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 상처 입은 치유자> / 박철수 지음 / 대장간 펴냄 / 320쪽 / 2만 원

얼마 전 구글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아트 프로젝트'의 명화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그림은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상위 10위 중 4점이 모두 고흐 그림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점에서 고흐는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화가 중 현대인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임이 밝혀졌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은 고흐를 기억하며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17년 107명의 화가가 그린 6만 2450장의 유화 프레임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는 이 가난한 화가에게 바친 헌사였다. 1972년에 돈 맥클린은 '빈센트 Vincent'라는 노래로 그에게 추념사를 바쳤다. 오늘날 그의 그림은 2000~3000억 원에 팔리고 있으며, 미술관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한 세미나와 심포지엄, 학회 등을 열고, 많은 작가가 그에 대한 논문과 책을 쓰고 있다. 생전에 고흐는 멸시와 조롱을 받았으나 지금은 이처럼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흐가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고흐에 대한 오해와 피상적 서술은 그의 진면모에 다가서는 것을 막고 있는 듯하다. 그를 향한 수식어는 열정, 광기, 정신 불안, 조울증, 강박, 아집, 정신병원, 알코올중독, 매춘, 기인, 천재, 못다 핀 예술혼, 자살 같은 것이다. 흔한 통속적 평가로는 고흐를 지나치게 종교에 몰입했다가 실패를 맛본 후 기독교를 떠나 예술을 택한 사람으로 본다. 고흐의 자살이 인정받지 못한 데서 오는 좌절과 가난 때문이라거나, 예술가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사의 찬미, 신을 향한 키릴로프식 저항 혹은 정신병적 발작으로 해석된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자살을 했다는 이유로, 고흐를 하나님 품을 떠난 인간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 주는 전형인 듯 간주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러한 것들은 고흐에 대한 대표적 오해다.

보통 미술사 책에 나타난 고흐에 대한 서술은 피상적이다. 고흐는 광대한 서양미술사에서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진 재주 많은 화가다. 고흐는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라는 마지막 서양 고전 회화 전통에서 20세기 추상화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존재한 19세기 여러 유파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후기인상파 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고흐는 세잔이나 고갱과 같이 거론되고는 한다. 세잔이 피카소나 브라크 같은 입체파를 탄생하게 했다면, 고흐는 고갱과 더불어 마티스나 루오 같은 야수파를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서술된다. 이런 피상적 설명으로 고흐를 올바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반 고흐의 '자화상', 1889년 작품.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소장.

고흐에 대한 숱한 오해와 피상적 설명 탓에 그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미술가이지만 가장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라는 것이 고흐의 아이러니다. 그런 까닭에 그에게 변호인이 필요하거나 해설가나 통역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한 목회자의 작은 책 한 권을 통해 이 수수께끼 같은 화가에 대한 변론과 해석을 듣게 되었다. 최근 대장간에서 출간된 <반 고흐 - 상처 입은 치유자>(대장간)는 박철수 목사가 고흐를 위해 펼치는 변론, 혹은 해설서다.

이 책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짤막한 전기다. 이 책의 미덕은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한 인물의 실체를 추적해 그 인물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영화 '시민 케인 Citizen Kane'을 연상하게 한다. 영화는 "로즈버드"(Rosebud)라는 한마디만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은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의 삶을 되짚어 추적한다. 관객에게 추악한 재벌을 따뜻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고 보면 '러빙 빈센트'도 고흐에 대해 그와 비슷한 시도를 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비밀에 싸인 고흐에 대한 죽음의 미스터리를 추적해 고흐를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이 책도 그와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그는 누구인가. 후기인상파 화가라는 식상한 레터르 말고, 진짜 그는 누구인가.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블레즈 파스칼에 비견할 영성가로 소개한다(프롤로그). 나아가 저자는 그를 '상처 입은 치유자'로 규정한다. 그 자신에게도 상처가 있었으나 세상을 치유하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분골쇄신했던 사역자라는 것이다(33쪽). 이러한 그의 설명은 고흐에 대한 우리 선입견과 충돌한다. 그는 선교사를 중도 포기한 인물이 아닌가. 교회를 떠났으며, 창녀와 동거했으며, 자신의 귀를 잘랐고, 결국 자살에 이르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다.

"이처럼 진지하게 변함없이 소신을 가지고 뜨거운 신앙을 살다 간 사람이 또 있을까?"

저자는 고흐가 신앙에 진지했으며 변함이 없었고, 소신이 있었으며 뜨거웠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고흐의 삶과 예술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는 바로 기독교 신앙이라고 확언한다. 그러고 보니 저자는 캐슬린 에릭슨 입장에 서 있다. 그녀의 책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청림출판)도 기독교 신앙 관점에서 고흐의 예술을 재조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흐가 죽을 때까지 기독교인이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믿을 만한가. 그는 신을 떠나 예술을 택한 화가가 아니었던가. 저자는 아니라고 답한다. 고흐는 단 한 번도 기독교 신앙을 버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덧붙이기를, 다만 그는 제도권 교회를 떠났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반 고흐에 대한 저자의 참신한 관점은, 그를 '가나안 신자'(교회에 나가지 않는 신자)로 본다는 것이다(프롤로그).

이 지점에서 왜 저자가 뜬금없이 서양화가 평전을 들고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그동안 <축복의 혁명>·<하나님나라>·<성경의 제사>(대장간) 등의 책으로 바른 복음에 대한 이해와 기독교 갱신의 메시지를 줄곧 외쳐 왔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화가 이야기를 들고나온 것이 사뭇 생뚱맞아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사실은 동일한 메시지가 감지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19세기 제도권 교회를 비판했던 고흐를 21세기 한국의 제도권 교회를 비판하는 예언자로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별이 빛나는 밤'은 정확히 이러한 저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가 생레미요양원에 있을 때 그렸다. 요양원의 야간 통행금지 때문에 직접 밤하늘을 보고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낮에 보았던 풍경의 밤 장면을 상상해 심상을 그린 작품일 것이다. 한마디로 '영혼에 담긴 풍경'이다.

캔버스 상단 2/3를 차지하는 넓은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 차 있다. 그런데 별이 너무 크다. 태양이나 달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노란색 별들이 어두운 코발트색 밤하늘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별들을 가득 채우는 노란색은 하나님의 신성과 사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노란색이 언덕과 숲을 은은히 비추고 있고, 집마다 창문에는 노란색 불빛이 켜져 있는데, 이는 신의 사랑의 임재를 뜻한다고 한다. 마을 중앙에 우뚝 선 예배당의 창문은 유독 까맣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제도권 교회가 지상에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상태라는 고흐의 통렬한 고발이다. 저자는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한국교회의 암흑을 고발하고 있다. 흡사 기업체가 되어 가고, 구제는 마케팅이 되어 가고, 예배는 오락이 되어 가는 한국교회 현실이 고흐의 그림 속에 비치고 있는 것이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작품. 미국 현대미술관 소장.

이러한 저자의 테제는 몇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가 기독교 신앙을 아주 떠난 것으로 알려진 사건, 곧 보리나주탄광촌 선교 사역의 실패는 어떻게 된 일일까. 저자의 설명은 뜻밖이다. 고흐가 선교 사역에서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도리어 보리나주탄광촌 광부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58쪽). 그는 비교적 안락한 숙소를 나와 광부들과 같은 거친 숙소에서 잤으며, 석탄 검댕을 얼굴에 일부러 발라 광부처럼 보이려 노력했고, 자기가 가진 돈과 옷은 광부들에게 다 나눠 주었다.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그들 편에 서서 사측에게 광부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목사나 선교사로서가 아니라 광부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광부들은 고흐에게 처음에는 시큰둥했다가 나중에는 열광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교부는 고흐가 선교사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했다. 저자는 이것이 사건의 실체라고 말한다.

미술사가들 중에는 이 시기 고흐에 대해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몰입했다가 사역에 실패해 쫓겨난 뒤, 광기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나 성 프란치스코, 페스탈로치, 돈 보스코처럼 되고자 했으며 일정 부분 그렇게 되는 데 성공했다(64쪽). 제도권 교회의 위선이 이를 훼방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이 일을 계기로 기독교 신앙을 떠난 것이 아니라 제도권 교회를 떠난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창녀와 2년간 동거했으며, 매독 환자였고, 알코올중독자이기도 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고흐의 윤리적 일탈처럼 보이는 행위가 그가 기독교 신앙을 버린 증거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자신이 상처 입은 존재라는 것은 변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치유자였음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창녀 시엔과의 동거는 단순히 성욕 충족을 위한 매춘이 아니었다. 고흐의 종교화 중 하나인 '선한 사마리아인'에서 레위인과 제사장은 강도 만난 자를 모른 채 하고 지나간다. 사마리아인만은 그를 나귀에 태운다. 고흐는 바로 이 사마리아인과 같은 존재였다. 최소한 시엔에게는 말이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글에서 시엔을 친구이자 연인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시엔은 나이도 많고, 병들었으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매력이 남아 있지 않은 늙은 창부였다. 하지만 고흐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고, 버림 받은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동거했다. 불행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의지하고 지내면서 잠시나마 가족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평생 공동체를 이루기 원했다. 고갱과 노란 집에서 화가 공동체를 이루기 원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엔을 향한 연민은 그가 보리나주탄광촌 광부들에게 했던 모습 그대로다. 고흐는 고통당하는 자를 볼 때, 하나님의 현존을 보았다. 이런 고흐를 매춘 행위자로만 비난했던 아버지 목사와 교계의 반응은 어쩌면 바리새적 위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고흐가 정말로 그렇게 끝까지 기독교 신앙에 투철했다면, 왜 그의 작품에서 종교화를 찾아보기 어려운가. 거의 900편에 가까운 유화 작품 중 종교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그의 그림들은 해바라기, 남프랑스 농촌 풍경, 자기 집 침실, 자기 얼굴, 친구들 초상 등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그는 세속적 주제를 주로 그렸다.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놀라운 답변을 내놓는다.

고흐는 근대 세계 속에서 고전적 방식의 종교 상징들이 그 상징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예술가적 직관으로 간파했다는 것이다. 근대인들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에 입 맞추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식상하고 진부한 종교적 기호일 뿐이다. 하여 고흐는 이런 진부한 종교적 상징이나 주제들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왜냐? 그런 식상한 그림들은 낯선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더 이상 위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황혼녘 농부 부부가 밭고랑에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밀레의 숙연한 그림, '만종'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보다 근대 세계에 훨씬 더 강렬한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정말로 그림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들 대신 화려한 색채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음악처럼, 그림으로 위로의 말을 하고 싶다. 이제 이 영원의 표지를 색채들의 빛줄기에서, 그것들의 진동에서 찾고 있다." (195쪽)

이 점에서 고흐는 인상주의를 넘어서고 있다. 인상주의자들이 빛깔들의 향연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면, 고흐는 색채를 활용해 신적이고 영원한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고흐의 의도를 잘 보여 주는 것이 '나사로의 부활'이라고 말한다. 고흐가 그린 극소수의 종교화 중 하나인 '나사로의 부활'은 렘브란트의 '나사로의 소생' 오마주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흐는 렘브란트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던 자리에 예수 대신 강렬하게 빛을 발산하는 노란색 태양을 위치하게 했다. 저자는 이 그림에서 노란색은 치유와 재생을 의미한다고 말한다(256쪽).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속적 주제로 충만한 고흐의 작품은 이제 완전히 다르게 봐야 한다. 그러한 밝고, 신비할 정도로 화사한 색채들은 사실 그의 영성의 표현이요, 위로자가 되고자 했던 소명 실천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나사로의 부활', 1890년 작품. 네덜란드 반고흐미술관 소장.

그렇다면 그가 귀를 자른 이유는 무엇이며, 또 자살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이유에서도 그의 자해와 자살은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해와 자살로 고흐의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사람들은 고흐가 자해와 자살을 한 것에서 광기를 찾아내고는 한다. 옳다. 그는 미쳤다. 고흐 자신도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예리하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고흐가 남긴 40여 점의 자화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자화상 속 고흐는 미친 듯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광기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찾았다.

"주님이신 예수께서도 미친 사람이셨다." (60쪽)

고흐가 귀를 자른 것은 고갱과 이룩하고자 했던 화가 공동체의 붕괴 때문이었다. 본서에서는 이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 사실 그가 진짜로 자신의 귀를 잘랐는지는 확실치 않다. 유일한 증인 고갱의 증언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통설처럼 설령 그가 자신의 귀를 잘랐다고 하더라도, 이는 고흐가 공동체의 붕괴에 대해 스스로를 체벌한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고흐는 어떤 일이든 그 일에 자신의 전 존재를 쏟아부었다. 그 열정이 스스로에게 엄한 형벌을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자살한 이유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간질, 조울증, 정신착란 등이다. 이런 정신과적 증상은 가문의 내력이다. 최근 새로운 학설이 등장했는데, 고흐가 연백 성분의 물감을 과도하게 활용한 탓이라는 설명이다(228쪽). 영화 '러빙 빈센트'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고흐 죽음의 수수께끼를 추적한다. 영화에서 고흐가 자살할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그의 정신은 맑았고, 삶은 규칙적이었으며,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계획도 많았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자살은 돌연한 것이었다. 영화는 그가 자살한 이유를, 가셰 박사로부터 들은 비난으로 설명한다. 가셰 박사는 고흐 때문에 동생 테오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고 고흐를 비난했다. 고흐는 이 비난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런 설명이 맞다면, 고흐는 테오와 그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를 십자가에 매단 것이다.

어찌 됐든 그의 자해와 자살은 슬픈 사건이며,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만을 침소봉대해서 그의 전체 삶과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에서는 고흐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그의 시신을 교회 영구차로 옮기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229쪽). 바로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고흐가 끝까지 비판했던, 자비심 없는 현대 교회의 위선적이고 율법주의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의 자해와 자살에도 "그의 가장 내밀한 본질은 신앙의 열쇠로만 풀 수 있다"(33쪽)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 저자는 고흐의 모든 그림이 일관되게 신성과 사랑, 구원을 지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폴 틸리히 식으로 말해서 고흐의 모든 작품은 그 주제와 표현형식 너머로 '궁극적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프랑스에서 고흐가 발견한 태양빛은 그저 무심히 비추는 햇살이 아니라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햇빛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될 수 있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감자 먹는 사람이나 슬퍼하는 시엔, 씨 뿌리는 사람, 비탄에 잠긴 노인들은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향해 따스한 눈길을 던지는 그리스도의 시선이 될 수 있다.

'러빙 빈센트' 한 장면. 귀를 자른 반 고흐.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컷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독특한 주장을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직접 쓴 수많은 편지글을 인용하며 증명해 내고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저자는 책의 거의 절반을 고흐의 편지로 채우고 있다. 너무 많은 인용으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종종 받기는 하지만, 도리어 이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의 주장이 주관적 추측이 아니라 고흐 자신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고흐가 진정 저자의 주장과 같은 예술가라면, 그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증거한 복음 전도자이자 변증가다. 이런 고흐에게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교회는 고흐를 외면해 왔던 것일까. 어쩌면 교회의 얄팍한 도덕주의가 고흐를 외면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빈센트'라는 노래에서 돈 맥클린은 어느 순간 고흐가 하려는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Now I think I know / 이제는 알 것 같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 당신이 내게 하려 했던 말을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 순수한 영혼을 가지려고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를
And how you tried for set them free / 그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나 역시 박철수 목사의 이 작은 책을 통해 돈 맥클린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이제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고흐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They would not listen / 그들은 듣지 않을 거예요.
they are not listening still / 그들은 아직도 듣지 않고 있어요
Perhaps they never will / 아마도 언제까지나 그럴 테죠"

신광은 / 열음터교회 목사, 고백아카데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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