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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고요 속의 외침

가짜 뉴스에는 '팩트'도 무용지물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9.03.22  10: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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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KBS 장수 프로그램 가족오락관 코너 중 '고요 속의 외침'이 있었다. 큰 소리가 나는 헤드폰을 쓴 출연자들이 제시받은 단어를 마지막 사람에게까지 전달해야 하는 코너다. 귀를 막고 있으니 말이 잘 전달될 리 없다. 서로 고성을 주고받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다.

슬프게도 한국교회 역시 그들 나름의 '고요 속의 외침'을 하고 있다.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특히 더 그렇다. 동성애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논의라면 그나마 덜 창피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이면 무조건 '차별금지법'이라는 낙인을 찍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발의했다가 철회한 '성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도 그들의 손에서 '동성애 차별금지법'으로 재탄생했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진 현실에서 피해 고발인이 받을 2차 피해 및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한국어 독해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발의 취지와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이들은 성차별·성희롱 금지 법률안을 '동성애 차별금지법'으로 바꿔 버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지만 가짜 뉴스의 힘은 강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됐다. 동성애자의 결혼을 비난하거나 목사님이 설교 중에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이 없다고 말하면 3000만 원 벌금을 내야 한다." 법안과 상관없는 엉뚱한 메시지였지만 효과는 컸다. 메시지를 받은 일부 보수 개신교인은 '차별금지법'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너도나도 국회 입법 예고 사이트에 반대 글을 남겼다.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이들은 글을 남기는 방법을 알려 주면서까지 참여를 독려했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는 3월 17일, 이들이 작성한 안내서를 복사해 교인들에게 나눠 주면서 "동성애를 비판하면 처벌받는 차별금지법에 반대 의견을 남겨 달라"고 광고했다. 안내서에는 "이 법안은 변형된 차별 금지 법안 + 혐오 표현 금지 법안으로 판단된다"는 친절한 설명도 들어가 있다.

이정미 의원은 3월 18일 법률안 발의를 철회했다. 철회 시점에 입법 예고 사이트에 남아 있던 반대 글은 2930여 개. 사흘이 지난 21일 오후 6시 다시 사이트를 확인해 보니, 총 5159개 글이 올라와 있다. 철회 후에도 계속 전달된 가짜 뉴스를 보고 반대 의견을 남긴 사람이 2200여 명이나 되는 것이다.

국회 입법 예고 사이트에는 한 사람이 한 번밖에 글을 남기지 못한다. 이들은 사이트에 접속해 실명 인증 과정을 거쳐 회원 가입을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법안 내용에 맞지도 않는 반대 글을 남겼다. 차별금지법의 '차', 동성애의 '동' 자도 나오지 않은 법률안조차 자기들 판단 기준으로 해석해 입법을 무력화했다. 벌써 세 번째다.

'고요 속의 외침'에 참여하는 출연자들 모습이 우스운 것은 전달하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성차별 금지 법률안이 50가지 성 차별금지법이라고 반대 의견을 남기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팩트를 제시하는 것은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이런 모습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다. 자신들의 활동을 위해서라면 가짜 뉴스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생산·유포하는 사람들,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교회를 구한다"는 신념에 가득 차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귀를 막은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한국교회 모습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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