 책의 1장을 맡은 과학자 우종학 교수님은 먼저 다섯 가지 우주의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우주의 광대함과 경이로움, 우주의 합리성과 수학적 특성, 우주의 우발성과 지성의 출현, 인간이 우주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독특한 역사로 기술되는 우주 등입니다. 이 특성을 발견해 내는 데 과학만큼 유용한 진리 탐구의 도구가 없지만, '왜 우주는 이런 특성을 가져야 하는가'는 과학으로 답할 수 없다는 겸손하고도 열려 있는 결론을 내립니다.

더불어 과학적 지식 자체의 한계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험의 다면성과 실재의 다층성 그리고 경험의 배반으로 인한 경험적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과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이 사실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을 넘어서 '과학주의 무신론'과 '기독교 유신론'이라는 형이상학과 세계관에 대해서도 논하며 진정한 진리는 '증명'이 아닌 '헌신'을 요구한다는, 현대 과학자답지 않은(?) 신실한 그리스도인 학자의 담담한 신앙고백을 보여 줍니다.

2장을 맡은 철학자 강영안 교수님은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누구든지 따라올 수 있도록 차근차근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전개합니다. 첫째 부분에서 강 교수님은 가장 근원적 물음인 "왜 무엇이 없지 아니하고 있는가?"를 통해 분과로 존재하는 개별 학문들이, 두더지굴이 결국 아래에서 하나로 연결되듯 이어진다고 이야기를 꺼냅니다. 각 분과 발전도 중요하지만 상호 영역 간 통합 존재론의 이해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이 큰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세 가지 길인 반실재론(유럽 철학), 철학적 자연주의(영미 철학) 그리고 유신론 입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프로타고스, 임마누엘 칸트, 푸코와 리처드 도티 등으로 이어진 반실재론 흐름을 이야기한 후 이것이 갖는 모순점과 위험성을 다룹니다(물론 이 학자들의 기여를 결코 평가절하하지 않습니다). 다음 선택지인 철학적 자연주의는 결국 우리 인간의 앎의 기준과 근거가 무너지는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신론은 철학적 자연주의가 줄 수 없는 앎의 근거를 제공하며, "왜 무엇이 없지 아니하고 있는가?"라는 궁극적 질문에 세 개의 대안 중 유일하게 '인격적인 하나님의 창조와 사랑'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점을 짚어 줍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기독교 유신론 입장이 경험의 중요성, 존재론적 근거, 우리 삶의 자율성과 목적과 의미를 모두 제공해 주는, 논리적이면서도 욕망할 만한 세계관임을 밝힙니다.

우종학 교수. 뉴스앤조이 최승현

사실 이 책의 절정은 마지막 3장입니다. 두 교수님의 대담을 통해 더욱 선명하면서도 역동적인 진리가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두 분 모두 비판적 실재론 입장을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하며, <과학혁명의 구조>로 유명한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받아들이는 정도 차이에서 미묘한 갈등이 보이는 듯하더니, 결국 공동체의 중요성에 동감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입니다. 마치 짜지도 않았는데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합주라고 할까요.

대담을 맺으면서는 실제적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주일 교회 예배와 주중 공부와 일터가 이분법처럼 나뉘는 한국 기독교의 게토화한 풍토를 비판하는 데는 두 분 다 거침이 없습니다. 특별히 공부하는 기독 학자들과 학생들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지지가 없거나 미미한 실상에 탄식하며 안타까워하십니다. 더불어 변화의 첫 걸음으로, 교회 내에서 질문하고 대화하는 분위기를 장려하는 인격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읍니다.

그럴 때 세상 가운데 판치는 과학적 무신론과 혐의론적 무신론, 다원주의적 문화, 소비주의 등 왜곡된 진리와 싸울 수 있는 그리스도의 용사들을 키워 낼 수 있으니까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말한 클레멘트 말처럼,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당당하고 예의 바르게 주장하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대화하는 기독 인재들을 키워 내야 할 것입니다.

고려대에서 두 교수님을 모시고 제1회 베리타스 포럼을 진행하고, 이 강연과 대담을 확장판이자 심화 버전인 <대화>를 읽을 수 있어 학부생인 저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더불어 책 서문에 강영안 교수님이 제 이름을 언급해 주며 고마움을 표현해 주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수고를 기억하시고 한참 후배인 저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교수님의 겸허함은 바로 이 모든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덕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기독 지성 강영안 교수님과 우종학 교수님 두 분의 강연과 대담이 헛되지 않도록, 기독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며 끊임없이 공부해야겠습니다. 신앙과 학문의 대화가 가능한 기독 행사와 대화하며 씨름하고 성장하는 진리 탐구 공동체를 함께 세워 나가고 싶습니다. 이러한 열정과 꿈이 있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책을 읽고 함께 대화하며 대화의 공동체를 일으킵시다, 한국에 기독 지성 운동이 다시금 꽃피도록.

신진 / 제1회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스텝&MC, 전 고려대기독학생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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