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해마다 3·1절이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음 뭉클해지는 그날의 감동을 되살려 보고는 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민족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이 사건은, 역사의식이 점점 사라져 가는 오늘날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두고두고 그 의식을 소생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3·1 운동에서 기독교가 보여 준 민족운동적 성격을 애써 외면하고 종교적 성격을 강조하려고만 한다. 한국 기독교사 연구가 민족문제와의 관계를 거의 외면했기 때문에, 한국 근대사 발전에 있어서 기독교의 위치가 적절하게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반봉건 근대화 운동과 항일운동 및 민족운동에 기여했는데도 분명한 언어로 끄집어내지 못하고 아리송하게 반응하고,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기독교인들을 통해 사회문제와 민족문제에 깊이 역사하신 것을 논리적 사고를 통해 역사적으로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의 연원은 한국교회가 초기에 수용해 최근까지 금과옥조로 움켜쥐고 있는 내면화·추상화·미래화 일변도로 이해한 기독교 신앙의 형태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다른 종교에 비해 한국의 근대 민족운동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한국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제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3·1 운동은 항일 독립운동 차원 못지않게 민족운동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말에 도입된 기독교는 초기에는 교육·문화 사업을 통해 선교의 문을 넓혀 갔는데, 1890년대 가서 그 사회적 역할이 나타났다. 이때 기독교인들은 이미 반봉건 개혁 운동에 앞장서서 당시 관료들의 부정과 가렴주구적 행위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지방 수령으로 발령받은 자 중에서는 예수교인이 많은 고을에 부임하기를 기피하고 다른 곳에 다시 발령을 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1905~1910년 사이에 기독교인들의 항일운동 양상은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활동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기독교인들은 각 지역에서 조세 저항운동을 주도했고 시장세 철폐 운동도 전개했다. 일진회에 대항하면서 일제의 병탄을 저지하는 일에도 노력했다. 한말에 교회라는 조직을 통해 항일운동이 강화됐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는 강점 후 기독교 박해 운동을 전개했다. 조선 멸망 후 한국에는 기독교 외에 전국적 조직은 없었던 까닭에 일제의 박해가 집요했던 것이다. 소위 안악 사건과 105인 사건이 그 사례라고 하겠다.

이 무렵 기독교 지도자들은 해외에서, 혹은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계획했다. 주지하다시피 3·1 운동은 계획·점화 단계와 민중화 단계가 있었고, 계획·점화 단계에서 기독교·천도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민족 대표 33인 중 16인이 기독교계 인사이고, 15인이 천도교 인사, 2인이 불교계 인사라는 사실만 보봐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3·1 운동에서 기독교 비중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기독교인은 20~3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숫자는 당시 한국 인구 2000만 명의 1~1.5%에 불과하다. 3·1 운동의 민중화 단계에서 기독교인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3·1 운동에 따른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보복도 기독교 측에 가장 가혹했다. 화성군 제암리의 경우는 너무 비참했다. 3·1 운동 이후 기독교인들은 상해 임시정부 및 국내외 항일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한편 3·1 운동의 결과를 보면서, 좌절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현실과 타협하거나 타계 지향 신앙을 갖는 사람도 있었다.

기독교인이었던 유관순은 3·1 태극기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결국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에 "나의 유일한 슬픔은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100주년 3·1절을 맞이하면서, 피 흘린 선배 기독교인들을 따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고난의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박철수 / 목사, <축복의 혁명>·<하나님나라>·<두 개의 십자가>(대장간) 저자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