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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과 한국인 다리 놓는 성소수자 청년

[인터뷰] 제주 사람 제람 "의심·혐오 걷어 내야…구원은 있는 그대로 용납하는 것"

박요셉 기자   기사승인 2019.05.07  12: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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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예멘 난민 신청자 500여 명이 지난해 제주에 몰렸을 때, 모든 도민이 이들에게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교사, 카페 사장, 감귤 농장주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난민들을 도왔다. 이들은 '희망의학교'를 만들어, 예멘인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어를 교육하고 각종 행정 업무를 지원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커뮤니티를 이루어 동고동락하고 있다. 결혼·출산 등 기쁜 소식이 있으면 함께 모여 축하하고, 누군가가 강제 출국을 당하거나 예멘에 있는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위로한다. 날씨 좋은 주말에는 다 같이 해변으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제주 출신 제람(35·활동명)은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가 예멘인을 돕고 싶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8월 희망의학교에서 예멘인을 처음 만났다.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지내는 삶이 어떤지는 잘 알았다. 제주도민으로서 예멘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제람은 말했다.

그는 지난달 서울과 남양주에서 '암란의 버스'라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암란은 지난해 제주에서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예멘 청년이다. 워크숍은 참석자들이 '암란의 버스' 승객이 되어서 예멘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에 왔는지, 예멘은 어떤 나라인지, 현재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제람은 낯설고 두렵게 느껴지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직접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영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있는 제람이 한국을 찾아 난민 워크숍을 여는 이유는 또 있다. 그 역시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제람은 게이다. 한국교회와 군대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기대와 달리 차별과 배제를 당한 일이 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난민'이라는 이유로 근거 없는 혐오와 차별을 받는 예멘인들의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암란의 버스'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제람을 4월 19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성소수자로 살아오며 겪은 일, 제주에서 예멘인과 교제하며 느낀 점 등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성소수자 제람은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고 공감할 때 편견과 차별이 깨진다고 믿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성희롱 호소하며 군에서 커밍아웃
가해자로 몰리며 116일간 군 정신병원
'자아 이질적 동성애' 현역 복무 부적합

특별한 경험이나 각성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파악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남성을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났고, 제람은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가장 큰 걸림돌은 신앙이었다. 제람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대학 선교 단체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이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 모임에만 가면 늘 괴로웠다.

교회 리더에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네가 다른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겠구나." 한계가 있는 용납이었다. 제람은 기독교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군에서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제람은 2008년 군에 입대했다. '다'나'까'만 허용되는 말투, 거칠고 험악한 군인 특유의 남성성, 밤마다 시작되는 각종 음담패설이 견디기 힘들었다. 제람은, 자신이 군에서 열등한 존재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병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선임들에게 타깃이 되어 각종 성추행과 괴롭힘에 시달렸다.

제람은 부대 지휘관들에게 고충을 알렸다. 성소수자라는 사실도 털어놓으며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 중에는 매주 군 교회 찬양팀에서 활동하며 친하게 지냈던 상사도 있었다. 제람은 그들을 믿었다.

하지만 대대장은 다음 날 오전 조회 시간에 전 장병에게 그의 비밀을 알렸다. 얼마 안 돼, 제람은 군 정신병원으로 끌려갔고, 116일 후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제대했다. 군 당국은 제람에게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 및 자아 이질적 동성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군 관계자들은 내게 성소수자임을 증명하라고 했다. 남자와 관계한 영상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때까지 내 정체성을 알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해 내가 성소수자가 맞는지 묻기도 했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커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연애한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군 당국은 오히려 내가 군 기피 목적으로 꾸몄다고 몰아갔다.

제대 후 어느 날 병적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군 복무 부적합자'라는 기록을 보고 나는 한국에서 보통 사람으로 생활하는 게 더 이상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누구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애를 썼다."

제람은 암란이 예멘을 탈출하는 과정을 이미지로 제작했다. 난민과 접촉점을 늘리기 위해 '암란의 버스'라는 워크숍도 진행했다. 사진 제공 제람

도망치듯 떠난 한국, 난민 돕고자 귀국
22세 청년 암란과 인연
"난민의 삶,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아
거리 좁혀 주는 워크숍 진행"

제람은 도망치듯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2018년 8월, 다시 한국을 찾았다. 예멘 난민이 제주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도민으로서 무엇이라도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희망의학교에서 예멘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꿈 많은 22세 청년 암란도 여기서 만났다.

암란은 예멘에서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 버스를 몰았다. 그는 버스를 몰면서 얻은 수입으로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2015년 내전이 발생했고, 시내 도로가 파괴되고 자신도 징집될 처지에 놓였다. 암란은 버스를 처분하고 홀로 고국을 떠났다.

제람은 암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민의 삶이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살면서 뜻하지 않는 어려운 일에 부딪치기도 하고,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기도 하고, 이유 없는 괴롭힘과 차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의심과 혐오의 시각을 걷어 내면 난민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잘 모르기 때문에 난민을 대할 때 당황하고 놀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두려움과 적대감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직접 만나 대화하면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난민과 접촉점을 늘리기 위해 제람은 지난해 말부터 '암란의 버스' 워크숍을 기획했다. 올해 4월 처음으로 서울과 남양주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암란이 살았던 예멘에서 시작한다. 워크숍에 참가한 승객들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난민이 되는지 살펴보고, 자신들이 살면서 힘들었던 경험들을 나눈다.

"많은 사람이 난민을 자신과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한다. 난민과 이들을 연결할 버스를 놓고 싶었다. 마치 셔틀버스처럼. '암란의 버스'에 탄 이들은 서로 어려웠던 경험을 나누며 우리 모두가 '난민'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이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면서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고, 기존 난민의 정의에 따른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한국교회, 결속 위해 가상의 적 만들어
구원이란 타인의 고통 그대로 용납하는 것"

한국교회는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 이슬람을 반대해 오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은 난민을 추방하고, 난민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도 내뱉고 있다. 제람은 한국교회가 내부 결속을 위해 가상의 적을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슬림, 동성애, 난민… 이런 것들이 다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다. 기독교가 내부 단합을 위해 만만한 이들을 적으로 삼는다는 거다. 이들을 수용하면 마치 교회가 무너질 것처럼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만 유독 강하다.

내부 결속을 위해 적을 만드는 건 오히려 세상의 방법이 아닐까. 교회가 세상의 방법을 좇으면서 문턱을 높이고 고립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구원이란 타인의 고통에 특별한 해석이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용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했으면 좋겠다."

제람은 군에서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다. 4월 18일, 용산나눔의집에서 열린 북 토크. 뉴스앤조이 박요셉

제람은 사회문제를 개인의 서사로 풀어내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성소수자, 난민들이 겪는 문제들을 '편견' 혹은 '차별'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정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성만 내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제람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서로 마주하며 대화할 때, 편견과 차별을 깰 수 있다고 믿는다.

제람은 "예술가로서 어떻게 사회문제를 다룰지 계속 고민이다. '암란의 버스'처럼,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부여해 주고, 다른 이들에게 성찰할 지점을 짚어 주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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