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과 여러 인권 단체는 매년 초 학술 대회를 연다. 1월 혹은 2월, 서울 소재 대학에서 2박 3일간 열리는 '성소수자 인권 포럼'에서는 철학·사회학·여성학 등 인문학 시각에서 퀴어·젠더를 연구하는 신진 연구자들의 발표를 들을 수 있다.

성소수자와 관련한 세션 중에는 종교 분야도 있다. 과거에는 범종교 차원에서 주제를 잡고 패널을 구성했지만, 최근에는 주로 개신교만 다룬다. 대다수 한국교회가 동성애를 적으로 상정한 상황이기 때문. 보수 개신교가 어떤 근거를 드는지,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하나만 가능한지, 한국에는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교회밖에 없는지 등을 놓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독인들이 나와 증언한다.

올해 종교 세션은 '여성신학으로 퀴어들기'라는 주제로 1월 26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렸다. 믿는페미 도라희년 활동가, 미국연합감리교회(UMC) 유연희 목사, 섬돌향린교회 정유현 전도사가 발표를 맡았다. 참석자 50여 명 중에는 자신을 비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사람도 1/3 가까이 됐다. 이들은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종교 세션을 찾았다며 발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제 11회 성소수자 인권 포럼이 1월 26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여기, 축제'라는 주제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소수자를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하는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는 보수 교단에 '문제 교회'로 낙인찍힌 곳이다. 2017년과 201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고신 등 주요 교단은 임보라 목사를 '이단'(또는 교류 금지)으로 지정했다. 서울 마포구의 작은 교회가 동성애 때문에 전국구 교회가 된 것이다.

정유현 전도사는 많은 사람이 섬돌향린교회를 성소수자만 다니는 교회라고 오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다르다고 했다. 반동성애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교회의 다양한 얼굴은 보지 못하고 동성애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반기는 것은 섬돌향린교회를 규정하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섬돌향린교회는 직분이 없고 모든 교인이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수평적 공동체를 추구한다. 2013년 설립돼 출석 교인 50~70명을 꾸준히 유지하는 섬돌향린교회는 완성된 공동체가 아닌, 새롭게 수정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평범한' 공동체라고도 했다. 정유현 전도사는 섬돌향린교회에서 성소수자가 안전할 수 있기에, 여성·장애인·노동자 누구나 안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UMC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유연희 목사는, '여성신학'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교회 풍토에서 '퀴어신학'이 인정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반동성애 활동은 성소수자 그룹을 혐오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는 신학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여성 인권 증진 운동과 함께 발전한 여성신학의 맥락에서 퀴어신학을 봐야 한다고 했다. 퀴어신학은,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시대 변화와 맞물려 성서를 '퀴어'한 관점에서 읽는 법을 연구한다. 그런데도 많은 남성 학자가 이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배척해 왔다며 "여성신학이 존재하지 않는 학문인 것처럼 여기는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해외 여러 사례를 봐도 여성을 전통적인 역할로만 한정하는 교회는 점점 사라진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일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라희년 활동가는 지난해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탈동성애 사역자 이요나 목사를 초청한 사례를 들며, 교회가 사람의 존재를 찬반으로 명확하게 가르기 전에, 경계선에 서서 공존을 모색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인용하며 "혐오의 언어로 환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어떻게든 연결돼 있고 동등하며 차별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유현 전도사(맨 오른쪽)는 섬돌향린교회처럼 성소수자를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하는 교회가 여성·장애인·노동자 누구에게나 안전한 교회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발표를 들은 참석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신앙과 관련한 고민거리가 나왔다. 기성 교회에서 동성애 혐오 설교에 지쳐, 성소수자를 그대로 받아 주는 '무지개 교회'로 옮긴 이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페미니즘에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동성애 문제는 별개로 봐야 한다고 보는 동료 교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질문하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이런 논의가 한국교회에서 극히 적은 사람만 관심 있는 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흔히들 '보수 개신교'가 동성애자를 혐오한다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 한국교회가 그렇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교회는 극소수이고, 어느 개신교 집단에 가도 성차별, 퀴어 배제, 온갖 혐오가 가득하다. 이런 현실에서 개신교인으로 살아가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구조가 바뀌지 않는데 내가 개신교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사는 게 사회에 어떤 이로운 영향을 주는지 고민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유연희 목사는 "제도화된 종교가 예수를 오해하게 만든 지점이 많다. 역사를 볼 때 건물로서의 교회는 종말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종말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런 논의를 통해 성소수자 이슈를 토론할 수 있는 교회가 증가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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