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교회 반동성애 진영의 집단행동이 또 한 번 위력을 발휘했다. 정의당 대표 이정미 의원은 지난 2월 27일 발의한 '성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법률안)을 3월 18일 철회했다. 2018년 3월 13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 3월 26일 같은 당 김상희 의원이 같은 취지로 법률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한 데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이 법률안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 및 민간 기관의 고용·교육·서비스 영역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확산된 이후 성폭력 피해자가 더 수월하게 피해 내용을 신고하고, 피해자를 고용한 기관 혹은 사업자가 고발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동 등을 막기 위한 법률안이다. 직종에 따라 규정돼 있는 성희롱 금지 법안의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는 법률안으로 평가돼 왔다.

대표 발의자 이정미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해 고발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피해 사실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가해자 등으로부터 심각한 2차 피해를 받는 등 피해자의 권리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이정미 의원이 2월 27일 발의한 이 법률안은 의원 수 부족으로 철회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지만 반동성애 진영은 생각이 달랐다.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선 이들은 이 법안이 겉으로는 성차별 금지를 주장하지만 결국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들은 3월 12일부터 이 법안의 입법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동영상, 문자메시지, 블로그 글 등을 유포해 왔다.

이런 게시물들은 며칠 만에 개신교인들이 모여 있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져 나갔다. 이들은 국회 입법 예고 사이트에 반대 글 약 3000개를 올렸다. "동성애는 비정상적이고 물리적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동성 결혼까지 합법화하면 우리나라 큰일 난다", "선량한 국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동성애 옹호 정책 결사반대한다"는 등 대부분 동성애와 관련한 내용이 반대 이유였다.

가짜 뉴스 유포지 중 하나인 네이버 블로그 'GMW연합'은 '또 꼼수로 차별금지법 발의한 정의당 외'라는 글에 이정미 의원실과 공동 발의한 다른 의원실 전화번호를 올렸다. 이정미 의원실 관계자는 3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지난 15일에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 전화를 받았다. 딱히 다른 이유나 설명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법안 반대하니까 철회하라'는 게 전부였다. 동성애 관련 법안이 전혀 아닌데도 전화가 쇄도했다"고 말했다.

결국 반동성애 진영이 움직인 지 약 일주일 만에 법률안은 철회됐다. 법을 발의하려면 대표 발의자 외에 국회의원 9명 동의를 얻어야 한다. 최소 10명이 있어야 발의할 수 있는데 한 의원이 빠지겠다고 한 것이다. 이정미 의원실 관계자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다시 준비해서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별' 단어 하나에 집착
"동성애 옹호" 확대해석
자세한 내용 설명 없이
"반대 글 남겨 달라"

반동성애 진영은 이 법안이 또 다른 버전의 차별금지법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주장의 근거는 '성별'이라는 단어다. 이들은 법률안 2조 1항에서 설명하는 성차별의 정의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가. 정당한 이유 없이 성별, 혼인 여부,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출산, 용모 및 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을 이유로 우대하거나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는 등 불리하게 대우하는 경우
나. 채용 등의 조건이 성 중립적이거나 성별 등에 관계없는 표현으로 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남성 또는 여성이 다른 한 성에 비하여 적고 그에 따라 특정 성별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며 그 조건이 정당한 것임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
다. 성별 등을 이유로 반복적으로 비하·모욕하거나 괴롭히는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경우"

반동성애 진영은 '성별'이라는 단어가 '남과 여', 즉 양성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사회학·여성학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젠더'(gender)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법률안이 말하는 성차별은 동성애는 물론 '50가지 성별'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반동성애 활동가들은 '성별'이라는 단어가 50가지 성을 지칭하기 때문에, 양성평등이라는 단어 대신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법안 전체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고려되지 않다. 반동성애 전문 방송 KHTV는 3월 12일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젠더 차별금지법' 세 번째 제정 시도 논란"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다. KHTV는 이 영상에서 반동성애 진영 주장을 반복했다.

KHTV는 차별금지법을 왜곡했던 것처럼 이 법안도 확대해석했다. KHTV 김광규 대표는 이 영상에서 "50여 가지, 70여 가지 성별에 대해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주지 마라. 주관적으로 혐오감을 준다면 (이) 법률로 저촉이 된다. 밑에 보시면 알겠지만 징역 간다, 징역. 전과자 된다"고 말했다.

이 법률안이 말하는 고용에서의 성차별은, 국가기관의 장 혹은 사용자와 종사자·근로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차별을 설명한 것이다. 동일한 직종에서 같은 업무를 보면서도 임금에 차등을 둔다든지, 모집·채용에서 특정 성별을 선호하는 등의 행위를 법으로 금지한 것이다.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가 아니라면 이 법률안은 적용되지 않는다.

교육에서의 성차별은 각급 학교에서 교육 담당자가 △교육 기회, 조건, 방법, 내용 등에서 △수업, 실험, 실습, 현장 견학, 수학여행 등에서 △입학 전형 등 입학 과정에서 성차별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모든 교육에서 '젠더 차별하지 말라', '동성애 차별하지 말고 찬성해'라는 이야기다. 벌금도 수천만 원 받게 되고 전과자를 만든다"고 말했다.

김광규 대표는 이 법안이 언론도 통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중매체를 통하여 제공되는 신문 기사, 광고, 방송 통신 콘텐츠 등을 제작하거나 공급하는 자는 그 제공 및 이용과 관련해 성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9조 2항이 근거다. 하지만 이 조항은 '제공 및 이용'과 관련한 조항이지, 콘텐츠 자체를 심의하겠다는 내용이 아니다.

KHTV는 법안에 있는 '벌칙'을 설명하면서, 어떤 경우에 벌칙을 받는지는 소개하지 않고 바로 징역형·벌금·과태료 등을 언급했다. "젠더 정책, 차별금지법 만들어지면 이제는 남성들이 많이 전과자가 되겠다. 대한민국 남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를 보호하려 했던 여성들, 누나들, 여동생들, 엄마들, 할머니들이 남자 편에 섰다가 전과자 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고용주와 근로자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이다.

법률안은 피해자가 구체적 차별 사실을 외부에 알렸을 때, 피해자 혹은 조력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성차별·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비밀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사업장에서 발생한 명백한 차별에 대해 시정을 권고했는데도, 고용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시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 수 있다.

반동성애 진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길원평 교수(부산대), 제양규 교수(한동대)가 속한 동성애동성혼반대전국교수연합(동반교연)도 비슷한 내용으로 3월 14일 개신교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돌렸다. 동반교연은 이 법을 가리켜 "사실상의 차별금지법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발의했다"며 "1만 명 이상 반대 의견이 등록될 수 있도록 주변에 알려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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