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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과 광장

[사건과 신학] '스카이캐슬'을 넘어서려면

송진순   기사승인 2019.03.05  17: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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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가 '사건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신앙고백과 응답을 신학적 접근과 표현으로 정리합니다. 매달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칼럼을 게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신학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입니다. 

#1 캐슬 vs 캐슬

높은 천장과 대리석 기둥, 그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거대한 휘장,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연주, 대형 테이블에는 화려한 꽃과 테이퍼 캔들, 각종 와인과 샴페인, 러시아 황실 자기 코발트 넷에 서빙되는 디너 정찬,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수많은 메이드들. 고급스러운 연회에는 상류 엘리트 가정의 교양과 품격이 흘러넘친다. '스카이캐슬' 첫 화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아들의 엄마를 위한 축하 파티로 시작된다. 종편 사상 유례없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올겨울을 뜨겁게 달군 이 드라마는 한국 사회에 '스카이캐슬' 신드롬을 일으켰다.

'스카이캐슬'은 한국 사회 일부 특권층의 광기 어린 교육열, 권력과 성공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욕망과 그 허위의식을 암울하게 그려 냈다. 최고 의대 입학, 3대째 의사 가문에 병원장이라는 타이틀,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본·인맥·정보의 물량 공세는 기본이고 불법 그 이상도 자행하는 이들은 교양과 품위라는 외피를 두르고, '이기적 유전자'를 자신의 목적성에 가장 적합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혈통의 정당성을 자랑스럽게 선전한다.

그러나 그들 삶을 한 꺼풀만 들추면 자본과 권력의 결탁은 물론이고 혼외 자식, 자녀 학대, 가정 폭력, 도벽, 우울증, 자살로 얼룩져 있다. 그래서인지 캐슬을 둘러싼 높은 벽은 바로 그들의 추악한 민낯을 보지 못하게 하는 가림막이자 동시에 그들의 리그에 다른 이들이 함부로 발붙일 수 없게 하는 경계석이다. 유일하게 캐슬의 경계를 고개 숙이지 않고 드나들 수 있는 이가 있으니 은행 VVIP전담팀이 은밀하게 매칭해 준 입시 코디다. 이들은 무한 경쟁 시대 욕망에 사로잡힌 성주城主들의 우상이자 한 번 쓰고 버려질 잉여체로 캐슬이 만들어 낸 기생적 존재들이다.

기원전 1세기, 헤롯은 이두매인이라는 비천한 신분에도 로마제국의 신임을 업고, 유대 하스몬 왕가의 공주 미리암과 결혼해 유대 왕으로 등극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형제·자식도 처형하고, 메시아에 대한 열망이 무르익자 베들레헴 지역 모든 영아를 학살하는 공포정치를 펼친 잔인한 왕, 헤롯. 그는 로마제국과 유대 사회 사이에서 뛰어난 외교 수완을 발휘하며 대규모 토목 사업과 수탈적인 조세 징수로 로마의 구미와 욕구를 채워 주었다. 다른 한편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 전역을 도시화·상업화했고 기원전 19년부터는 예루살렘성전과 성전산을 증축했다. 성전을 받치고 있는 벽돌이 평균 70cm에 28톤, 큰 것은 13m에 600톤이나 됐고, 성전문과 주랑에는 금으로 장식된 포도 넝쿨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하니 성전 규모만큼이나 헤롯 가문의 위세를 과히 짐작해 봄직하다. 당대 "헤롯 성전을 보지 못한 이는 아직 화려한 것을 봤다고 할 수 없다"고 회자될 정도로 웅장함과 화려함을 자랑한 성전은 기원후 64년에 완공되었다. 헤롯은 성전산 위에서 풍요로운 연회와 잔인한 학살과 폭정을 동시에 감행했다. 그러나 권력과 욕망, 이기적 자본으로 세워진 성전은 몇 년 후 유대 전쟁으로 초토화되었다.

'스카이캐슬' 첫 화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아들의 엄마를 축하하는 파티로 시작한다. '스카이캐슬' 홈페이지 갈무리

#2 광장 & 광야

그때나 지금이나 지상에 우뚝 선 천상의 성은 제국주의의 야망과 야만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캐슬을 떠받치고 있는 검은 욕망과 허위의식을 식상할 정도로 잘 알면서도, 드라마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그것이 안겨 줄 권력과 지위, 자본의 유혹을 끊임없이 선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방영되는 그때, 현실에서는 24살의 비정규직 청년이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드라마가 끝날 즈음, 사망 두 달이 지나서야 광화문 거리와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 현장. 이 사회는 부와 권력, 학벌과 가문 없는 수많은 사람이 위험을 끌어안고 벼랑 끝에 내몰리는데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현실을 그저 바라보았다. 산재 사망 사고, 이것을 단순 사고라 할 때 우리 사회가 이제껏 해 왔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는 목숨값을 지불하고 설비를 개선하고 안전사고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안전사고가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자본으로 질서 지워진 원청과 하청 시스템, 비정규직의 사회구조가 갖는 고질적 병폐, 나아가서 인간다운 삶이 없는 이 시대의 문제이다.

캐슬 밖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소리 없이 스러진다. 흔한 일이다. 그러나 푸르디푸른 청년의 찢겨진 주검을 앞에 두고, 이제야 우리는 광장에서 소리쳤다. "현장이 안전한 세상,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현장을 꼭 만들겠다"고. 광장은 아무것도 없는 허와 누구나 함께하는 공의 공간이다. 경계와 벽이 없는 열린 공간이기에 사람과 생각과 소리가 흐르고 넘나들며 함께 모인다. 그렇게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어느새 타인의 소리를 공유하고 공명하고 공감한다.

본래 광장은 캐슬과는 태생과 속성부터 다르다. 캐슬의 아성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침묵, 심지어 죽음조차 은폐시키고 타인의 소리에 공명, 공감할 수 없는 폐쇄적 구조에 의해 유지된다면, 광장은 소리 없는 자들의 난장, 질서 지워지지 않는 혼란으로 타인의 침입을 기꺼이 허락한다. 그래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많은 것을 지켜야 하는 난공불락의 캐슬 이면에 불안과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면, 아무것도 지킬 것 없는 이들이 모인 광장은 분노와 슬픔, 충동이 넘실댄다. 그런데 어른들은 예부터 그리 말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시끌벅적해야지. 그래야 사람 사는 맛이 나지."

화려한 헤롯의 성전, 예루살렘 밖에서 예수는 빈 들과 광야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낮고 천한 자들, 죄인과 세리와 함께 걷고 같이 웃고 먹고 마셨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한 인간으로 이름 불리기에 예수 앞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어둑해지는 빈 들에서 배는 주려도 서로 나누는 하나님나라 이야기에 슬픔과 시름을 함께 잊었다. 그곳에서 빈손과 맨발의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이들, 부채로 알몸이 됐던 이들, 성전 노역에 골병들고 제국의 군대에 매 맞고 몸을 뺏긴 이들이 하나님 자식이라는 한마디에 서로가 인간 됨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들을 짓누르는 제국의 욕망과 야만에 함께 분노하고 서로의 소리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지상에 임하실 경계 없는 하나님나라를 꿈꿨다(마 14:13-21). 광야에서 펼쳐진 성벽 없는 하나님나라에서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누구나가 동참하는 것으로 슬픔과 분노 그리고 기쁨과 하나 됨을 함께 발한다. 예수는 그렇게 성안에 있는 자들의 폭정과 억압으로부터 눌리고 갇히고 내몰린 자들에게 자유와 해방,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했다(눅 4:18-19). 광야와 빈 들은 인간을 하나님 앞에 겸허히 서게 하고, 타인의 슬픔을 공감한 이들이 연대해서 지금의 구조를 탈피하고자 외치는 공간이다. 그것이 참 인간다움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카이캐슬'이 끝난 후 현실에서는 입시 코디를 찾는 열풍이 일고 있다. 한국 사회의 교육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자본과 권력으로 점철된 성공을 향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캐슬의 암울한 이면, 비인간적 속성에도 자본·가문·학벌의 삼위일체를 거부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광장에 서서 내 안에 캐슬, 그 안에 피라미드를 밀어내고자 노력하고, 하나님나라를 외쳐야 하지 않을까. 신앙은 그럼에도 현실의 불의와 야만을 넘어서서 하나님 안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모두의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광장에 선 신앙인의 품격일 것이다.

송진순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 사건과신학팀,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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