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3주기 연합 예배가 5월 16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주님. 그때, 그 여성들을 기억합니다. 교회 안에서 유독 예민하게 굴었던, 불편한 이야기만 했던 사람들. 교회가 그들에게 드센 여자라고 말하고 꽃뱀이라 손가락질할 때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를 고백합니다. 그런데 주님, 이제 보니 우리의 손에 피가 가득합니다. 그저 침묵하고 중립에 서 있었을 뿐인데, 지금 모은 두 손에 우리들의 피가 얼룩져있습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박해린 씨(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가 교회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위한 기도문을 읽어 내려갔다.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3주기 연합 예배에 참석한 120여 명은 두 손을 모으고 함께 기도했다.

올해도 믿는페미,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여학생회,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향린공동체, NCCK여성위원회 등 교계 단체 18곳은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사건을 기억하는 예배를 열었다.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라'는 주제로 5월 16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예배는 교회 성폭력의 공동체적 해결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더 이상 교회 성폭력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했다. 성폭력 가해와 피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과 지혜를 구했다. 박세론 씨(장신대 신학대학원 여학우회)는 "성폭력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고, 가해자를 올바로 치리하며, 함께 책임지는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정의를 비처럼 내려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회에서는 여성 래퍼 호락(사진 위)이 '원래 그런 거야'와 '이분법'을, 향린교회 교인들이 '고문'을 불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은화 목사(향린교회)는 기도회 제목으로 사용한 성경 구절 호세아서 10장 12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이 본문은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 품목 생산에만 열을 올리던 지도층 때문에 이스라엘 농민 다수의 기본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온 예언자의 비판이었다. 조 목사는 "지도층의 잘못으로 나라에 심판이 임하지만, 약자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연민이 표현돼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조은화 목사(향린교회)는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는 마음으로 교회 성폭력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 목사는 "하나님은 탐욕에 눈이 먼 풍조 속에서도, 묵어 있는 땅을 갈아엎어 정의를 심는 행동을 요청하신다. 정의로운 세계, 사랑이 열매 맺는 사회를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변화의 길을 가야 함을 제시하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지금 교단과 교회가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방법으로는 공동체적 해결과 정의로운 회복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조은화 목사는 목회자들이 사회의 '미투 운동'에는 동조하면서도 교회 성폭력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 성폭력은 가해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일"이라며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는 마음으로 모두가 교회 성폭력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말했다.

김모란 목사(왼쪽)와 민숙희 사제가 성찬을 집례했다. 참석자들은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라'라고 적힌 천 위에 초를 올려놓고 성찬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참가자는 대부분 주최 단체들 소속이었지만, 홀로 예배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김다혜 씨는 '믿는페미'의 광고를 보고 예배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평소 여성 혐오 및 성폭력 문제에 공감하면서도,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김 씨는 "교회에서는 이런 주제를 드러내고 말할 수 없어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큰 힘을 얻고 간다"고 말했다.

한 대학생 참가자도 "그동안 관심은 있었지만 나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한 번 참여해 보고 싶어 왔는데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간다. 그동안 교회 성폭력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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