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성애 활동가들의 가짜 뉴스를 듣고 있자면, 이들은 '동성애'를 '동성 간 성관계'로, '동성애자'를 '동성 간 섹스 중독자'로 상정하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성소수자를 괴물로 묘사하며 두려워하고 경계할 뿐, 그들을 직접 만나 제대로 이야기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뉴스앤조이>는 6월 1일 열리는 제20회 퀴어 문화 축제에 앞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들은 가짜 뉴스로 점철된 상상 속 괴물이 아닌,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입니다. 특히 올해는 세계 곳곳에서 성소수자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섣불리 성경 해석을 들이밀기 전,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교회가 그들의 신앙이, 인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에서 커밍아웃한 60대 여성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김인선 씨(69)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다. 짝꿍(그는 함께 사는 파트너를 이렇게 부른다 - 기자 주)과 독일 베를린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김 씨는, 지난해 10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러브 스토리'를 모두 공개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인선 씨의 커밍아웃이 주목을 받은 건 그가 나이 많은 성소수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2010년경부터 한국 주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조선일보>·<뉴데일리> 등 보수 언론은 그를 '독일 호스피스의 대모'라고 소개했다. 그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젊은 날을 희생한 파독 간호사와 광부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단체 '독일 이종 문화 간의 동행'(동행) 설립자이기 때문이다.

김인선 씨는 일흔을 앞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특이한 이력도 한몫했다. 22세에 독일로 건너간 김 씨는 간호사가 된 뒤에도 신학을 따로 공부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수학한 훔볼트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짝꿍과 함께 교회에 다니며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김 씨는, 반동성애 일색인 한국교회 현실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7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와 제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김 씨를 5월 13일 성공회 용산나눔의집에서 만났다. 김 씨는 고령에도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인터뷰에도 열과 성을 다해 답했다. 어법도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단순하고 유쾌했다.

사랑하는 여성 만난 뒤
신학 그만두겠다며 교수 찾아갔더니
"하나님은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는 분"

혼외자로 태어난 김인선 씨는 1972년 어머니가 살고 있는 독일 땅을 밟았다. 독일 가톨릭 수녀회가 간호 후보생 자격으로 김 씨를 초청해 줬다. 그곳에서 만난 수녀들은 김 씨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독일까지 와서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밖으로 도는 김 씨를 수녀들은 한결같은 태도로 대해 주었다.

작은 나라에서 온 문제아 이방인을 헌신적으로 대하는 수녀들을 보며 그들이 갖고 있는 믿음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수녀가 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신도 그들처럼 가치 있는 삶을 살고, 무언가에 헌신하고 싶었다. 원장수녀님은 그런 김 씨에게 "하고 싶은 것 다 해 보고 그때도 수녀가 되고 싶으면 오라"고 말했다.

조금씩 신앙을 키운 김인선 씨는 자연스럽게 한인 교회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주변 소개로 한국인 남편을 만났다. 신학 공부도 시작했다. 수녀님들에게 받은 사랑도 있고, 영적인 세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더 잘 알고 싶었다. 목사가 되면 사람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이민 1세대 부모와 소통하지 못하고 단절된 2·3세들의 현실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한인 교회 여신도 모임에서 지금의 짝꿍을 만났다.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혼란이 찾아왔다. 고민 끝에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남편에게 "아무래도 여성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인선 씨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 뒤 신학을 그만두려고 교수를 찾아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신학 공부도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레즈비언이 목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기 위해 교수를 찾아갔다. 김 씨는 "그때 그 교수님을 만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교수님한테 가서 나는 다른 사람의 본이 안 되니까 더 이상 신학 공부를 못 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여자를 사랑해서 하자가 있는 사람이라 목사가 될 수 없겠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당신은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냐'고 묻더라고요.

당신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니 스스로에게 좀 더 충실한 삶을 살라고 하셨지요. 남편과의 결혼은 시행착오일 수 있으니까, 서로 속이고 불행한 삶을 계속 사느니 당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요.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충고하셨어요.

교수님은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내 모습 이대로, 그 상황 있는 그대로 이해하시고 받아 주시는 분인데, 자매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으니까 집에 가서 좀 더 고민을 해 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저를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됐어요."

한인 교회에서는 어차피 목사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안수는 포기했다. 대신 봉사자로서의 삶을 이어 갔다. 독일 교회에는 '디아콘'이라는 제도가 있다. 교회가 운영하는 개신교 사회복지 서비스 단체 '기독교봉사회'의 종사자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수녀회처럼 운영하며 독신들이 섬길 수 있었지만 마침 김 씨가 지원할 때는 제도 개혁을 이룬 뒤였다. 김 씨는 여성 봉사자를 의미하는 '디아코니세'로 안수를 받았다.

한인 사회서 암묵적으로 알던 커플
"2·3세대 교포들 위해" 커밍아웃

김인선 씨는 2005년 '동행'을 창립했다. 동행은 독일에 사는 동아시아 이민자들의 마지막 곁을 지키는 호스피스 단체다. 한국 이민 1세대는 물론 중국·베트남·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상을 떠날 때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한다. 동행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김인선 씨 이름도 독일 한인 사회에 알려졌다.

그러나 한인 사회에서는 김 씨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부러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와 짝꿍이 출석하는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교인들은 김 씨와 짝꿍이 함께 사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 이상 구체적으로는 묻지 않았다. '돈 애스크 돈 텔'(Don't ask don't tell)의 관계였다. 일흔이 가까워지는 나이, 조용히 지내도 될 법한데, 김 씨는 커밍아웃을 선택했다.

"과거 제가 여자랑 사랑에 빠져서 이혼한다는 소식에 독일 한인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어요. 이번에도 내가 공개적으로 밝히면 또 뒤집어질 거라고 생각은 했죠. 그래서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뭐 잘못한 건가' 싶은 거에요.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내 삶은 당당한데.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죄가 되는 건가 싶더라고요.

독일 한인 2세 중에도 당연히 성소수자가 있어요. 그 친구들이 부모님 무서워서 얘기를 못 해요. 억지로 결혼했는데 이혼할 수밖에 없고.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가 있더라고요. 이제 때가 왔다 싶어서,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다 드러냈죠."

김인선 씨와 짝꿍은 베를린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20년을 함께했다. 평탄치 않은 가정환경에 이민자로서 고민 많았던 젊은 시절, 결혼과 이혼, 성적 지향을 깨닫고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들… 혼란스러운 삶이었지만 돌아보면 별것 아니었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굴곡진 삶을 산다. 여자로서 여자를 사랑했을 뿐,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이었다. '살아 보니 별것 아니더라.' 김 씨는 성소수자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김인선 씨는 여성을 사랑하게 된 이후로도 이전과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퀴어 축제 반대 집회 올인하는 한국교회
"성소수자도 하나님 만드신 피조물,
지금 한국교회 보면 예수님 우실 것 같아"

김인선 씨는 올해로 20년을 맞은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 마련한 특별 강좌 '레즈비언으로서 당당하게! - 독일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김인선의 이야기' 강사로 나선다.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20회 퀴어 문화 축제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같은 날, 길 건너에서는 한국교회가 주도하는 대규모 반대 집회가 있을 예정인데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말에 김인선 씨는 한숨을 쉬었다. 사랑에 여러 형태가 있는데, 그 다양성을 그대로 존중해 주고 받아 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신학을 많이 공부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할 권리는 없어요. 성소수자도 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신 데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나는 내 인생을, 그 사람은 그 사람 인생을 잘 살면 되는 거죠. 삶의 방식이 맞고 틀리고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판단받을 일 아니겠어요.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게 무서운 거예요.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 우리 죄를 대속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왜 교회가 저렇게… 지금도 예수님 오시면 우실 것 같아. 아니 서로 사랑한다는데 왜 야단일까요. 사랑 못 하는 게 문제지."

김인선 씨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주로 성소수자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어른'이 없는 상황에서 김 씨의 이야기는 큰 힘이 된다. 얼마 전 만난 청년들은 신학을 공부한 그에게 스스로를 긍정하게 된 과정을 물었다. 한국교회의 반동성애 운동에 깊은 상처를 받은 이들이었다.

"신학적으로 동성애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년들이 놀라더라고요. 그동안 한국교회가 너무 그들을 괴물로 묘사하다 보니까 받은 상처가 커 보였어요. 70살 가까운 노인이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교회 생활도 하고 자기 삶을 영위하는 걸 보여 주니까, 그들도 위로받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위로받는 것 같아요."

성소수자 당사자뿐 아니라, 지지하는 사람들도 드러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 씨는 "(혐오를 말하는) 교회가 오히려 더 당당하다.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당당하게, 하지만 폭력적이지 않게 스스로를 드러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인선 씨는 한국의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지지자들에게 조금 더 당당해지라고 주문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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