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편집국장] 태극기가 부담스럽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등장해 지금까지 탄핵 무효를 외치는 극우 세력의 대명사 '태극기 부대' 때문이다. 근 2년 만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는지 참 애석하다. 모든 국민의 것이어야 할 대한민국 국기가 일부 극단적 정치 세력에 이용당하고 있는 꼴이다.

이번 삼일절은 그들에게 또 어떻게 이용될까. 일제의 만행에 비폭력 평화 항거의 모범을 보여 준 만세 운동. 그러나 100년 후 태극기를 든 자들은 3·1 운동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태극기 부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군에 의한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군부독재 시절 가짜 뉴스를 들고나온 자들에게 열광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고 민족의 상징 태극기를 들었으나, 실상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보수 개신교계는 삼일절마다 태극기 부대의 판을 깔아 주는 역할을 했다. 2017년 3월 1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태극기 부대의 반발이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연 삼일절 기도회는 탄핵 반대 집회와 같은 장소에서 시간만 조금 앞서 시작했다. 기도회는 결국 친박 집회 사전 행사로 전락했다.

2018년 3월 1일에는 개신교계 극우 인사들이 광화문에 총출동했다. 수만의 태극기를 흔들며 진행된 집회는 그야말로 막말 대잔치였다. "주사파 빨갱이 30여 명이 청와대에 들어갔다", "간첩을 존경하는 대통령이 대통령인가", "문재인과 임종석의 정체는 빨갱이다"…. 집회를 주도한 사람은 전광훈 목사였다. 전 목사는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200석 이상 못 얻으면 나라가 해체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해 왔고, 얼마 전 한기총 대표회장이 됐다.

한기총이 또 삼일절 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명색이 <뉴스앤조이> 편집국장인데도, 취재기자의 전언에 덜컥 걱정이 앞섰다. 이번에는 또 어떤 막장극을 보여 줄 것인가. 극우 개신교와 태극기 부대, 자유한국당이 버무려지면 뭐가 나올지 상상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발언 이후로 추락하는 자유한국당 지지율처럼, 이미 조각나 버린 한국교회 이미지가 또 한 번 짓밟히지 않을까.

올해 교계에는 신학적·정치적 입장 차를 넘어 3·1 운동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계획돼 있다.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와 몇 년 전 주요 교단들이 발족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함께 3·1 운동 100주년 기념 대회를 연다. 오랜만에 보는 진보와 보수의 연합이다. 한국 사회 내에서 개신교의 역할을 꾸준히 고민해 온 복음주의 운동 단체들도 3·1 운동 100주년 기념 예배와 집담회를 연다.

한기총은 한국교회 대표가 아니다. 만약 한기총이 지난 몇 년간 보여 줬던 것처럼 이번 삼일절 행사에서 또 막말을 쏟아 낸다면, 그것은 다른 교계 행사에 재를 뿌리는 일이요, 교회 밖 세상에는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자극적인 말들로 이슈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그 끝은 도태다. 진작에 없어졌어야 할 한기총이 스스로 수명을 앞당기는 건 환영할 일이나, 그 시간까지 한국교회 전체가 뒤집어써야 할 오명 때문에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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