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총신대학교는 수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이승희 총회장) 총회장을 지낸 길자연 목사, 교단 유력 중진 김영우 목사가 총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교단에서 정치깨나 한다는 목사들이 총신대로 몰려들었다. 학문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은 정치판이 되어 내홍을 겪었다. 예장합동 총회는 총신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지루하게 싸웠다. 지난해에는 용역들이 학교에 쳐들어와 유리와 문을 부수고 학생들과 대치하는 등 유례없는 사건도 벌어졌다.

총신대 이사회는 오랜 기간 쌓인 불화와 반목, 상처를 싸맬 새 총장으로 이재서 교수를 선출했다. 비신학과 출신이자,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이 교수는 10명의 후보를 누르고 총장에 올랐다. 5월 30일 취임식에서 총신대 임시이사 김영철 교수(서강대)는 "최종 투표에서 만장일치가 나왔는데, 이사들도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는 취임식 직후 이재서 총장을 총장실에서 만났다. 이 총장은 "기쁨은 오늘로 끝"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총신대를 잘 이끌어 나가겠다고 했다.

이재서 총장은 "전심전력으로 하면 반드시 공감대가 형성되고 조력자가 나타난다"며 최선을 다해 학교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이재서 총장은 빛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평소 점자기를 사용한다. 5월 30일 오전 취임 예배에서도 점자기를 사용해 찬송가를 부르고, 취임사를 낭독했다. 이 총장은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해소하고,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 총장은 "장애인들이 슬프고 서러워하는 것은, 장애인을 어떤 희망도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친구를 사귀거나 대인관계를 맺을 때 필연적으로 반대급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나 가정환경이 좋은 사람을 사귀려고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장애인은 사귀어 봐야 도움을 줘야 하고, 손해만 보니까 가까이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이재서 총장이 몸담고 있는 총신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7년 학교에 입학원서를 넣었을 때, 학교는 받아 주지 않았다. 원서를 받아 줄 때까지 7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 총장은 "학장님과 의논해서 (시각장애 때문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떤 조처를 해도 두말없이 따르기로 하고 입학했다. 상처를 많이 받고 자존심도 상했다"고 말했다. 입학 후 이 총장은 학문에서 뒤처지지 않았다.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사회복지학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가족 도움 없이 혼자 미국에 갈 정도로 도전 정신도 강했다. 필라델피아 성서대학교를 거쳐 템플대학교와 뉴저지 럿거스대학교에서 사회복지행정과 사회복지정책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한국으로 돌아와 총신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2001년 총신대학교에 사회복지학과와 사회복지대학원을 개설해 학과장과 대학원장을 맡았다.

총장까지 오르고 나니 달라진 점도 있었다. 이 총장은 "학교 다닐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상처 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총장 되니까) 친한 척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재서 총장은 장애인 사역 단체도 40여 년간 운영하고 있다. 1979년 총신대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교회 청년들과 힘을 합쳐 한국밀알선교단을 만들었다. 그는 "장애인 선교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투철함이 있었다. 창립 당시 인사한 녹음을 지금 다시 들어 봐도 뜨거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재서 총장은 미국 유학 도중에도 미주밀알선교단을 창립해 사역의 외연을 확장했고, 1995년 세계밀알연합으로 발전시켰다. 현재 전 세계 21개 나라에 100개 지부를 두고 있다. 이 총장은 세계밀알연합 총재 자격으로 참여정부 시절 5차례 북한을 방문해 장애인 물품을 지원하고 지원 센터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학술적으로는 논문 <기독교의 이웃 사랑과 그 실천신학적 의의>, 저서 <사회봉사의 성서신학적 이해> 등으로 '장애인신학'의 화두를 던져 왔다.

이재서 총장은 최초의 시각장애인 총장이다. 이 총장은 자신의 당선으로 많은 사람이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뿌듯해했다. 이 총장이 점자기로 취임사를 읽는 모습. 뉴스앤조이 장명성

총신대에 필요한 건 공정·투명·소통
"총장직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
한두 사람이 좌우지하는 상황 끝내겠다"

이재서 총장은 세계밀알연합을 이끌면서 쌓은 행정 경험을 토대로 총장직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밀알연합 일을 하면서 보니, 누군가를 위해 전심전력으로 일을 하면 공감대와 신뢰가 생긴다. 반드시 사람이 붙고 협조자가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총신대 최초의 비신학과 출신 총장' 타이틀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재서 총장은 "총장직의 핵심은 경영과 행정이다.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신학과 출신이 아니라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나 역시 처음에는 신학과 교수로 일했다. 어려운 부분은 학교의 좋은 학자들과 함께해 나가면 된다. 염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학내 사태 원인과 문제 해결을 위해 공정·투명·소통 키워드를 제시했다. 학내 사태에 참여했던 학생들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학교 운영에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학생을 잠시 머물다 가는 객 취급하지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총장 입장에서도 학생들 입장을 듣고 그들을 앞세워야 리더십 행사가 수월하다. 학생을 비롯해 직원·교수와 총회, 교육 전문가들이 구성된 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이들의 목소리를 듣겠다. 상대 의견을 듣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장으로 삼겠다. 자문 그룹이 아니라 결의까지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겠다."

학교는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이 총장은 "용역 사건은 하나의 트리거였다. 그 행위 자체가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용역이 없을 때도 정상 상황은 아니었다. 학교가 한두 사람에 의해 좌우지되는 상황이 지속돼 왔다. 우리는 이 문제를 바로잡고자 싸워 온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구성원 간 신뢰를 회복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재서 총장에게 거는 새로운 기대 중 하나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인식 개선이다. 총신대가 속해 있는 예장합동은 타 교단에 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총장은 자신의 철학과 지론대로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고 무한 책임을 지는 사명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상은 경제·결과를 따진다.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준에서 장애인은 활동력이 떨어지고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지 못해 세상적으로 훌륭한 자리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우리의 삶과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따져 봐야 한다.

우리는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사랑을 들어야 한다. 우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고 강도 만난 사람의 고통과 상처를 싸매어 주는, 약자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내가 25년간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면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가르친 나의 지론이자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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