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홍콩은 지난 한 달 동안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집회를 경험했다. '범죄인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 100만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가장 최근 진행한 6월 16일 시위에는 200만 명 넘게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송환법은 범죄인인도 조약 협정을 맺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서도 홍콩에 거주하는 범죄 용의자를 소환할 수 있게 하는 법을 말한다. 홍콩 사람들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민주주의가 크게 훼손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과 홍콩은 범죄인인도 협정을 맺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는 중국 정부를 비판해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안 그래도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 이들이 있는데, 이 법이 제정되면 표현의자유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이번 시위는 대학생 등 청년 주도로 조직·확산되고 있다. 정부 청사 인근에서 시위하는 청년들 모습. 사진 제공 채은총

홍콩의회가 송환법 표결을 앞둔 가운데 6월 9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시작됐다. 2014년 '우산 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홍콩 그리스도인들은 시위에 적극 참여하거나, 때로는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홍콩 그리스도인은 87만 명 정도다. 전체 인구(759만 명)의 약 1/9을 차지한다. 가톨릭, 성공회, 복음주의 개신교인 등 모든 교파를 더한 숫자다.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이번 시위에서 기독교색을 적극 드러내며 평화 시위를 주도했다.

홍콩기독학생운동(Student Christian Movement of Hong Kong)은 여러 기독 학생 단체를 한데 모으는 역할을 했다. 홍콩전상학생복음동맹(Inter College Christian Fellowship)·홍콩기독도학생복음단체(FESHK) 등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단체 차원에서 시위대에 참여한다고 공지하고 대학생들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FESHK는 6월 13일 △송환법 철회 △폭력적인 경찰 집행 정지 △홍콩 젊은이들의 자유 보장 등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기독학생회총연맹(WSCF) 아시아태평양 지부는 홍콩에 있다. 수니타 수나 총무는 6월 23일 <뉴스앤조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활동으로 홍콩의 여러 그리스도교 교파가 단합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모든 기독 신앙 공동체가 연합하고, 때로 시위를 이끄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위에 적극 참여하다 보니 찬양이 시위대 비공식 노래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홍콩 시위 현장 곳곳에서 '주님을 찬양하라'(Sing Hallelujah to the Lord)는 찬양을 부르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6월 12일에는 아예 종교인들이 나서서 이 찬양을 부르며 정부를 규탄했다.

이 찬양은 1974년 미국 인디애나주 출신의 린다 스태슨(Linda Stassen)이 작곡한 곡이다. <타임>은 그동안 교회에서만 부르던 찬양이 홍콩 그리스도인들 주도로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다고 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시민도 함께 부르고 있다며 '홍콩 저항의 상징곡'이 됐다고 전했다.

홍콩은혜교회 티모시 램 목사는 이 노래가 평화 시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그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은 많은 장비를 구비하고 사람들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찬양을 부르며 자신들이 얼마나 평화로운 상태인지 표현했다"고 말했다.

수나 총무는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그리스도교가 평화와 비폭력을 수호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으로 같은 태도를 보이며 시위에 참여하는 게 수백만 홍콩 사람에게 희망을 전달한 것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홍콩 시민의 성난 시위에 캐리 람(Carrie Lam)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 입법을 무기한 보류한다고 6월 15일 발표했다. 홍콩 시민은 송환법을 완전히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7월 1일 또 한번 대규모 집회를 진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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