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 승효상 지음 / 돌베개 펴냄 / 520쪽 / 2만 8000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설계 사무실 이로재履露齋를 이끄는 '빈자의 미학' 승효상 건축가가 쓴 수도원 순례 에세이집. 로마에서 파리까지, 판테온·르토로네수도원·아비뇽교황청·롱샹성당·추방당한순교자기념관 등을 방문하는 14일간의 2500여km 순례 여정을 담았다. 목차는 △제1일 서울-로마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제7일 루카-제노바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 △제14일 바르비종-파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등으로 구성됐다. 수도원, 건축, 여행 이야기와 저자의 내밀한 고백이 얽히면서 삶, 종교, 영성의 문제를 묵상하게끔 만든다. 수도원 건축에 대한 저자의 사유를 엿볼 수 있으며, 수도원 순례 안내서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 작고 낮은 문으로 들어가면 바깥의 눈부신 태양에 노출되었던 눈은 갑작스레 밀려온 어둠으로 암흑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다 서서히 어둠에 적응하면, 지극히 아름다운 빛의 다발이 고요하게 성당의 내부 공간을 밝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닥, 벽, 기둥, 천장 모두 이 부근에서 채취된 한 가지 종류의 석재로 되어 있다. 작은 창을 투과한 감동적인 빛은 석재의 거친 표면을 긁기도 하고, 모서리의 각을 선명히 드러내기도 하며, 둥근 천장을 부드럽게 감싸 안기도 한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고요함이 그 위를 덮는다. 석재는 지극히 검박하게 쓰였다. 장식도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석재끼리의 맞춤도 대단히 정교하고도 단순하다. 코르뷔지에의 말처럼 어디 하나 모자람도 없고 더함도 없다." (제9일 르토로네-고르드-생레미드프로방스 '진실에 대한 증언' - '르토로네수도원', 267쪽)

"여행이야 한자의 본래 뜻으로 보아 여럿이 무리 지어 다니는 형태이며 기행은 이를 글로 적는 일이지만(사실은 글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겨도 기행이라고 여긴다), 이 여정은 굳이 순례라고 했다. 방문하는 장소나 건축이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곳이 아니라 예를 갖춰 두루 찾아다녀야 하는 시설이며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 공간인 까닭이다. (중략) 

이 책의 글은 네 개의 레이어(layer)를 가지고 있다. 수도원과 건축, 여행,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전체 글을 형성한다. (중략) 다른 책처럼 이 책에서도 방문하는 수도원을 설명하지만, 내 관점은 그곳에서 평생을 살기로 결심한 수도사들, 세상의 경계 밖으로 스스로 추방당한 자들에게 있다. 그들의 내밀한 심사―불안과 고독, 체념과 복종―에 이르러 그들의 절박을 기술하고자 한 게 이 글의 바탕이다." ('순례를 끝내며', 509쪽)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