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교회의 발자취

자의든 타의든 충현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대표 교회다. 위세가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충현교회는 여전히 한국의 개신교회 중 10대 교회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충현교회는 본래 서울 중구 야현동(인현동의 옛 이름)에서 시작했다. 1952년 설립된 부산 동일교회의 김창인 목사와 서울로 올라온 신자들을 중심으로 1953년 인현동에서 시작한 서울 동일교회가 충무로에 이전한 후, 이듬해인 1954년 충무로의 '충' 자와 야현동의 '현' 자를 따 충성된(충) 고개(현) 위에 세워진 등불이라는 뜻의 충현교회로 개명됐다. 이후 1980년 강남 개발 붐을 타고 현재의 강남구 역삼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십자가 복음이라는 강력한 복음 원동력을 일생 동안 불태운 김창인 목사의 카리스마가 살아 있는 충현교회의 어제는, 비록 쇠락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복음의 원형 가치가 어떤 식으로든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충현교회의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개신교 현대건축의 과제가 무엇인지도 질문해 보고자 한다.

강남 역삼동에 있는 현 충현교회 예배당.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강남, 그리고 교회

서울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전한 충현교회 역사는 긍정적 섭리의 역사라기보다는 일단의 사건으로 평가받는 부정적 의견을 피하기 어렵다. 아쉽게도 충현교회는 한국교회 건축사에서 교회 건축으로 거의 최초로 비난을 받은 교회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지금의 충현교회 예배당은 1978년 공사를 시작해 1988년 헌당식을 했는데, 당시 12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교회 건축을 일궈 냈다. 이 지점이 여론의 집중 질타를 받게 된다. 당시의 120억 원은 현재 시가로 환산해 보면 750억 원 정도로 계산된다. 아울러 충현교회 자체의 부동산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충현교회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분명 있을 수 있다. 어떤 부동산 전략 가치를 두고 선택한 부분도 아닐뿐더러 충현교회 초대 담임목사인 김창인 목사의 복음을 향한 열정이 그러한 세속적 예지나 안목으로 선택을 도모할 정도로 비영성적이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충현교회의 강남 이전이 강남이라는 욕망의 기반과 개신교회가 지닌 보여 주기가 연결되는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충현교회는 강남이 향후 욕망과 자본의 상징으로 발전되리라고 예견하고 이전한 것으로 볼 순 없다. 초기 한국교회 태동 원리가 그러했듯, 김창인 목사의 민족 복음화를 향한 순수 의지와 그 본령을 향한 집중이 강화된 입체적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한 교회 이전의 원칙으로 읽힌다. 이러한 독법은 충현교회가 선택한 건축 비전의 특징을 통해 구체화된다.

강남을 의식하고 지어진 것과는 무관하지만 충현교회가 추구한 건축 양식의 비전은 보여 주기 차원에서의 장식미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개신교회가 갖는 모순과 발전적 대립이 발생한다. 개신교회는 하나님 임재와 지속의 방식을 말씀 선포에 뿌리를 두고 전개하는 건축 양식을 지향한다. 그 말씀, 로고스의 토대를 바탕으로 보여 주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보여 주기 방식으로 충현교회가 선택한 익스테리어(Exterior)의 기반은 신고딕 양식(neo-Gothic)이다.

현대적 영광, 그리고 교회

신고딕 양식의 기본적 특징은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의 합리적 고려에 있다. 이렇듯 신고딕 양식은 19세기 유럽 각지에서 나타난 고딕건축의 변주다. 고딕건축만이 가진 장엄성, 종교 가치의 고절적孤節的 성스러움이 품은 외연적 화려함은 보존하면서도 구조 합리주의의 국면은 외면하지 않는 명분과 실리의 조화가 신고딕 양식의 본령일 것이다.

충현교회는 개신교회가 성물, 형식보다는 말씀 선포에 집중돼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의 대사회적 위상과 가치 지속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는 랜드마크 역할 또한 배제하지 않았다. 더욱이 1970년대를 기점으로 급속도로 가속화한 경제성장의 후광 속에서 막스 베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정신과 개신교 정신의 또 하나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한 청교도 정신과의 결합이라는 표지를 흡수하는 측면에서 충현교회는 교회가 민족, 그리고 국가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어 버린 것이다. 그 믿음의 결과가 충현교회가 드러낸 건축의 외적 가치 실천인 신고딕 양식이다.

충현교회가 일궈 낸 신고딕 양식으로 무장된 교회 외관은 하늘을 향해선 주변 건물과의 비교 불가를 낳은 뾰족한 첨탑을 내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교회 외벽은 온통 육중한 벽돌들로, 건물 주위를 요새처럼 에워싸고 있다. 얼핏 보면 영적 요새로 읽히는 효과를 강조하기도 한다.

건축 방법론 차원에서 고딕 양식은 중세로부터 이어진 가톨릭교회의 연장이자 아류라는 위험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충현교회는 교회의 영적 위상을 교회 외관으로 표현하는 데 고딕 양식, 그 자체의 장엄성이 한몫 톡톡히 한다는 영적 판단의 손을 들어 주었다. 고딕 양식은 교회 외형을 구축할 때 중세 첨탑 양식 교회를 방불케 한다. 아니, 그 이상의 높이와 지리적 점유를 일궈 낸 고딕 양식풍의 도입은 사실상 서구 합리주의의 수용도 아니고, 당시 유행이던 한국적 건축과 서양식 건축의 접목이라는 콘셉트와도 일정 부분 거리를 둔다. 결국 고딕 양식에 있는 그 자체의 장엄성, 화려함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충현교회가 추구하는 미학적 본질의 뿌리가 세속 도시와의 연대나 조화보다는 세속 도시와 철저히 구별되는 영적 요새를 구축하자는 취지의 구분 짓기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런데 구분 짓기의 의지는 교회 내부를 주목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외양에서 드러난 고딕 양식의 화려함이 교회 내부로 들어서면 비타협성과 단순함이라는 요소로 전환되는 것이다. 충현교회는 외부의 화려함을 내부 시설에 그대로 계승하지 않았다. 각종 성상과 종교적 이미지, 신의 임현을 상징하는 표현 양식을 중시하던 중세 가톨릭교회와 다르게 충현교회 내부는 단순함이 대표 키워드로 꼽힐 정도로 단출한 양식, 비타협성으로 점철된 정갈함을 유지하고 있다.

휘장처럼 늘어뜨려져 있는 붉은 천을 연상케 하는 강대상 뒤편의 풍경, 전통적 장의자로 마감된 내부의 클래식함이 보여 주는 메시지는 충현교회 공간을 접할 때 두 가지 인식을 심어 준다. 이른바 내재적 관점에서의 신고딕 양식이 실천되는 것인데, 실제 교인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집전의 분출 공간은 극도의 절제와 단순함으로 일관하면서도 교회의 대사회적 랜드마크 기능에 있어서는 절대 범접의 풍취를 견지하려는 안팎의 신성함에 집중한 것이다.

충현교회는 이렇듯 현대 개신교회에서 추구할 수 있는 명분과 실리, 두 입장을 효율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다. 그렇게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하나님 영광을 대리할 수 있는 영적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2019년에 이른 지금,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충현교회는 현재진행형으로 하나님 영광을 적실히 구현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영광은 영광이나, 이 영광은 두 얼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영광의 두 얼굴

충현교회는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 전문 잡지 <SPACE>가 건축가 1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 20위에 오르는 아쉬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현장 건축가들과 건축학 교수들이 분석해 내놓은 일관된 결론은 충현교회가 점유한 공간의 미학이 가톨릭 고딕 양식의 단순한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톨릭의 특징은 말씀의 중심 가치 지속보다는 자연 계시와 전통에 기인한 성물 숭배, 엄격한 예전, 미학적 건축구조에 따른 공간의 향유에 경도돼 있다. 그러한 기울어짐이 인간의 종교적 관심사 중 하나인 의식을 통한 성스러움의 실감으로 발전된다는 것을 가톨릭은 교리의 한 부분으로 구축해 온 것이다.

종교 건축 관점에서 본 고딕 양식의 장엄미와 화려함은 주변 환경과의 비조화나 비타협의 산물이 아니다. 가톨릭 문화로 에워싸인 전체 정서의 집약으로 봐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충현교회가 개신교 정체성의 하나로 내세운 세속과의 비타협성 일환으로 선택한 고딕 양식은 주변 환경과 어떤 조화나 동의도 구하지 않았으며, 비타협성에 대한 영적 지지조차 미약하게 가라앉은 이른바 이도 저도 아닌 지리적 고립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다.

턱없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교회의 자리가 엄청난 부동산 자본에 포섭된 욕망의 자리로 변모했다면, 충현교회가 추구하는 영광은 본래의 영적 열정과는 관계없는 욕망의 배설 상징으로 옹립될 위험성에 상시 노출되어 버린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굳이 언급하지 싶진 않지만 충현교회는 그 건축물의 부동산적 가치가 급등하는 욕망의 하이어라키(Hierarchy), 그 첨단에 올라서는 과정에서 기독교 윤리로도 세속적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태한 사건과 부패, 여러 스캔들로 얼룩지고 말았다. 한때, 유력한 정치인들과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 원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여든 개신교회의 대표 주자를 표방하던 교회의 상징은 이제 우스꽝스러운 형해만 남은 고딕 양식의 외로운 세력 과시로 표류하는 듯 보이는 건 필자만의 우려일까.

충현교회 예배당은 신고딕 양식에 기반한 건물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욕망과 성스러움, 그 경계에서

개신교회의 공간 점유, 그 본래 목적은 그리스도의 선포와 나눔에 있다. 선포와 나눔의 결이 개인 영성 강화이든,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한 연대로 발전되든 개신교 교회 건축의 과제로 분명한 한 가지 주제를 잃어버려선 안 될 것이다. 욕망과 성스러움, 그 경계에서 끊임없이 긴장하고 질문을 던지는 주제 의식이 그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가 강남에서 시작해 강남으로 마무리되는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대세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승리, 경쟁, 착취, 약탈이라는 욕망의 정치학이 폭탄 돌리기를 벌이는 곳을 상징적 의미로 대표하는 강남으로 본다면 한국의 개신교회는 과연 이 '강남'이란 상징에 얼마나 비루하고 집요할 정도로 지분 요구를 하는 걸까. 지금이라도 그 지분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강남과 연루된 상징 카르텔로부터의 디폴트를 선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영적 디폴트 선언이 그리스도의 선포와 나눔에 최우선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충현교회를 통해 우리는 개신교 교회 건축의 명과 암을 또렷이 목도하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 엄정한 현실 앞에서 회의적인 비판만이 아닌 새로운 틀거리에 대한 모색과 나눔이 절실해 보인다. 그 절실함이 개신교 현대건축을 다시금 재구성할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소설가 주원규 목사가 '예배당 건축 기행'을 격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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