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본주의사회를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독교와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요, 돈 숭배주의요, 승자 독식 시스템이다. 자본주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있다. 신학자 월터 윙크는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데 소수가 과식하는 것은 악마적 구조"라고 말했다. 헬무트 골비처도 "인류는 자본주의 때문에 파멸되고 말 것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특히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향한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통계상으로도 어느 때보다 빈부 격차가 심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도 자본가는 아랑곳없이 재산 쌓기에 여념이 없다. 자본가가 공익 재단을 만드는 것도 직간접적으로 재산을 쌓는 일 중 하나다. 그들은 공익 재단을 왜 만들까.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인가. 세금을 내는 것보다 많은 사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공익 재단을 만드는 것이 자본가에게 훨씬 유리하다. 공익 재단은 위장된 수입원이다. 세금은 내지 않고 돈에 대한 통제권은 자신들이 갖는다. 그 돈을 얼마나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자본가 마음에 달렸다. 물론 순수한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알고 공익 재단을 만드는 소수의 자본가도 있을 것이다.

공익 재단을 만드는 일은, 그럴싸하지만 자본가가 자신의 다른 쪽 주머니로 재산을 옮기는 꼼수를 쓰는 것이다. 친인척을 요직에 앉혀 재단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단을 만들어 놓고 세금은 안 내고 생색만 낸다. 꿩 먹고 알 먹기다. 재단의 감사는 유명무실한 거수기에 불과하다. 순수한 마음에서 설립된 재단, 예를 들면 돈이 없어 감옥 가야 하는 사람을 위한 '장발장은행', 채무자들 빚을 줄여 주거나 탕감해 주는 '주빌리은행' 같은 곳에 기부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정부는 세금을 걷어 서민을 위한 정책과 복지를 실현해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 걷어야 할 세금도 걷지 않고 부의 재분배 권한도 자본가에게 넘기는 것은 정부의 직무 유기다. 자본가가 공익 재단을 세워 그 돈으로 자선사업을 하면 명예와 권한이 쏟아진다. 진정한 사회 환원은 자선이 아니라 세금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자본가는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아니라 공익 재단을 만들었을 때 감세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은 자본의 이익 수호를 위한 것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명박이 청계재단을 설립한 것은 'BBK 주가조각' 사건 때문이었다. 2007년 대선 막바지,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나오면서 최대 위기를 맞는다. 이때 그는 "우리는 내외가 살아갈 집 한 칸이면 족해, 그 외 가진 재산 전부를 사회에 내놓겠다"며 전 재산 기부 공약을 내걸었다. 그것이 2009년 청계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왜 그렇게 했겠는가. 당연히 그 돈이 자기 돈이기 때문이다.

이건희도 2006년 비난 여론이 커지자 8000억 상당 재원으로 삼성꿈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빌 게이츠도 공익 재단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자본가가 면죄부의 대가로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하는 것은 '사기성 거래'라고 본다. 자본가가 모종의 사건으로 재판받을 때 '그간의 사회 공헌을 참작해' 경미한 처벌을 받거나 면죄부를 받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본가에게 선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無望할 뿐이다. 공익 재단을 갖고 있는 것은 이래저래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폴 라파르그는 <자본이라는 종교>(새물결)에서 "많이 빼앗고 조금만 돌려주는 것이 바로 자본가의 일"이라고 썼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착취하고 수탈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체제다. 자본가의 수작을 알고 이들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자본가가 빠짐없이 세금을 내게 하고 시장 독과점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야말로 '사회정의'를 세울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무장한 전문가가 자본가를 감시하고, 신자는 자본가의 기만에 속지 말아야 한다.

박철수 / 목사, 한국복음주의연합 지도위원, 성서한국 이사, <축복의 혁명>·<하나님나라>·<두 개의 십자가>(대장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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