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홍선 목사 ⓒ뉴스앤조이 이승균
성락교회 수석부목사 출신으로 처음으로 김기동 신학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허홍선 목사(워싱턴침례신학대학 교수)는, 한국교회에 알려진 김기동의 이단성은 귀신론에 집중된 것으로,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심각성을 모르는 일부 목회자나 교인들은 "예수님도 귀신 쫓았는데" 하면서 한국교회의 김기동 이단 정죄를 동정하는 시각이 없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허 목사는 "김기동 목사는 한국교회의 이단 정죄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며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신학교를 세워 자기의 주장을 체계화하였고 성락교회의 목사 고시 문제를 자신의 저서에서 출제하는 등 그 목소리를 높여 왔다"고 보고 있다. 과연 허 목사가 지적하는 김기동 신학의 이단성은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


<김기동 신학에 대한 비판>

김기동 신학은 세 하늘과 세 영적 존재 및 이 주제에서 파생된 마귀 진멸과 예수 그리스도의 후사론 등이 핵심이다. 이 주제를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1. 세 하늘에 대하여

김기동은 우주 하늘을 3차원 세계로 국한시키고, 우주 밖, 또 다른 영계의 하늘인 신들의 하늘을 제시했다. 우주는 물질계의 하늘로 이를 음부 혹은, 감옥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우주의 하늘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또한, 영계의 하늘을 '우편 보좌'라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이름을 두었다고 말한다. 영계의 하늘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들어가는 곳으로, 성도들에게 일정한 공간개념으로 소개하고 또 성도들도 가야 할 곳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김기동이 말하고 있는, 이 '신들의 하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공간과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 개념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동은 하나님 아버지는 신들의 하늘에 계시지 않음을 말한다. 따라서, 그의 주장에 의하면 신들의 하늘 밖에 아버지가 계시므로, 세 하늘이 아니라 네 하늘이 되고 만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이 세상 임금에 대한 선전포고는 '신들의 하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에서 나온 것이다. 김기동은 율법은 신들의 하늘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보낸 것이고, 복음은 아버지 품에서 나온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기동이 말하는 '신들의 하늘'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가 아닌 것이다.

2. 세 영적 존재에 대하여

김기동은 성경에 나타난 전혀 본질이 다른 세 영적 존재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의 영혼'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영(신),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 등을 다루고 천사에 대해서는 여호와의 사자, 천사장, 타락한 천사 루시퍼, 미혹의 영,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도 '나 영혼'과 불신자의 사후 존재인 귀신, 그리고 네피림, 하나님의 자녀 등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위상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하나님을 본다면 하나님이 넷이 되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천사로 본다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예수의 아버지이심을 부인하게 되는 것이므로, 정통 신학과 큰 마찰을 빚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3. 마귀 진멸의 신학에 대하여

김기동은 '신들의 하늘'에서 천사가 하나님의 이름, 곧 하나님께 도전하였기에 여호와의 사자가 반역한 천사를 가두기 위한 감옥으로서 우주를 창조하여 사탄을 구금하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법이 없는 데도 범법자를 감금시킨 것으로, 공의의 하나님과 상치되는 일이다. 차라리 천사의 반역이 '신들의 하늘'에서는 심증적으로 있었으나, 선악과라는 법을 정해 놓은 에덴동산에서 천사의 반역을 검증했기에 심판과 형벌을 주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 보다 온당할 것이다.

더욱이 마귀 진멸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을 받아 천사가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있을 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심"을 믿는 우리 믿음과는 분명히 다르다. 특히, 인간이 천사의 형상으로 지어져 마귀 진멸을 위한 도구로 창조되었다는 신학은, '인간을 위한 천사'가 아니라 '천사를 위한 인간'으로 전도(顚倒)시켜버렸다는 점에서도 크게 잘못된 주장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후사설에 대해서

김기동의 후사설은, 천사의 타락과 연계하여 여호와라는 천사에 의한 우주의 창조(천지창조)를 설명하는 이유가 된다. 베뢰아에서는 천(天)은 '신들의 하늘'을 말하고, 지(地)는 '우주의 하늘'을 말한다. 그리고, 마귀 진멸은 하나님의 아들이 신들의 하늘의 보좌에 오르기 위한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고, 인간 구원은 마귀 진멸의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전통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후사설은 예수가 겸손과 순종으로 고난을 짊어지고 죽으시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시고 하늘의 후사로 세우시는 결과적인 사건인 것이다. 하지만, 김기동은 이와 반대로 후사설을 제1의 목적으로 규정하여 예수가 오신 목적은 신들의 하늘에 상속자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김기동의 주장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문을 통하여 신들의 하늘로 가는 것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요 16:28),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성경은 김기동의 주장과는 달리 예수께서 부활하여 신들의 하늘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감을 명맥하게 증거하고 있다(참조 요 3:13; 6:62; 13:3; 14:28). 그러므로, 예수가 신들의 하늘로 올라간다는 김기동의 후사설은, 후사가 목적이 됨으로써 인간과 세상에 대해 하나님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신론(理神論)적인 경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김기동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자로서, 하늘이 없어도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하늘과 아버지가 동시에 계시다고 하는 것은 이원론에 속하는 일이기에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 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과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하늘과 아버지를 분리하여 말하지 않는다. 마태복음의 '하늘나라'가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나라'로 소개된다. 이는 하늘과 아버지가 동격임을 말해 주는 단적인 증거인 것이다.

계시의 문제에 있어서도 김기동은 양태론적인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천사라는 영으로 계시하시고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육체로 계시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 김기동은 여호와와 예수를 동격이라고 했으나, 이제는 천사로 계시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을 단순한 천사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부인한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이 전해 준 구약성경을 경원시하는 신학인 것이다.

또한, 김기동은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이유로 요 1:18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라는 천사로서 볼 수 있는 형상을 가진 존재로 계시되었기에(참조 갈 3:19;행7:8), 예수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직접 말씀하셨으며(요 8:25),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라고 말씀하셨다.

5. 결론 : 교회사적인 고찰과 신앙윤리

▲김기동의 신학은 정통 신학과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다. ⓒ뉴스앤조이 이승균
과연 김기동 신학은 그 신학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종(種)의 신학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는 교회사에서 김기동과 유사한 주장을 했던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이단으로 정죄 된 마르시온이다. 마르시온은, 플라톤의 우주생성이원론을 신학에 도입하여 영적인 것(Idea)은 선하고 물질계는 악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악한 물질계를 창조한 여호와 하나님은 조물주는 되어도 예수의 아버지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물질계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을 신약성경에서 분리시켰다.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선한 것으로, 금욕주의 생활을 하였다. 마르시온은 영적인 지식만을 최고의 선으로 취급했다.

20세기에 나타난 김기동 신학도 마르시온의 주장과 대동소이함을 보이고 있다. 우주는 마귀를 가두기 위한 감옥이요, 신들의 하늘에서 우주를 볼 때 음부의 세계로 본다는 것은 마르시온이 우주를 악하게 보았던 것과 그 궤(軌)를 같이 하고 있다. 또, 김기동의 신론(神論)을 살펴보면, 여호와는 천사로 형상을 가지고 있기에 예수의 아버지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는데, 마르시온 역시 여호와 하나님이 물질계를 만들었기에 예수의 아버지가 아님을 주장했다.

영지주의에서는 육체는 영혼의 감옥으로 여겨 금욕주의를 추구했으나, 성락교회에서는 새신자들에게 '영혼과 육체'를 가르쳐 영과 육을 구별하거나 구분하도록 함으로써 결국 성도들에게 영지주의와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있다.

마르시온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구분하여 성경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제거하였다면, 김기동 신학에서도 율법과 복음을 구분하고 또, 성경과 성서를 구분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였다. 그랬기에 성도들은 자연히 구약을 멀리하게 하고, 십계명이 없는 교회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신들의 하늘'에는 오직 혈과 육으로는 갈 수 없고 영혼만 가게 된다는 것 역시 종래의 부활사상인 육체도 부활한다는 것과 다른 영지주의적 발상인 것이다. 김기동 신학에서는 '진리'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말로 명문화시켰다. 이 말은, 김기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진리를 안다는 뜻인데, 이것은 영지주의의 표어와 같다. 그러므로, 김기동 신학은 '또 다른' 마르시오니즘이라 할 수 있다.

마르시온은 자신의 신학과 신앙윤리에 근거하여 금욕주의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도 신학'을 말하고 배운 베뢰아 사람들의 신앙 윤리는 어떠한가? 김기동의 우주론과 신들의 하늘에 대한 이론과 주장은 오늘날 다음과 같은 신앙 윤리를 형성하는 준거(準據)가 되고 있다. 성도들에게 '신들의 하늘'이란 새로운 유토피아를 제시함으로써, 그곳을 장차 성도들이 가야 할 곳, 이 땅에서 미리 물질과 봉사를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여기게 만든 것이다. 당연히 성도들은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물질의 헌신을 무섭게 강요 받는다. 이 헌신으로 가정이 복을 받고 사업이 복 받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실업인들도 헌신만을 우선적으로 하다 보니, 사업을 할 때도 기업경영기법보다는 헌금을 내고 물질적인 복을 받으려는 데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기업윤리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배제된 헌금을 하다보니 기업은 어려움이 있고, 부도가 나고 도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과도한 헌금을 강요받다 보니 집집마다 빚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성도의 가정은 가난해지는데 오히려 교회는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기동과 그의 주장을 따르는 성도들과 교회는 '신들의 하늘'에는 관심이 없고, 이 땅에 정착하려는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인간의 윤리적인 타락과 세속적인 범죄에 대해서도 인격적인 책임을 무시한 주장을 한다. 김기동의 구원론에 의하면, 예수께서 죄를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죄 짓게 되는 것은 예수도 우리도 아닌 제3자인 귀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도의 인격적 탈선의 책임을 귀신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구원을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한 것으로만 가르침으로써 성도들이 하나님의 양심인 계명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오른편 강도가 양심을 초월하여 낙원에 이른 것을 비유로 양심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 신학은, 윤리가 없는 복음주의가 되었고 성화(聖化)는 없이 오직 칭의(稱義)만 있는 신학이 되었다. 즉, 초대교회가 경계하였던 율법의 폐지와 도덕률을 무시한 방종의 신앙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윤리적 설교를 듣기 싫어하며, 이를 생명이 없는 설교로 여겨 검부락지 설교라고 말하며 무시해 버린다. 성경은,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은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고 함으로써 신앙과 윤리의 관계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즉, 부부간의 다툼으로 기도가 막히게 되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부부싸움을 해도 그 책임을 귀신에게 전가시키고 회개와 화해 없이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성경은 회개 없이는 기도가 중단된다고 했는데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영의 역사인가? 이는 분명히 성령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베뢰아 사람들은 과도한 헌금 강요로 거짓말을 강요받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헌금할 때 남편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남편과 상의 없이 남편을 속이고 헌금을 하도록 강요한다. 헌금을 강요하는 교역자들도 이러한 거짓말은 모두 복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쳐 성도들로 하여금 거짓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의 영이 계실 수 있겠는가?

소위 베뢰아 사람을 만나보면 그들에게서 전투적인 자세와 어투를 쉽게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 신학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그들의 신앙 윤리에서 기독교인의 동질성(Christian Identity)을 찾아 보기 힘들다. 예수는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했다(요 8:44). 누구든지 김기동 신학을 제대로 살펴 본다면, 그 신학이 '거짓의 아들'이며 허구적인 가설에 기인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볼 때, 어떻게 김기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거룩한 진리가 될 수 있는가!

갈라디아서 1:6-10은 '다른(ετερον)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다른 복음'이란 성도를 교란하여 복음을 변하게 하는 것이며, 필경 저주가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다른 복음'은 기존의 것과 다른 뜻을 가진 새로운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바로 '틀린 복음'으로, 예수가 전한 복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기동의 신학은 정통 신학과는 '다른(αλλον) 것'이 아니라 '틀린(ετερον)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기독교 전통 신앙의 노선을 일탈(逸脫)하게 만드는 잘못된 학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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