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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조찬기도회와 '주의 기도'

[사건과 신학]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처럼 기도하지 말아라"

최영실   기사승인 2019.06.27  14: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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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가 '사건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신앙고백과 응답을 신학적 접근과 표현으로 정리합니다. 매달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칼럼을 게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신학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국가조찬기도회'입니다.


'부탁입니다. 문 대통령님… 국가조찬기도회 가지 마십시오'.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다음 해인 2018년 2월 1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의 제목이다. 글쓴이는 국가조찬기도회가 권력과 야합의 길을 걸어왔으며, 이명박근혜 정권에 무조건 충성했던 해바라기로 살아온 자신들의 행보를 회개하지 않고,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고 동성애 문제를 비난해 온 목사를 설교자로 선정하며, 이 나라의 평화 구축을 위한 일에 관심 없는 행보를 보인 편협한 종교관과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관철한 권력 지향적인 자들일 뿐, 참신앙인들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글쓴이의 간절한 부탁에도, 문 대통령은 제50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한 표가 아쉬운 정치인들이 거대한 개신교 조직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보수 진영 대통령들은 물론 진보 대통령으로 알려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이는 국가조찬기도회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지 보여 준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9년 6월 17일 열리는 제51회 국가조찬기도회에는 약 3000명의 정·교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는 성서적인 것일까. 예수가 가르치신 기도에 합당한 것일까.

너무 많은 기도, 잘못된 기도
비판하다!

예식문의 주기도문은 산상 복음(마 5~7장) 단락 안에 있는 마태복음 6장 5-15절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산상 복음의 청중은 예수의 '제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산상복음을 다 들은 후, 예수의 가르침이 "자기들의 율법학자와 달라서 놀란"(7:28-29) 율법주의자들과 바리새주의자들이다. 산상 복음은 율법주의자들과 대결하는 예수(마 5장)와 바리새주의와 대결하는 예수(마 6~7장)의 선포를 보도한다.

기도에 관한 예수의 말(마 6:5-15)은 위선적인 자선·기도·금식을 비판하는 단락(마 6:1-18)에 들어 있다. 예수는 위선적인 자선을 비판한 후에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말한다. "차라리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말한다. 또 그는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는 기도, 곧 자기 목숨과 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마 6:8)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불신적인 기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너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기도하지 말아라"

예수는 잘못된 기도를 비판한 후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8)고 말한다. 예수는 '그들'을 향하여 더 이상 '나의 이름'과 '나의 나라', '나의 뜻'을 구하지 말고, '우리들'의 '하늘 아버지'인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말한다(마 6:9-11).

이 '하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편을 나누는 분이 아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로서, 해와 비를 악한 자와 선한 자에게 똑같이 내려주는 '자비'와 '사랑'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치는 자들에 맞서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 5:43-48)고 명하는 분이다. 예수는 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한다.

예수는 '내일'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을 비판(마 6:11)하면서, 그들이 드려야 할 기도가 무엇인지 말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죄지은 자들을 사하여 달라고'(마 6:12)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의 이 말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그 '무리들'을 '찌르는 말'이다. 너희는 너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었는가. 너희야말로 더 큰 죄를 지었지만 하느님께 용서받은 죄인인데, 너희에게 조그마한 빚을 진 사람의 멱살을 잡고 옥에 가둔(마 18:23-35) 불의한 자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그들은 먼저, '그들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기도한다면, 하느님도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핵심이다. 산상 복음의 주기도문에 대한 단락은 예식문의 주기도문에서는 생략된 다음과 같은 심판의 말로 끝난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5)

동족과 형제에 대한
미움·보복심 조장하는 기도 그치라!

예수는 왜 이렇게 '죄지은 자', '원수'를 위해 기도할 것을 강조하고,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선포했을까. 산상복음은 주후 70년 유대 전쟁 말기 상황을 반영한다. 당시 예루살렘 율법주의자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던 갈릴리 사람들을 '폭도'와 '살인자'로 매도했다. 동족을 율법을 어긴 '죄인'과 '원수'로 삼아 그들에 대한 저주와 미움, 보복심을 조장했다. 실제로 당시의 유대인의 18개조 기도문에는 '원수에 대한 저주'를 비는 기도문이 들어 있다.

그러나 마태의 증언에 의하면 율법주의자들이 '죄인'으로 규정한 사람들은 사실 '아무 죄도 없는 자들'(마 12:7)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당시 기득권자들이 만든 법체제와 율법에 의해 '걸려 넘어진 자들'(마 18:6-9)로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집'에 속한 한 동족이며, 예수가 한 목자 아래 있게 하려고 그렇게 찾아 헤맨 '이스라엘 집의 길 잃은 양들'(마 15:24)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율법주의자들은 구약의 율법에도 "네 이웃은 사랑하고 네 원수는 미워하라"(마 5:43)는 법을 만들어서 동족과 힘없는 자들을 정죄하고, 로마에 밀고했다. 결국 동족 간 전쟁으로 바뀐 유대 전쟁은 패배했다. '강도의 소굴'과 '장사하는 집'으로 변질된 예루살렘성전은 완전히 불타 버렸다.

강대국들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하고, 동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슨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골방이 아닌 화려한 홀에서 모이는 저 '국가조찬기도회'를 보면서 예수는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하느님의 정의를 외면하고 정권 자들의 불의에 침묵하며 야합해 온 죄를 회개하라", "분열과 분단을 조장하고 동족을 원수로 삼고 적대감을 부추겨 온 죄를 회개하라", "성서와 하느님을 빙자하여 자기들과 사상, 이념이 다른 자들을 모두 '종북 좌빨'로 매도하고,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기도를 그치라", "동족상잔 전쟁의 비극이 더 이상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 됨을 이루라는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저 위선적인 기도들을 더 이상 하지 말아라!"

최영실 / 성공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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