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은 조지 오웰의 대표적인 풍자 우화 소설이다. <이솝우화>처럼 동물을 의인화해서 썼기 때문에 우화 소설이고, 당시 스탈린의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풍자 소설이다. 민음사판 <동물 농장> 번역자 도정일은 작품 해설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사회주의를 위해 소비에트의 신화를 깨는 일은 필요하다. 이것은 강력한 역설적 진술이다. 이 진술로 보면 오엘은 소비에트라는 형태의 사회주의를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를 온 동네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일종의 희화로 규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고, 이 잘못된 사회주의를 애써 은폐하기보다는 비판하는 것이 진실의 편에 서려는 작가로서의 자기 임무라 여기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이 점에서 오웰이 구현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양심이다." [<동물 농장>(민음사), 154쪽]

무엇을 풍자하고자 이 소설을 썼는지 역사적 배경을 알면 <동물 농장> 독해는 어렵지 않다. 등장 동물 중, 메이저는 마르크스를,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돼지들은 볼셰비키를, 복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풍자는 (중략) 약자의 서사이다. 이 약자는 권력보다는 진실의 편에 서고자 하기 때문에 궁지로 몰리는 약자이다. 약자의 이야기이므로 풍자가 두들기는 대상은 권력을 쥔 부당한 강자, 지배 세력과 이데올로기, 지배적 제도와 관행이다."(147쪽) 오웰이 수많은 문학 형식 중 풍자를 빌려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으로 다가온다.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 약자들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똑똑한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메이저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 '동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사상 체계를 바탕으로 동물 농장의 개혁을 추진해 나간다. 동물주의의 가장 기본 되는 원칙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이다. 동물 농장의 동물들이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문제다!"이다. 여기서 인간은 자본가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인간 그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적 표지로 '손'을 지목한다. "인간의 특징적인 표지는 그의 손이오. 손은 그가 온갖 못된 짓을 하는 도구입니다."(34쪽) 손은 자본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으나, 손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처럼 <동물 농장>에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런 문장도 있다. "유일하게 좋은 인간은 죽은 인간이오."(42쪽) 이러한 것을 볼 때 오웰은 이 소설을 통해 단순히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비판을 감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 흐름을 보면, 결국 그들이 피를 흘려 쟁취한 '동물 농장'이 이전에 존스 씨가 경영하던 메이너 농장(동물 농장의 원래 이름)과 다를 바 없고, 더 나아가 그때보다 못한 상태가 된 것은 의인화한 동물의 탐욕과 권력욕 때문이다.

소설에는 좌절된 꿈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한탄이 나온다. "그녀의 머릿속에 담긴 미래의 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그날 밤 그녀가 오리 새끼들을 보호해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 그런데 그 사회 대신 찾아온 것은, 아무도 자기 생각을 감히 꺼내 놓지 못하고 사나운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돌아다니고 동물들이 무서운 죄를 자백한 다음 갈가리 찢겨 죽는 꼴을 보아야 하는 사회였다."(78쪽)

<동물 농장>은 우화로 표현된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은 이상 사회를 꿈꾸며 새로운 제도와 법을 만들지만, 이러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한다. '동물 농장'도 불의에 대한 정의로운 투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폴레옹의 권력욕과 권력형 돼지들의 조력, 권력을 뒷받침하는 개들(비밀경찰)의 충성 아래 이전 농장(사회)보다 더 불의해질 뿐이다. 타락한 동물 농장과 그 타락의 정점에 선 나폴레옹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그에 대한 공식 호칭은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무'로 바뀌었고 이 밖에도 돼지들은 '모든 동물의 아버지', '인간들의 두려운 존재', '어린 오리들의 친구' 등의 칭호를 그에게 갖다 붙였다. 스퀼러는 연설할 때마다 나폴레옹의 지혜, 그의 선량한 가슴, 만방의 동물들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 특히 아직도 무지와 노예 상태 속에 살고 있는 다른 농장의 불행한 동물들에 대한 나폴레옹의 사랑을 생각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무슨 일이 성공적으로 완수되거나 운수 좋게 잘 풀리면 그 공로는 어김없이 나폴레옹의 것으로 돌려졌다." (83쪽)

충직한 일꾼, 프롤레타리아트였던 복서가 죽자,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연설을 통해 동물들을 이렇게 선동한다. "'내가 더 열심히 한다'와 '나폴레옹 동무는 언제나 옳다' 이 두 가지 신조는 이제부터 모든 동물들이 각자 자신의 신조로 택하는 게 좋겠소."(109쪽) 이쯤 되면 동물 농장은 사회적 체계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으로 바뀐 것이다. 종교적 신념을 이용해 사회적 체계를 세우고, 그 위에서 권력자들이 군림하는 지배적 제도를 구축한 것이다.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지음 / 도정일 옮김 / 민음사 펴냄 / 160쪽 / 7000원

조지 오웰이 <동물 농장>을 통해 사회주의 양심을 드러냈듯이, 깨어 있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양심'을 드러내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온 동네 우스갯감으로 전락한 한국교회가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동물 농장>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그들도 모두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성경을 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덧 사람과 자본이 모이고 권력을 갖게 되면서, 종교적 신념을 이용해 교회의 체계를 세우고,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권력자로 군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불법 세습도 발생하고, 횡령도 발생하고, 무자격으로 목사 행세하는 사람들도 발생했을 것이다.

오웰은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배반당한 혁명', 또는 '배반의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스페인 내전을 통해 직접 겪은 '사회주의혁명의 배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이야기는 그의 또 다른 책 <카탈로니아 찬가>(민음사)에 오롯이 담겨 있다.

나는 현재 한국교회 상황을 '배반당한 복음', 또는 '배반의 복음'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러한 배반의 복음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오웰은 자기 소설에 대한 평가와 의의를 이렇게 내린다.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을 때에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이 <동물 농장>에 싣고자 한 메시지이다."(153쪽)

'대중이 살아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눈이 간다. <동물 농장>에서는 돼지들과 개들이 권력자로 등장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권력자들은 대중을 '개', '돼지' 취급하기 일쑤다. 현실 사회에서는 오히려 동물 농장의 돼지들과 개들처럼 '똑똑한' 개, 돼지가 되는 게 중요하다.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넓게, 한국 사회의 희망은 지도자들보다는 대중들에게 있고, 좁게, 한국교회의 희망은 목회자들보다는 일반 신도들에게 있다." 목회자로서의 나의 사명은 일반 신도들을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를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세우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한다. '권력보다 진실의 편에 서고자 하는 자들'과 함께 교회를 세워 나가고 싶다.

장준식 / 미국 북가주 세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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