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2월 27~28일)은 세계를 충격으로 빠트렸다. 준비된 합의서에 서명을 하지 못하고 마련한 오찬도 가지지 않고 두 정상은 헤어졌다. 국가 정상회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기에 남과 북은 물론 주변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후폭풍이 걱정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비핵화를 위한 협상은 미국과 북한의 당면 과제이고 세계 평화 문제이기에 길은 험난해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을 여러모로 경험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NGO 단체에서 일해 온 나의 조심스러운 분석을 통해 과제를 살펴본다.

협상에 임하는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의 의지보다는 주변 상황에 흔들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회담에서 보여 준 모습을 보면 '좋은 결과'를 향한 의지는 분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난 베트남 수도 하노이가 그렇게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요, 사회주의를 유지하며 놀랍게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세계 곳곳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에 투자처가 없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그럼에도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노이에서 갖게 된 것은 그가 간절히 원했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을 통해 66시간이라는 대장정을 거쳐 하노이에 왔다. 이번 회담에 대한 그의 기대를 엿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 언론 기자들의 질문에 "비핵화를 위해 이 자리에 있고 1분이라도 아까운 시간"이라고 대응했다. 그들이 만나서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의지를 표명하는 모습을 보며, 훌륭한 결과는 아닐지라도 작은 결실이라도 거둘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시 말해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간절히 원했던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주변 현실은 달랐다. 트럼프가 처한 미국 내 정치 상황의 위기와 김정은을 바라보는 깊은 불신은 이번 회담의 큰 걸림돌이었다.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의 속도 조절론과 김정은의 단계적 해법은 다르다. 트럼프는 이번 회담에서 시간과 속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표명했다. 그동안 미국이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핵 폐기'(CVID)를 위해 북한의 핵 리스트를 제출하라고 압박해 온 모습에 비춰 봤을 때 이례적이다. 속도 조절이라는 표현은 자칫 북한이 주장해 온 단계적 상응 조치를 통해 비핵화와 평화 체제를 이루자는 것과 혼동하기 쉽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주장한 영변 핵 폐기, 그리고 '+α'는 단계적 해법과는 맞지 않는다. 북한은 영변 핵 폐기를 통해 상응하는 경제제재 해제 카드, 즉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트럼프는 언제가 되더라도 먼저 완전한 핵 폐기(선 비핵화)를 통해 경제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것이고, 김정은은 하나씩 주고받자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며 협상 테이블에서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말하는 북한의 경제 대국과 김정은이 꿈꾸는 경제 강국은 다르다. 트럼프는 남한을 통해 북한을 보면서 풍부한 지하자원과 인적 자원으로 놀라운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고민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강국을 이루는데 있다. 트럼프와 강경파들은 핵 리스트만 내놓으면 전면적 경제 교류를 통해 잘살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김정은에게는 매력이 없다. 오히려 점진적, 단계적으로 경제협력을 해야 체제 유지를 통한 경제 강국이 되고 그들이 말하는 '인류의 희망이 되는 국가 건설'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체제 보장을 위한 평화협정이 중요하고, 핵 폐기와 경제 교류도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과 트럼프의 자신감과 북한과 김정은의 자신감은 서로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지만, 그동안 북한이 주장한 것과는 앞뒤가 맞지 않아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다음 날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UN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에서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가 얼마큼 효력이 있는지는 전문가마다 다르다. 그들은 오랜 제재를 견디며, 느리지만 '자력갱생'을 일구어 가고 있다. 북한이 제재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상황과 통로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협상의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두 정상이 잡은 손과는 달리, 미국과 북한의 불신의 깊이가 확인되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변화는 세계가 놀라는 수준이었다. 특히 북한은 미국에 대한 증오와 대결에서 협력의 관계로 전환했다. 6차에 걸친 핵실험과 미사일(ICBM) 개발로 핵 강국으로, 새로운 단계 즉 경제 강국을 향한 행보를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도 더 이상 제재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하고, 자국의 위협과 동북아와의 힘 균형을 위해 협상의 장으로 나와야 했다.

문제는 지난 70여 년간 형성되어 온 양국 간 불신을 해소하는 여정은 서로에게 험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 물질 생산 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이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미국의 우려를 덜어 주기 위해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실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도 문서 형태로 줄 용의가 있다"고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α'를 요구하며 북한을 단번에 굴복시키려고 거절하고 말았다. 미국은 북한이 설사 핵 리스트를 내놓아도 언제든지 원상 복귀할 수 있다고 불신을 거두지 않고 의심할 것이다. 미국은 선비핵화를 고집하고 경제성장도 주도하려는 것이다. 북한도 미국에 대한 증오는 두려움을 내포한 불신으로 표출된다. 그동안 미국이 UN과 함께 압박해 온 대북 제재는 북한의 경제를 꽁꽁 묶어 놓았고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인 독재 체제로 유지하는 북한은, 지도층은 물론 농민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대한 증오가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어린이들의 학교 곳곳에 총을 든 소년 인민군에게 미군이 포승줄에 묶여 무릎을 꿇는 모습의 그림이 걸려 있고 '원수 미국을 물리치자'라는 선전 문구가 널려 있었다. 지금은 그런 그림과 문구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북한과 미국은 체제가 대립적이고 속에는 서로 다른 꿍꿍이가 있기에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한두 번 만에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2차 북미 회담 결렬은 문재인 대통령과 대한민국에는 더없이 중요한 기회다. 북한과 미국의 속내는 정확히 드러났다.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는 미국과 북한의 사정도 밝혀졌다. 다시 협상장으로 초대하는 일은 우리 몫이 되었다. 트럼프가 국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우리는 귀중한 업적을 그에게 선물할 카드를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더욱더 미국 고위 관리 등을 통한 다국적 외교를 활발히 펼쳐 6자 회담과 같은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에는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인도적 지원과 문화 체육 교류를 활발히 해야 한다. UN 제재 내에서도 바늘과 같은 길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미국과 트럼프는 이번 협상 결렬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것이기에 대북 제재에는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상황이 길게 가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기에 문재인 정부가 지혜와 용기를 품고 발 빠른 대처를 해야겠다. 한반도 운명이 걸린 문제이고 세계가 바라보고 있는 평화의 길이기 때문이다. 여당과 문재인 정부는 야당들에게 한반도 평화 문제만큼은 도와 달라고 겸손한 자세로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념과 방법을 뛰어넘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새로운 경제의 길이 열리는 장이 되어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 희망이 될 수 있다. 국내의 정치권, 사회 및 종교계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힘을 합해 주기를 호소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얼마나 많이 하늘을 바라봐야, 천국을 볼 수가 있을까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 봐야, 다른 사람의 울부짖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음을 알 수 있을까요.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답니다." 우리 모두 바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방인성 / 함께여는교회 목사, 하나누리 대표, <뉴스앤조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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