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 한복판에서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인 선원 16명 등 24명이 탑승한 축구장 3개 정도 규모의 거대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갑자기 두 동강 나 가라앉았다. 구명정을 탄 필리핀인 선원 2명 외에는 지금까지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정부는 지난한 과정 끝에 심해 수색을 결정했다. 지난 2월 남대서양으로 출항한 수색 업체는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VDR(Voyage Data Record)를 찾아내고 유해도 발견했다. 그러나 이 이상 진전된 것이 없다. 가족들은 2년 전과 같이 여전히 애를 태우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으로 구성된 가족대책위원회와 이들을 돕는 시민대책위원회는 3월 29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년간 지지부진했던 정부의 수색 노력을 비판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선체 수색 및 유해 수습을 완수해 달라고 촉구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원회는 3월 29일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정부가 수색 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시민 7만 명의 서명을 29일 오후 청와대에 전달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VDR·뼛조각 찾고 끝?
9일 만에 수색 종료
침몰 원인 규명 못 해

정부는 2018년 8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을 추진하기로 했다. 2017년 3월 이후 1년 5개월 만에 본격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외교부는 2018년 12월 미국 오션인피니티사(OI)와 계약을 체결했다. 외교부는 침몰 해역 인근에서 발견되지 않은 구명벌을 찾아내고, 선체가 왜 침몰했는지 원인을 밝혀내겠다고 했다.

올해 2월 14일 수색을 시작한 OI는, 3일 만에 VDR과 사람 뼛조각으로 보이는 물체를 찾았다. 심해 수천 미터에 가라앉은 배가 이토록 빨리 발견되리라고는 가족들도 생각하지 못했다. 기대도 잠시, OI는 이후 아무 성과도 없이 9일 만에 수색을 종료했다.

가족들은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 기본 과업조차 완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심해 수색 계획 수행과 수중 촬영, VDR 회수 정도만 완수했을 뿐 △3차원 소나(SONAR) 스캐닝을 통한 선체 상태 확인 △3차원 모자이크 영상 구현 △미발견 구명벌 위치 수색 및 확인 △수색 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보고서 제출 등 탑승자들 생사 확인과 사고 원인 조사를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허경주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는 "정부가 공언한 목적이 완수되어야 심해 수색이 끝나는 것이고 국민 세금이 투입된 효과를 보는 걸 텐데,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OI가 심해 수색 때 투입한 무인 잠수정 카메라는 유류품으로 추정되는 신발 한 짝까지도 잡아냈다. 구명벌이 바닷속에 있다면 색깔도 눈에 띄고 크기도 큰 만큼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OI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원인을 밝혀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3D 모자이크 기법을 동원해 사고 원인을 알아내려 했으나, 선체가 72조각으로 쪼개져 있어 기술적으로 데이터 수집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허경주 공동대표는 이 또한 의지의 문제라고 했다. 허 대표는 지난해 4월 국회에서 심해 수색이 가능하다고 말한 우즈홀연구소 윌리엄 랭(William Lange) 박사가 이를 규명할 기술을 갖췄다고 했다. 그는 "지난주 미국에 있는 랭 박사를 만나러 갔다. 랭 박사는 1980년에 2000조각이 난 화물선도 영상을 복원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며 "빛 탐지를 이용한 LIDAR 기술을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블랙박스 복원보다 3D 모자이크가 사고 원인 규명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수색 과정에서 수거한 VDR도 최근 복원 작업이 중지됐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해수부 관계자는 VDR이 문제없는 상태라면 2박 3일 만에 데이터 추출이 완료된다고 했다. 그런데 벌써 몇 주가 흘렀다. 이틀 전 해수부에 전화했더니 데이터 추출이 중단됐다고 한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사실관계를 확인 후 알려 주겠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수색 3일만에 선체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VDR을 회수하는 모습. 사진 제공 가족대책위

유해 찾았는데 바닷속에
"수습은 계약에 없어"
정부는 가족 탓

가족들이 허탈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색 과정에서 사람 뼛조각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찾고도 빈손으로 되돌아온 데 있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즉시 보도 자료를 내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해수부는 "정부는 향후 처리 방향에 대해 최선을 다해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당연히 수거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유해는 아직도 바닷속에 있다. 정부가 OI와 계약할 당시 유해 수습에 대해서는 아무 조항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해 수습을 위해서는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OI가 자체 보유한 장비만으로도 유해 수습은 가능한 상태였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정부가 OI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New Equipment'라는 단어가 있어서 오해한 것 같다. 이건 유해를 수습한 후 보관할 냉동고 등을 의미한다. 유해를 수습한 후 방치할 수는 없지 않나. 이런 부분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이나 국회에 잘못 보고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애당초 계약에 왜 유해 수습이 빠졌을까. 정부는 가족들이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빠졌다는 입장이다. 이미 수습 가능성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황당해하고 있다. 허경주 대표는 "전문가들이 심해의 수압 등 환경상 유해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우리도 거기서 유해가 나올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지난해 11월 OI가 정부에 제안 설명회를 하러 왔을 때, 정부평가단 관계자가 수색 중 유해가 발견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OI에서는 수습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부는 12월 OI와 계약했다. 이미 가능성을 알고서도 계약 내용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 지원 중인 대한변호사협회 생명안전특위 최석봉 변호사는 "2017년에는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당시 유가족이라고도 안 하고 실종자라고 일컬었다. 가족들은 그렇다 해도, 정부는 계약할 때 유해 수습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허경주 공동대표(왼쪽)가 침몰 후 수색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수색 과업 8가지 중 구명벌 수색과 선체 3D 모자이크 영상 구현 등 핵심 과업이 완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정부는 2차 수색을 추진하기 위해 3월 1일 우루과이에 정부 협상단을 보내 OI 대표와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는 결렬됐다. 정부는 구명벌 수색 등 미완수 과업을 모두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OI는 유해 수습 및 추가 수색만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당초 2차 수색은 3월 초부터 15일간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침몰 해역인 남대서양은 4월이면 겨울이 시작된다. 허경주 공동대표는 수색이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하던 그는 "4월부터는 수색에 위험 요소가 많아진다. 결국 10~11월까지 수색이 연기될 가능성도 높다. 2년간 버텨 주어 찾을 수 있었으나 유해가 사라질까 봐 걱정이다. 다시 찾아갔을 때 없어지면 어떡하나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최석봉 변호사는 "이런 심해 수색은 정부 최초로 하는 것이다. 53억 원이나 투입해 미완으로 종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색을 다시 했으면 하나, 국민 여론에 대한 염려도 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정부다. 적극적인 태도로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OI가 윌리엄 랭 박사가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 3D 모자이크 작업에 나서는 것이다. OI도 가능하다는 의사를 비친 만큼, 정부가 추가 비용을 감수하거나 새로운 계약을 해서라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주기를 바란다.

가족들은 2018년 새해가 밝자마자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을 요구하는 10만 서명과 수색 요청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날 가족들은 7만 900여 명의 2차 서명이 담긴 용지를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에 전달하고 추가 수색을 촉구했다. 가족들은 사고 2주기를 맞는 3월 31일부터 국민들의 관심과 연대를 호소하는 제3차 서명운동도 시작할 예정이다.

수색 업체의 장비 성능이 좋아 신발 한 짝까지도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하다. 유해와 구명벌 수색도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남반구 겨울이 시작되는 4월부터는 수색이 어려워진다며, 협상이 지연될 경우 10~11월까지 기다려야 할 수 있다고 했다. 각종 유류품과 유해의 유실이 우려된다. 사진 제공 가족대책위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