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림형석 총회장) 총회 인권위원회(김연현 위원장)가 2월 21일 인권 선교 정책 협의회를 열어, 국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기로 뜻을 모았다. 협의회에 참석한 예장통합 목사·장로 50여 명은, 지금까지 한국 교계가 난민을 둘러싼 가짜 뉴스에 휘둘려 왔다는 사실을 반성하고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성경의 메시지를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올해 총회 인권 선교 정책 협의회 주제는 '난민 인권과 한국교회'였다. 발제자로 참석한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와 한용길 사무처장(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은 각각 '난민과 한국교회 인권 과제', '제주 난민 현황과 한국교회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콩고에서 온 마리(가명)는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며 경험한 일들을 소개했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서 난민 이슈는 뜨거운 감자였다. 한국은 1992년 국제 난민 협약에 가입하고, 2003년 아시아 최초 난민법을 제정했다. 난민을 수용할 제도를 갖춘 지는 오래됐지만, 정작 시민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 신청자 500여 명이 몰려왔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이와 함께 난민을 둘러싼 가짜 뉴스도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예멘 난민 500여 명은 대다수 남성이었다. 이를 근거로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온 가짜 난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난민을 수용하면 성범죄가 증가하고, 레바논처럼 한국이 이슬람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가짜 뉴스도 등장했다. 정부가 예멘 난민 한 명당 매달 138만 원을 지원하고, 한 국회의원이 이슬람 난민을 비판하면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퍼졌다.

총회 인권위는 국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기로 뜻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일 변호사 "난민, 소수자 중 소수자
국민들, 기존 사회문제 난민에게 투영
한국교회가 선명한 메시지 전해야"

국내 난민, 여성, 이주 노동자들을 변호하고 있는 이일 변호사는 사람들이 난민에게 느끼는 낯선 감정이 두려움과 공포, 혐오로 변질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독일 사회는 난민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미 존재하는 사회의 불안을 대리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기존에도 있었던 사회문제 원인을 난민에게 돌린다는 의미다. 이 변호사는 "예멘 난민에게 투영된 시각도 이와 같다. 여성 안전 문제나 취업난 등이 난민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난민이 소수자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소수자라고 했다. 그는 "난민 중에는 여성도 있고, 아동, 노인, 장애인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적국에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박해와 배척을 받는다. 타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사회 동심원에서 가장 바깥에 있는 존재들이 바로 난민이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이 난민에게 우호적인 국가가 아니라고 했다. 한국은 해마다 난민 신청자가 증가하고 있다. 2013년 전까지 난민 신청자가 매년 2000명이 안 됐는데, 2014년부터 난민 신청자가 해마다 2000~3000명씩 증가했다.

그는 "난민 증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예멘 난민 신청자가 제주에 몰려왔을 때, 많은 사람이 한국에도 난민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난민을 수용해 왔다. 그러나 난민 심사가 엄격한 편이다. 인정률이 OECD 국가에서 최하위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일 변호사는 한국교회가 난민 유입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성경은 예수가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한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예수도 제자들에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일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라며, 나그네를 환대하라고 강조했다. 교회가 이러한 가르침을 선명하게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일 변호사는 시민들이 기존 사회문제 원인을 난민에게 돌렸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용길 처장 "도내에 반난민 정서 확대
'성폭력 범죄자' 등 혐오 표현 난무
한국교회, 인식 개선 위한 교육 확대해야"

한용길 사무처장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를 도우며, 이들을 향한 각종 혐오와 폭력 등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예멘 난민 신청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퍼지더니, 급기야는 오프라인까지 확산됐다.

제주에도 반난민 정서가 빠르게 퍼졌다. 도청 입구에는 '성폭력 범죄자', '당장 추방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여과 없이 걸렸다. 혐오와 차별에 가담한 이들 중에는 기독교인도 있었다. 한 처장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매일 만나는 예멘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처장은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반난민 정서를 부채질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순찰을 강화해 도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난민 신청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 대안 없이 무조건 난민 신청자들에게 출도 제한 조치를 취한 것도 도내 갈등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열악한 상황에서도 예멘 난민 신청자를 지원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 처장은 이슬람권 나라에서 오랫동안 사역했던 선교사, 교계 연합 기구, 일부 지역 교회가 성금과 구호품을 마련해 줬다고 했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도록 빈 예배당이나 집을 개방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전국에서 온 여러 교회와 시민단체가 지원해 준 덕분에, 많은 예멘 난민 신청자가 안정적으로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용길 처장은 교계가 난민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정책을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교인들의 인권 감수성과 다문화 수용성을 기를 수 있도록 관련 세미나와 특강을 열고, 난민과 이주 노동자를 위한 전문 사역자를 양성할 수 있도록 기독교 대학 전공 과정을 개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문화 사회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전문 연구소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용길 사무처장은 지난해 제주에 반난민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콩고 출신 마리
"난민도 사람, 물질만 바라지 않아
기도, 대화, 교육 등도 큰 도움"

콩고 출신 마리는 2004년 한국에 입국해 2011년 난민 인정을 받았다. 그는 오랜 기간 난민 신청자로 지냈던 삶을 소개했다. 마리는 원해서 난민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난민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도 없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자신을 범죄자로 몰면서 망명 생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마리가 콩고를 급하게 탈출했고, 도착한 곳이 한국이었다. 한국에는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공항 인근 모텔에서 빵과 우유를 먹으며 버텼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외국인을 통해 콩고 커뮤니티를 만나고, 여러 교회와 시민단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마리는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한 시민단체에서 자신과 같은 이주 여성을 돕고 있다.

그는 모든 난민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이 단순히 물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마리는 "난민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교육을 제공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돈과 음식을 주는 게 전부가 아니다"고 말했다. 마리는 "난민도 사람이다. 저마다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한다.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위협적인 존재로 대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리는 한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지내며, 이주 여성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동안 교회가 혐오를 조장하고 난민을 적대했던 일을 반성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인권 선언문' 채택
혐오 조장, 난민 적대 반성
"기존 난민법, 배제와 구별 성격 강해
정부·국회, 국제 질서에 맞게 정비해야".

발표 이후 광주에서 온 한 목회자는 지역 교회가 난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난민 인정을 받으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이일 변호사는 "난민 인정을 받아도 국적을 취득하고 시민사회에 정착하는 과제가 남는다. 교회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환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지원이다"라고 말했다.

총회 인권위는 이날 난민들을 위한 인권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무슬림은 곧 테러 집단', '집단 개종 전략', '일자리 잠식'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기대어 혐오를 조장하고, 나아가 그들을 추방하는 것이 신앙의 결기로까지 인정받은 일부 왜곡된 시선이 있었다"고 반성하며,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포함해 세계 도처에서 생존을 위해 한국을 찾은 모든 난민에게 교회가 벽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교회의 거룩함은 배제와 차별이 아닌 약한 이웃과 연대로 확인되며, 우리의 사랑은 낯섦을 넘어서고 다름을 품는 실천을 통해 증명된다"고 했다.

정부와 국회에도 국내 난민 제도를 국제법 질서에 맞춰 정비할 것을 촉구했다. 총회 인권위는 "법과 정책이 난민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고 구별하는 측면이 강했다"며 정부와 국회가 난민 제도를 국제 인권 규범과 국제관습법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