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특성이 살아 있는 교회

서울 중구 정동. 정동이 보여 주는 풍경은 왠지 모르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첨단 오피스 빌딩과 매머드급 위용을 과시하는 관공서, 언론사 건물의 운집 사이에서 정동은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은 듯한 풍경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정동의 풍경은 단지 전통문화 행사가 많이 열리는 곳이기 때문에 얻게 되는 특이점은 아니다. 수많은 행사, 이를테면 오래된 성 주변에 수문장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수백 년 전 조선 시대 의식을 재연해 내는 풍경을 연출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덕수궁 바로 옆에는 현대를 상징하는 테이크 아웃 커피 전문점이 늘어서 있다. 이렇듯 가장 현대적인 오피스 빌딩 그리고 유서 깊은 단체들과 함께하는 적산 가옥이 나란히 공존하는 풍경이 지속되는 곳, 정동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타임캡슐이 그대로 열려 버린, 낯설지만 거부감 없는 느낌으로 존재했다.

바로 이곳 정동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있다.

서울 정동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서학당길을 사이에 두고 서울시의회와 인접해 있다. 반대쪽으로는 덕수궁 돌담을 지척에 두고 있으며, 그 뒤편으로 영국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배치 역시 독특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 서울주교좌성당을 나타내고 있다.

영국대사관을 떠올리자 필자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성공회와 영국의 관계가 떠올랐다. 성공회는 영국국교회가 로마가톨릭에서 독립하면서 생겨난 종파다. 서울에는 1890년, 지금 위치의 한옥에 장림성당이란 이름으로 개교했다.

지금의 성당은 1926년 5월 2일 미완성인 채로 992㎡(300평) 3층 구조로 축성식을 열었다. 대한성공회 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가 1922년 영국의 종교 건축가 아서 딕슨의 설계를 토대로 착공을 시작한 성당은 종교 고유 시설과 토착화의 조화라는 철학이 담겼다. 1993년 원설계도를 찾게 돼 1996년 완공했다.

서울주교좌성당은 대한성공회의 모태와 같은 위치에 있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서울주교좌성당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고전적인 십자가 형태의 화강암과 벽돌로 지어진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이다. 서울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유일한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알려져 있다.

단지 서구의 형태와 모양을 오롯이 구현해 낸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만 주목할 지점인 것은 아니다. 기와지붕 등 한국 전통 건축양식과의 절묘한 조화가 서울주교좌성당 건축물 전체에 흐르고 있다. 서양과 동양의 조화에 방점을 찍은 성당은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 지속하는 정동의 분위기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한국 종교 시설이 단지 생뚱맞은 서구의 건축물이 아니며 근현대사의 시대 흐름을 궤를 같이한다는 의미로 다가오게 했다.

서울주교좌성당 전경.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 근현대사는 영욕의 서글픔이 한데 뒤엉켜 있다. 그 뒤엉킴 속에 서울주교좌성당은 때로는 고난과 치욕으로, 때로는 가슴 뛰게 하는 역사의 증인으로 기능해 왔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역사를 돌이켜 보면 파란만장 그 자체다. 1941년 일제에 의해 외국인 선교사가 추방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한국전쟁 때는 순교자도 많았다. 성당 정면 왼쪽 아래 푸른 바위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 한국전쟁 중 죽은 여섯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기념비적 역사에 방점을 찍는 것은 향린교회와 함께한 1987년 6월 항쟁의 기억이다. 민주화로 대표되는 인간다움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며 함께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진원지로 기능했다. 서울주교좌성당은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또렷이, 그리고 성큼 들어서게 됐다.

성당 건물 옆에 있는 순교 추모비. 한국전쟁 중 죽은 여섯 순교자를 기념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과 한국 건축의 조화,
시대를 넘어서는 미학적 아름다움

평론을 쓰기 위해 필자는 서늘한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4월 초 오전에 서울주교좌성당을 찾았다. 서학당길에서 성당으로 들어서는 길, 세실극장에 못미처 나오는 오른쪽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매번 시간이 될 때 찾는 곳이지만,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고유의 네오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이 드러내는 압도적이면서도 정제된 미학적 풍취가 단숨에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 미학적 풍취는 서울에 자리 잡은 대부분의 근대 건축물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서울주교좌성당 자체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갖는다. 한국 최초면서 유일한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로, 그 아우라의 본질에는 한국 전통 건축물, 특히 인접한 덕수궁과의 조화를 존중하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주교좌성당의 최우선 과제는 덕수궁과의 조화였다. 설계 초기부터 정해 놓은 일종의 기본 원칙이기도 했다. 그 원칙의 하나로 선택한 게 바로 둥근 아치 형태의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 선이 완만하며 전체적으로 단아한 형태를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은 한국적 특성을 얹힐 수 있는 가능태로 기능하기에 손색없었다.

돔 형식 대신 지붕 양식으로, 주황색 기와를 올린 천장과 아치형을 취해 로마네스크 양식을 충실히 따른 창문. 이러한 외관에서 풍기는 동서양의 조화와 지속이라는 측면이 이국적 풍미를 허락한다면, 내부에서는 더 치열한 미학의 절정이 손을 벌리고 있었다.

성당 외관은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과 한국 건축의 조화를 보여 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내부 세계를 향한 침잠,
정신의 아름다움

성당 내부 역시 외관의 건축미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한 숭엄한 종교적 감흥을 고취한다. 본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건 바로 제단 뒤 모자이크 성화로, 경이로운 빛을 품고 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성당 성앤드류채플 모자이크를 만든 작가 조지 잭의 작품이다. 모자이크 성화의 정점은 최상단에 위치한 반돔 형태로 된 예수그리스도상으로, 그 아래에는 성모마리아를 포함한 다섯 인물상이 포진돼 있다.

전면 재단에 이르기까지는 좌우 여섯 개씩 총 열두 개의 배흘림기둥이 있는데, 열두 사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어 재단 좌우 바깥쪽에는 익랑을 두어 공간을 확장했다. 왼쪽에는 성십자가, 오른쪽에는 성모마리아 제대가 있다.

이어지는 내부 풍경은 한국의 전통을 연상하게 하는 풍미로 가득했다. 은근한 색감을 품은 스테인드글라스, 격자무늬 창살, 서까래 형태를 한껏 살린 천장. 일련의 인테리어는 한국의 전통미를 적절히 표현하고 있었다.

본당 내부에 있는 모자이크 성화. 종교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모자이크화 바로 아래 있는 단상. 뉴스앤조이 이은혜
본당 내부 좌우에는 열두 개 기둥이 있다. 사진은 2018년 8월 15일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떼제 기도회. 뉴스앤조이 이은혜

지하로 내려가면 소성당 세례자요한성당이 있다. 서울주교좌성당을 만든 핵심 인물 트롤로프 주교가 안치된 장소다.

소성당에서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피아노 한 대 크기밖에 되지 않는 목제 오르간이었다. 짙푸른 기운을 머금은 영혼의 빛을 쏟아 내는 듯한 은근한 조명 아래에서 금빛 분위기를 풍기는 목제 오르간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이 또한 모양이 한국 전통 뒤주를 닮아 있었다. 경첩 역시 오르간 케이스 네 귀퉁이에 부착돼 한국적 고전미를 더했다.

성당 내부를 들여다본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결국'이라는 부사 한마디였다. 내부 역시 결국 단단한 희열로 가득 찬 있었던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했다. 전체적으로 깊이 가라앉는 균질한 색채, 그 균질성 속에서 내면적인 둔중함을 표현하는 질감의 조화가 주목할 만했다. 100인의 건축가가 1988년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서울주교좌성당을 손꼽은 이유에는 아마도 이러한 조화의 바탕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성당은 '조화'라는 키워드로 일관돼 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역사와 탈역사의 조화가 그렇다. 조화의 정신을 통해 서울주교좌성당은 시대의 한계, 한국 개신교 건축물이 가진 미학적 한계를 넉넉히 넘어선다. 성당의 바탕 정서를 차지하는 궁극적인 조화는, 조화라는 스탠스를 강조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대를 넘어 시대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역할에 대한 호소와 주문의 카드를 조심스레 꺼내 놓는 것이다.

현재진행형으로서의 6월 항쟁,
그리고 인간다움

서울주교좌성당의 미학적 가치는 단연 본당으로 집중된다. 이는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 기와가 얹은 모습에서 나타나는 심미적 조화, 그로 인한 종교적 신성성에 대한 경외는 미학적 가치의 절정과 절묘히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그랬지만 9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사람들의 관심 어린 시선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건축가나 예술가에게는 예술적 영감으로 다가왔으며, 신성성을 추구하는 종교인에게는 심오한 신의 섭리에 대한 깨달음을 촉진하는 데 적극 기여하는 건축미로 다가왔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정면. 주황색 기와가 시선을 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목관 왼쪽에 자리한 경운궁 양이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 주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러한 미학적 우수함은 본당 뒤편, 뒤뜰에서 풍겨 나오는 고요함에서 풍겨 나오는 심미적 감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주교관에서 성가수녀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흡사 구도의 순간들을 펼쳐 놓은 느낌이다. 길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다 보면, 영혼의 성스러움과 동시에 의식의 서늘함이 찾아온다. 단순한 사색과 명상을 넘어 마음 한구석에서 또 다른 강렬한 메시지와 울림의 기운이 일렁거리는 것이다.

걸음을 옮기는 자리의 끝에서 필자는 멈춰 섰다. 성당 뒤쪽 한옥 건물에 '유월 민주 항쟁 진원지'라고 적힌 표지석이 놓여 있었다.

민주화의 근원에는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존재가 존재를 짓밟지 않는 인간다움의 생명력이 숨 쉬고 있다. 그 인간다움으로부터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 이 숨을 가능하게 하는 정의는 1987년 6월 항쟁 때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상징과 의미의 강렬함으로 지속되고 있다.

성당 뒤편에 있는 사목관.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목관 근방에 놓여 있는 '유월 민주 항쟁 진원지' 표지석.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목관 앞에 있는 십자고상. 뉴스앤조이 박요셉

하지만 필자에게 서울주교좌성당은 민주화 운동이라는 상징의 표지가 미약한 여진의 장식 혹은 종교적 수사 중 하나로, 정의를 성스러움 뒤에 숨은 소품으로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우기 힘들었다. 6월 민주 항쟁은 종교를 넘어서지만 종교의 중심 가치인 인간다움을 향한 내적 돌파의 진원지로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주교좌성당은 그 진원지를 단지 기념비적 장소성에만 둘 것이 아니라 정서적 연대로 확장할 것을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고 있다. 인간다움의 밑바닥에는 신성의 육화가 함께하고 있기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갖는 궁극의 신성함은 우리 삶 한복판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을 향한 한 걸음이기에.

그렇기에 오늘,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문화재의 보존 가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삶의 현재진행형으로 육박되어 현현해야만 할 것이다.

※필자 소개 이미지를 클릭하면 '주원규의 예배당 건축 기행' 전체 기사 목록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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