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 / 베르너 H.켈버 지음 / 김태훈 옮김 / 감은사 펴냄 / 164쪽 / 1만 1500원

복음을 이해해야 한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쓴 것이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마가'라 전제하고 이 글을 통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가복음 안에 있는 파편적인 사건을 가지고 교훈하고 설교하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마가복음 자체가 들려주는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밝혀 준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와 가버나움과 예루살렘과 유대와 이방 땅을 넘나들며 길 위에서 배 위에서 복음을 가르쳤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의 시작되었다고 선언한다. 구전과 사회적 기억으로 존재하는 복음이 아니라, 마가가 직접 재해석한 종교적인 글이다. 30년경에 살았던 예수라는 인물을, 40년 후 성전이 파괴되어 불안과 공포에 있던 사람들에게, 누구인지 소개하고 그가 가르친 복음을 설명한다. 마가가 재해석한 복음은 마가복음 자체로만 이해해야 순수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마가가 소개하는 복음의 의미를 깊이 맛볼 수 있다.

마가복음은 야심차게 복음이 시작되었다고 출발하지만, 책의 마지막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내부자들에 의한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시작된 복음을 독자들이 이어 가야 한다고 부탁한다. 예수님의 여행이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듯, 마가가 들려주는 복음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가 받는 세례는 너희가 받을 수 없다"고 했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 십자가를 이어 갈 수 없는 것이지 우리는 실존적으로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의 복음은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고 죄를 해결하는 것이며 고난받는 것이다. 로마가 주는 복음처럼 부귀와 권세와 영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부요함과 달콤함을 거부하고 부정하며 생명의 떡으로 만족하는 신앙이다. 그의 복음은 바벨론에서 탈출하여 영문 밖으로 나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마가의 복음은 우리가 세속 권력을 버리고 영적 권위를 취하여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한다.

눈이 열려야 한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정말 탁월하고 천재적인 글솜씨를 드러낸다. 필자는 마가복음의 숲을 걸으며 이렇게 정교한 짜임새로 구성된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의 복음을 재해석하여 소개하는 그의 필력은 성령님의 지혜를 받아 적은 것이 분명하다. 그의 글로 펼쳐지는 예수님의 여행은 너무 논리적이고 풍성한 의미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책의 중심에는 예수와 복음과 십자가와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눈이 열려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액자식 구성을 절묘하게 구성한다. 유대 땅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귀신을 축출하는 것과 이방 땅에서 귀신을 몰아내는 사역을 똑같이 배열해 놓는다. 열두 살 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내는 이야기 속에, 열두 해 동안 혈루병 걸린 여인의 치유 이야기를 삽입한다. 무화과나무-성전 청결-무화과나무 이야기의 배열을 통해, 성전의 기능이 상업적으로 황폐화해 예수님이 원하시는 만민이 기도하는 성전으로의 회복을 간구하게 된다.

복음에 무지하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제자들을, 예수님은 끊임없이 가르치고 눈을 열도록 도와주신다. 세례요한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연결 지어도 제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벳세다 맹인과 맹인 바디매오를 치유한 샌드위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든 제자들의 영적인 눈을 열게 해 주려 해도 그들의 눈은 닫혀만 있었다. 오히려 샌드위치 속에는 예수님과 수제자 베드로와의 갈등과 싸움이 있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제자들의 잘못된 하나님나라 이해와 권력욕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두워진 눈으로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마가는 독자들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고 십자가의 길을 걷게 도와준다. 영적으로 예수를 만난 자만이 구원에 관심을 갖고 고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눈이 어두워 함정에 빠지고 내부자에서 외부자로 변해 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다. 변화산에서 변화된 영광을 보고도 그것을 현실로 취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제자들의 모습은, 눈이 닫혀 있는 우리의 모습 아닐까.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라

예수님은 귀신을 몰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베푼다. 유대 땅에서도 이방 땅에서도 유대인과 이방인이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선포한다. 남성과 여성이 차별이 없는 동등한 피조물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유대인의 세계관을 뒤집어 버리고 모든 사회적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그의 나라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가족이 되게 하는 것이고, 민족과 출신과 성별과 신분을 철폐해 평등한 백성이 되게 한다.

하나님나라는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생활 방식과 새로운 우선순위로 이루어진다. 형식적인 경건과 가식적인 예배로 세워지지 않는다. 거듭난 마음과 존재의 변화를 통해 확장되어 가는 나라다. 기존 예루살렘과 유대 지도자들의 경건으로는 꿈도 꿀 수 없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심령의 변화와 새사람으로 옷 입을 때만 성취해 갈 수 있다. 폭력과 착취와 갈취와 횡포와 옛사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거룩한 곳이다.

또한 마가를 통해 소개되는 이 나라는 복음의 씨앗이 심겨 성장하고 확장되는 나라이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심기고 새들이 찾아와 쉴 수 있는 큰 나무로 성장한다. 그런데 마가는 그 나라가 죽음으로 성장한다고 연결한다. 성장하고 확장해 가는 방법이 십자가이다. 외적인 정결이 아니라 내적인 정결을 유지해야 하고, 겉옷을 찢는 게 아니라 마음을 찢는 것이다. 씨앗이 썩어 없어지므로 나무가 자라듯 누군가의 밀알 됨이 하나님나라를 성장시킨다.

십자가의 흔적을 가져라

마가복음은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주님의 십자가와 고난에 집중하고 있다.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갖는 마가복음은, 헌신과 희생과 십자가의 길을 강조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여행하며 자신이 고난당하시고 대적들에게 넘겨지고 십자가에 죽을 것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십자가의 길을 기대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제자도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길을 가지 못한다. 개인의 명예와 권세에 사로잡힌 그들은 변형된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도, 아들을 향한 하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제자도를 걷지 못한다. 끝내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고 저주하는 자리까지 이른다. 개인의 생명과 사람들의 인기가 예수님보다 중요하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하고, 십자가 달렸을 때 로마 군인도 "그는 정녕 의인이었다" 고백하고, 죽은 후에는 외부인이었던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수습한다. 하지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고 독자들이 믿었던 여인들마저 예수님의 복음과 부활을 전하지 못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제자도는 고난의 길이고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자신의 길을 따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마가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로마의 폭력으로 불안한 성도들에게 복음과 제자도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내부자들인 제자들은 그것에 실패했고 오히려 외부자들이 그 길을 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어디 속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속에 무엇이 새겨 있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끝으로 마가는 우리에게 교회의 최대 적은 값싼 은혜라는 본회퍼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십자가를 피하려 하고 고난과 희생 없이 빛 좋은 개살구로 살려고 한다. 신앙은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아무런 결단 없이 세속의 부귀와 영광을 따르는 교회를 본다. 성도의 심령을 마비시키는 것은 십자가 없는 영광인데, 제자도 없는 교회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요, 70년의 예루살렘이 되지 않겠는가.

방영민 / 크리스챤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