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그리스도인 - 세상을 밝힌 한국 기독교 저항사> / 강성호 지음 / 복있는사람 펴냄 / 311쪽 / 1만 5000원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기독교는 저항의 종교이다. 성서는 저항의 이야기로 가득하며, 그리스도인 중에는 성서의 저항 정신을 잇는 이도 있다. 올해 2월 역사학도 강성호 씨가 펴낸 저서는, 한국 근현대사 당시 '불의'에 맞서고, '양심의자유'를 지키기 위해 저항한 그리스도인을 조명한다.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은 △민족의 독립을 외치다: 3·1 운동과 기독교 △제도화된 우상숭배를 거부하다: 신사참배 반대 운동과 기독교 △부정선거를 규탄하다: 민주화 운동과 기독교 △기독교 여성, 가부장제에 맞서다: 한국교회연성연합회의 인권 운동 △오월의 봄을 증언하다: 5·18 항쟁과 기독교 △그해 여름, 민주화를 부르짖다: 6월 항쟁과 기독교로 구성돼 있다. 특별히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복있는사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그의 교회 후배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5·18 항쟁 당시 문용동 전도사에게서 최루탄 가스 냄새가 나기에 물었더니 시내에서 데모를 하다 왔다고 했답니다. 그 후배는 무슨 전도사가 데모를 하느냐, 말도 되지 않는다고 따졌고요. 이에 문용동 전도사는 세상이 어렵고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럴 때 목사들이 앞장서서 나가야 한다, 모세를 보라, 고통받고 있던 백성들을 인도해 나갔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중략) 하지만 앞장선 문용동 전도사가 문을 밀고 나서는 순간 갑자기 총성이 나며 문용동 전도사가 자기 앞에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투항하라는 방송에 문을 열고 나갔지만, 돌아온 건 가슴에 박힌 총탄이었던 겁니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였습니다." (5장 '오월의 봄을 증언하다: 5·18 항쟁과 기독교', 221·223쪽)

"이러한 상황에서 5·18의 진실을 알리며 무고하게 잡혀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한 주체는 종교계였습니다. 주로 광주 지역의 개신교와 천주교가 앞장섰습니다. 예컨대 1981년 4월 21일 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는 참석자 전원의 서명을 받아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5·18로 구속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죠. 그해 5월 18일에는 천주교 사제 35명이 남동성당에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미사를 거행한 후 가톨릭센터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이때 '광주 항쟁의 진실은 규명되어야 한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5장 '오월의 봄을 증언하다: 5·18 항쟁과 기독교',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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