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자들: 자유롭고 진실하게 살았던 일곱 사람> / 야나이하라 다다오 지음 / 홍순명 옮김 / 포이에마 펴냄 / 360쪽 / 1만 4800원. 뉴스앤조이 김은석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일본의 양심적인 지성인으로는 '우치무라 간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청일전쟁(1894) 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쟁을 지지했었죠. 허나 전쟁의 과정과 결과를 주시하고 반성한 그는 러일전쟁(1904~1905) 때 이르러 전쟁을 절대 반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그의 제자들이 보인 행보였습니다. 만주사변(1931)-중일전쟁(1937)-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지는 전시 상황에서 쓰카모토 도라지는 전쟁에 침묵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본군의 승리를 찬양하는 글을 썼습니다. 김교신에 의하면, 쓰카모토는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 자였습니다.1) 반면, 그의 제자들 중에는 스승의 평화주의 사상을 따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던 마사이케 메구무政池仁와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가 그들입니다. 전쟁 문제를 둘러싸고 우치무라 간조 제자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2)

이번에 포이에마가 출간한 <개혁자들: 자유롭고 진실하게 살았던 일곱 사람>은 야나이하라 다다오가 전쟁 전후로 쓴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그는 중일전쟁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도쿄대 교수직에서 해직된 인물이었죠. 이 일로 그는 스승과 함께 일본의 양심적인 지성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혁자들>은 전쟁의 광기가 제국 일본을 삼키고 있을 때 평화를 외친 한 기독 지성인이 쓴 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그가 1940년에 출간한 <내가 존경하는 인물>과 1947년에 나온 속편을 저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각각 4명과 5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개혁자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일본인 2명을 뺀 7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평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그 책을 읽는 눈을 열어 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평은 독자들이 책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책에 전반적으로 깔린 메타포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여기서는 <개혁자들>을 읽으면서 느낀 세 가지 메타포를 중점적으로 풀어 보고자 합니다.

종교개혁의 계보학

일본에서 시작된 무교회주의는 '제2의 종교개혁'을 지향하는 신앙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교회주의를 제창한 우치무라 간조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미완의 개혁'으로 보고, 그 비판적 계승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야나이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정 부분 역사적 의의가 있지만, "또 하나의 제도적 교회를 세운 데 그"쳤다고 지적합니다(182쪽).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그는 "종교개혁의 재개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182쪽). 루터의 종교개혁이 '로마로부터의 해방'이었다면, 이제는 '제도 교회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야나이하라에 의하면, 이러한 해방은 "이미 일본에서 우치무라 간조가 주창한 무교회주의로 실행되고 있습니다."(182쪽) 미완의 개혁으로 그친 루터의 종교개혁을 무교회주의가 완성하고 있다는 그의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우치무라 간조를 '종교개혁가'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자신의 스승이 "루터나 칼뱅이나 웨슬리가 철저히 하지 못했던 개혁을 밀고 나"갔다고 보았습니다(278쪽). 이때 야나이하라는 무교회주의를 종교개혁의 한 흐름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종교개혁의 계보학'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예수-바울-루터-우치무라 간조로 이어지는 계보로 말입니다(321쪽). 예레미야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이 우치무라 간조를 통해 완성되었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습니다. 그에게 무교회주의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사건이었던 겁니다. 야나이하라는 종교개혁의 역사가 이 5명의 인물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5명 중 4명이 <개혁자들>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둬야 하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레미야는 종교개혁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저는 독자들이 예레미야 편을 읽을 때, 이 글이 전시체제기에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레미야 편에서는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현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고 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야나이하라가 전달하는 예레미야의 목소리는 당대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는 데 충분했을 겁니다. 가령 야나이하라는 예레미야가 "더욱 열심히 백성에게 악의 길을 떠나고 악한 행위를 버리라고 진심으로 토로"(83쪽)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나이하라는 한평생 진리를 위해 싸운 예레미야가 '매국노'라는 중상모략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는데, 이는 야나이하라 자신이 바른말을 했다가 직장에서 쫓겨난 사건과 전혀 무관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는 그가 예레미야 편을 "누가 참 애국자였고 거짓 애국자였는지는 훗날 역사가 밝혀 줄 것입니다"(115쪽)라고 마무리하는 데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와 바울을 종교개혁가로 조명하는 저자의 시선이 참신했습니다. 개혁이란 당대의 어떤 문제를 바꾸기 위한 고군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나이하라는 예수가 주로 안식일의 율법을 둘러싸고 바리새인과 갈등했다면, 바울은 주로 할례 문제에 관하여 교회 내부의 유대주의자와 충돌했다고 말합니다(315쪽). 이러한 비교를 통해 우리는 예수와 바울이 종교개혁자로서 가진 면모를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무교회주의

당연할 수 있겠지만, 책 곳곳에는 무교회주의를 암시하는 메타포가 깔려 있습니다. 저자의 사상적 배경이 무교회주의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의 묘미 중 하나는 어떤 지점에서 무교회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겁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우선, '평민'이라는 호칭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교회주의는 '평민'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했거든요. 무교회주의에서 평민은 하나님을 통해 자유와 독립을 부여받아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예언자적 인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치무라 간조는 무교회주의를 '평민의 종교'로 간주했습니다. 성서를 '평민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무교회주의를 사상적 기반으로 세워진 풀무학교의 경우 '위대한 평민'을 교훈校訓으로 삼았습니다(현재 교훈은 '더불어 사는 평민'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이 책 번역자가 풀무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했었죠. 무교회주의와 평민의 상관성은 야나이하라가 루터를 "뼛속까지 평민"이었다고 부른 데서 알 수 있습니다(178쪽). 그는 링컨의 업적을 "평민의 위대함"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221쪽). 아주 사소할 수 있겠으나 이 책에 등장하는 '평민'이라는 호칭은 저자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신학을 잘 모르는 역사학도로서 재미있었던 내용 중 하나는 야나이하라가 사도 바울을 '여행가'라는 관점으로 재평가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야나이하라는 신약성서 절반을 차지하는 바울서신을 체계적인 신학서라기보다 여행의 산물이라고 해석하고 있거든요. 이어서 그는 "그런 형태를 오늘까지 얼마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개인잡지에 의한 전도라고 생각합니다"는 서술하고 있습니다(142쪽). 과연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무교회주의에는 감독이나 목사가 없지만, '선생'이 있습니다(336쪽). 이 '선생'이 무교회 집회의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생'은 개인 신앙 잡지를 발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교신이 <성서조선>을 간행한 경우가 대표적이죠. 저자인 야나이하라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가신嘉信>이라는 개인 신앙 잡지를 발행했습니다. 즉, 야나이하라는 무교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인 개인 신앙 잡지가 바울서신에서 기원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소 비약적인 이야기지만, 무교회주의를 향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개혁자들>의 가장 큰 쓸모는 부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무교회無敎會라고 하면 기존의 교회를 전부 부정하는 걸로 이해하기 십상인데, 야나이하라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무교회주의란 과연 무엇인지를 밝히는 글을 썼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의 부록입니다. 여기서 그는 '교회'로 번역되는 에클레시아가 원래 그리스 도시의 민회民會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에클레시아란 크리스천의 모임이라는 의미일 뿐, 제도나 조직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죠(329쪽). 이러한 입장은 바울 편에서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는 에클레시아를 "제도화된 교회 같은 형식적인 개념이 아니라 좀 더 넓고 자유롭고 탄력성이 있는 생생한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거든요(136쪽). 이는 무교회 집회야말로 에클레시아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는 걸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혁자들>에는 무교회주의자인 야나이하라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무교회주의는 논쟁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대 제도 교회로부터 숱한 오해와 공격을 받았었죠. 그래서일까요. <개혁자들>에는 무교회주의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부분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어서인지, 이 책은 '무교회주의 변증서'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가 일본인이 모방에 능한 국민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반대하며, 무교회주의야말로 일본의 독창적인 공헌이라고 주장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적 정신

우치무라 간조 제자들 중 야나이하라는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보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0년 그는 경성에서 로마서 강연회를 열었는데, 이때 모든 민족은 평등하므로 민족적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는 요지로 강연을 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식민 지배를 세계에서 유일한 전제적 통치 제도라고 비판하고 조선의회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3) 귀국을 앞둔 조선인 여학생이 조선에 돌아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묻자 "일본을 증오하는 마음에서 반항적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조선이 지금과 같은 상태에 떨어진 것은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믿고, 조선 민족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신의 뜻에 복종한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일정한 역사적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말입니다.4)

야나이하라의 사회 비판적 태도는 예언자 이사야 편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예언자란 미래의 일을 점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해 하나님의 의사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21쪽). 그런 의미에서 예언자는 대언자代言者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나이하라에게 이사야는 비전非戰의 예언자였죠. 그는 1937년 9월호 <중앙공론>에 '국가의 이상國家の理想'이라는 글을 써서 큰 곤혹을 치르게 되는데, 이 글에서 그는 이사야를 인용하며 일본의 전쟁을 불의한 싸움으로 비판하여 도쿄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사야는 야나이하라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편은 역사학도로서의 취향에서 볼 때 가장 크게 흥미를 끌었던 부분이 많았습니다. 기원전 8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이사야의 상황을 전쟁 전후 일본 역사와 비교하는 부분이 드문드문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야나이하라는 유다 왕국의 웃시야왕을 메이지 천황에 비유했습니다(27쪽). 유다 왕국의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의 도움을 구하여 외교정책의 첫걸음을 그르쳤다고 평하면서, 이를 "히틀러와 결탁한 일본의 정치가와 같은 오류"에 빠졌다고 썼습니다(34쪽). 이런 비유가 좀 더 많았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었을 텐데, 기대보다는 많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이사야가 제일 먼저 등장하다 보니 갖게 된 기대와 실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스승인 우치무라 간조는 러일전쟁을 계기로 <성서연구>라는 개인 신앙 잡지를 발행하면서 조용히 성서 연구와 전도에 전념했지만(285쪽), 이전까지만 해도 사회문제에 신랄한 공격을 퍼부은 인물입니다. 김교신도 무교회주의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예언자적인 비판을 항상 행해야 한다고 보았죠.5) 사회문제에 대해 예언자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무교회주의자들 사이에 공유된 입장이었던 겁니다. 이는 야나이하라가 '크롬웰'과 '링컨'에 대한 글을 쓰게 된 토대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예레미야, 바울, 루터, 우치무라 간조가 종교적인 영역에서 예언자적인 정신을 발휘했다면, 이사야와 크롬웰, 그리고 링컨은 정치적인 영역에서 예언자적 면모를 보여 줬던 인물이었던 겁니다. 예컨대, 야나이하라는 크롬웰이 자유를 확립한 최초의 정치가였으며(215쪽), 링컨은 게티즈버그연설에서 예언자와 같이 말했다고 보았습니다(259쪽). 크롬웰과 링컨을 너무 낭만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들에 대한 호의는 당대 무교회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정서로 보입니다.

무교회주의를 제창한 우치무라 간조.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몇 가지 아쉬움들

사실 <개혁자들> 목차를 처음 볼 때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바울은 너무 식상했고, 크롬웰과 링컨은 저에게 너무 생뚱맞았기 때문입니다. 루터의 경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너무 질려 버렸죠. 그나마 우치무라 간조와 부록을 보고 기대를 가졌습니다. 물론 <개혁자들>을 읽으면서 내가 잘 알고 있었다고 여겼던 인물들의 새로운 면모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목차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개혁자들>은 종교개혁과 예언자적 정신이 기독교 역사에서 어떻게 흘러왔고, 그게 아시아에서 '무교회주의'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기독교 교양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조금 끄적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개혁자들>은 야나이하라가 1940년에 간행한 <내가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우리에게 생소한 니토베 이나조와 니치렌이 빠져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저조차 생소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독교 교양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빼는 게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야나이하라가 이 두 인물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한 건 사실입니다. 특히, 니토베 이나조의 경우 야나이하라와 같이 식민정책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개혁자들>의 가장 큰 아쉬움은 '식민정책학자'로서의 야나이하라를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공백을 니토베 이나조에 대한 글을 통해 채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국 기독교인 독자들에게 야나이하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지성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글은 생각보다 일찍 국내에 번역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한국문서선교회가 야나이하라의 글을 <사랑의 미학: 크리스챤의 결혼관>과 <그대 빈 가슴에 구원의 빛을: 사랑과 믿음의 글 모음>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었거든요. 이 중 <사랑의 미학>은 1998년에 <결혼·가정·직업 48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기독교문화사가 '크리스챤 총서'라는 기획물로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성서 강의를 시리즈로 냈었죠. <개혁자들>도 1982년에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책으로 번역된 적이 있습니다. 아마 1980년대 독자들이 지금의 우리보다 '야나이하라'에 대한 인지도와 감각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기독교 출판계가 야나이하라를 소비하는 방식입니다. 1980년대에 번역된 책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 기독교 출판계는 야나이하라를 '교양서 작가'로 위치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거 자체가 비판받을 일은 아니죠. 다만, 저는 야나이하라의 진면모를 알려면, 식민정책학을 연구한 그의 학문도 함께 소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대만·한국·만주·남양·사할린 등지를 직접 다니며 일본 제국주의와 그 식민정책의 실태를 조사했습니다(343쪽).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정책의 문제를 학문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죠. 그의 학문 소개는 우리가 한국 근현대사를 깊이 이해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교회주의는 아시아가 제국주의로 신음할 때 등장한 아주 독창적인 신앙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 무교회주의는 한국 기독교의 대안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교회주의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불충분한 점이 많습니다. 간간이 논문이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우치무라 간조와 김교신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개혁자들>은 무교회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지만, 우리에게 생소한 '야나이하라'가 어떤 인물인지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무교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논의가 더욱 풍부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강성호 / 역사 연구가, <한국 기독교 흑역사>(짓다)·<저항하는 그리스도인>(복있는사람) 저자

1) 『김교신 전집』 제2권, 304쪽.
2) 양현혜, 『윤치호와 김교신: 근대 조선의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한울, 2009), 142쪽.
3) 양현혜, 『윤치호와 김교신』, 154쪽.
4) 『矢內原忠雄全集』제23권, 344-345쪽(양현혜, 『윤치호와 김교신, 154쪽 재인용).
5) 『김교신 전집』 제1권, 308-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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