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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환경 지키기 위한 작은 교회들의 '큰' 연대

고양·파주 교회 7개, 골프장 증설 백지화 위해 정기 기도회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9.01.18  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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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황동골프장증설백지화기독교대책위원회는 1월 3일부터 '고양시청 목요 기도회'를 열고 있다. 1월 17일 열린 기도회에는 그리스도인 7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청사에는 찬바람만 쌩하다. 공무원들은 이미 퇴근한 지 오래다. 1월 17일 저녁 8시, 경기도 고양시청 한편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랜만입니다", "늦은 시간인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등 짤막한 안부 인사를 나눈 이들은 고양시의회 현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유모차에 탄 아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70여 명은 십자가, 성찬기가 놓인 간이 제단 앞에 빙 둘러섰다. 회사를 마치고 그대로 시청으로 달려온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왜 추운 겨울 저녁, 보는 이 하나 없는 조용한 시청에 모였을까.

참석자들의 손에 들린 주보에는 '산황동 골프장 증설 백지화를 위한 고양시청 목요 기도회'라고 적혀 있었다. 찬송가 '뜻 없이 무릎 꿇는'과 함께 시작한 목요 기도회에서는 대한성공회 의복을 갖춰 입은 사제 세 명이 제단 뒤편에 서서 성공회 전례에 따른 성찬례를 진행했다.

성공회 일산교회 김병내 사제는 "여기 모인 우리는 교단이 다르고, 입은 옷과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씩 달라도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다. 자연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자녀다. 자연을 훼손하고 우리를 병들게 하는 골프장 증설에 반대하고 마음을 모으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이번 기도회는 성공회 사제들이 성공회 예전을 따른 '감사 성찬례'로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도회에 참석한 산황산골프장증설반대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 이재우 홍보팀장은 "도심의 숲을 지키기 위해 싸운 지 6년째다. 이곳을 지키는 게 아이들과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 믿고 달려왔다. 사안이 장기화하면서 반응이 사그라져 힘들 때 교회들이 이렇게 기도회로 뜻을 모아 주시니 힘이 난다. 깨끗한 물과 공기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우리 고양을 지키는 일에 교회가 함께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LED 초를 들고 골프장 증설 백지화를 위해 기도했다. 이들은 "고양시의 허파 산황산을 보존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고양시민의 식수원을 지키기 위해 시민의 마음이 모여 골프장 증설이 취소될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목소리로 기도했다.

'고양시청 목요 기도회'로 불리는 이 기도회는 지난 1월 3일부터 시작했다. 현재 기도회에 참석하기로 뜻을 모은 교회는 나들목일산교회(유형석 목사), 동녘교회(김경환 목사), 일산교회(김병내 사제), 행신교회(황세진 사제), 파주씨앗교회(최석진 사제), 파주우물교회(이종민 사제), 주날개그늘교회(남오성 목사) 등 고양·파주 지역에 뿌리내린 작은 교회 7곳이다.

광우병 파동,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등 국가를 뒤흔드는 중요한 이슈를 놓고 교회들이 연합해 기도회를 연 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지역 이슈를 놓고 지역 교회가 연합해 매주 기도회를 여는 일은 드물다. 교회들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게 된 데에는 산황산 골프장 증설 백지화 문제를 더 널리 알리고 범대위 활동에 힘을 싣기 위해서다.

150만 주민 식수 300미터 옆에 골프장
시민들 반대 집회, 단식 투쟁에도
전현직 시장 모두 "할 수 있는 일 없다"

고양 주민들이 산황산 골프장 증설 문제에 관심을 두고 싸운 지 벌써 6년째다. 고양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 수십 개가 골프장 증설 백지화를 주장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산황산의 위치와 어떤 문제 제기가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산황산은 일산 신도시에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 사이에 남은 도시 숲이다. 산황산 밑자락에 있는 주거지는 자연 촌락의 형태를 띠며 이곳에는 도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농민이 모여 살고 있다.

범대위는 골프장 증설 예정지와 정수장의 위치가 300미터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골프장의 농약이 식수 오염의 원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제보자들 동영상 갈무리

산황산에는 9홀 골프장이 하나 있다. 이 골프장은 2011년, 9홀을 늘려 18홀 골프장으로 운영하겠다며 산황산 부지 용도 변경 제안서를 제출했다. 고양시는 2014년 7월 이를 승인했고, 2015년 8월에는 사업자를 지정해 고시까지 마쳤다. 해당 사업자는 같은 달,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시에 제출했다.

나중에야 이를 알게 된 범대위는 고양시가 주민 의견도 묻지 않고 골프장을 증설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범대위는 골프장을 증설하게 되면 약 300미터 떨어져 있는 K-Water 고양정수장의 식수가 오염될 것을 우려했다. 이 정수장에서 나오는 물은 고양·파주·김포 지역 150만 명에게 공급된다.

정수장에는 물의 불순물이 가라앉게 만드는 침전지가 있는데, 이 침전지는 덮개 없이 외부에 노출돼 있다. 골프장에서 뿌린 농약이 침전지까지 날아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범대위는 전국 어디에도 정수장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골프장 증설 허가가 난 곳은 없다고 했다.

식수 오염만 문제가 아니다. 범대위는 미세 먼지 정화 역할을 하는 숲을 보존하고 가꿔야 할 의무가 있는 지자체가, 오히려 숲을 파괴하는 데 앞장선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다양한 지방자치단체 사례를 봤을 때 환경은 한 번 파괴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시가 간과하고 있다고 했다.

고양시는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근거로 한 범대위 주장은 우려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사업자 역시 주민들이 우려하는 비산 농약 대신 친환경 농약을 사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농약이 날아가 정수장의 식수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범대위는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골프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농약, 제초제에 의한 고양정수장 오염, 행정절차의 정당성 등이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다며, 공동검증단을 구성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동검증단을 구성하기로 한 고양시는 시일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범대위도 모르는 사이 한강유역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를 강행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시·사업자·범대위가 공동으로 검증할 것이라 믿고 있던 범대위는, 부랴부랴 한강유역환경청으로 달려가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청 사람들이 일방적인 검증을 강행할 수 없도록 현장 실사를 막았다.

그러는 사이 증설 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수백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주민들의 반대와 여의치 않은 자금 사정 때문에 경영난을 겪던 골프장 증설을 미루고 있던 사업자 측이 회생 절차를 밟는다면 사업을 재추진하게 된다. 그때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반대 주민들 의견이다.

2013년경 시작된 골프장 증설 백지화 문제는 6년이라는 긴 시간 이어졌다. 장기화하는 동안 고양시장도 바뀌었다. 범대위는 이재준 현 고양시장(더불어민주당)에게 사업자가 회생하기 전, 골프장 증설 계획안을 직권 취소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고양시는, 사업 허가가 난 것을 시가 이유 없이 취소하면 행정 소송에서 패소할 것이 뻔하다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범대위는 고양시의회 입구 한쪽에 텐트를 치고 시민과 함께 릴레이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범대위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12월부터 시청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12월 5일, 시청 본관 입구에 설치한 텐트는 시 공무원들의 손에 파손됐고, 당시 혼자 천막을 지키던 여성 활동가 정이랑 씨는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무원들에게 팔다리가 붙들린 채 쫓겨났다. 보다 못한 고양환경운동연합 조정 공동의장은 12월 24일부터 17일간 단식 투쟁을 하다 응급실에 실려 갔다.

기도회에 참석한 정이랑 씨는 "일산의 한 대형 교회 앞에서 이 문제를 알리는 전단을 나눠 줬다. 교회 측에서는 정치적이어서 안 된다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공공도로였음에도 그 교회는 그렇게 반응했다. 싸움이 장기화하면서 힘들어진 이때, 골프장 증설이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알고 연대하러 와 준 지역 교회들이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환경·생존권 등 공익 위한 활동,
정치적이라 해도 교회가 나서야
교회가 할 수 있는 기도회로 연대"

고양시청 목요기도회는 나들목일산교회 유형석 목사가 지역 교회들과 뜻을 모아 시작했다. 나들목일산교회는 창립 초기부터 지역 시민단체들과 교류해 왔다. 골프장 증설 문제도 그동안 범대위가 개최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등 소극적으로 연대해 왔다. 하지만 12월 5일 단식 농성장 철거 과정을 보고 교회가 할 수 있는 더 적극적인 연대 방법을 고민했고, 12월 한 달간 수요 예배를 고양시청 범대위 농성장 곁에서 진행했다.

성찬을 집전하는 사제들의 뒤로 범대위가 붙여 놓은 골프장 증설 백지화 관련 문구들이 보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나들목일산교회는 지역의 다른 교회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회를 목요일 저녁 시간으로 옮기고, '고양시청 목요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1월 2일 첫 기도회를 시작했다. 여기에 손잡은 동녁교회·일산교회·주날개그늘교회는 2015년 세월호 2주기 추모 연합 예배를 함께 진행하는 등 지역 사회 정의와 평화 이슈에 함께 목소리를 내 온 교회들이었다.

일산의 한 대형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이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로 보일 수 있다. 한국의 많은 교회는 세월호 사건조차 "교회가 정치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며 침묵했다. 하지만 유형석 목사는 사회정의와 평화를 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정치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낼 때는 그 목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에 나섰던 것처럼 자기 이익을 관철하려 하거나 무슬림·난민·동성애 등에 배타적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환경 문제, 시민의 생존권 등 사회 보편적 정의와 평화를 위해 목소리 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개신교다운 행동이 예배, 곧 기도회라고 생각해 정기 기도회를 열게 됐다."

주날개그늘교회는 지난 1월 13일 주일예배 때, 이 문제로 17일간 단식을 감행한 조정 의장을 초청했다. 남오성 담임목사는 "범대위 활동이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가, 단식에 천막 농성까지 아주 힘든 상황이다. 그동안 함께 활동했던 지역 교회들이 기도회를 한다고 해서 우리 교회도 힘을 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날개그늘교회는 다음 기도회 인도를 맡았다.

이 작은 교회 7개는 '산황동골프장증설백지화기독교대책위원회'를 꾸려 범대위와 연대한다. 유형석 목사는 "산황산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고 고양·파주·김포 시민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연대한 만큼, 범대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릴레이 단식 농성이 해제될 때까지 목요 기도회를 이어 갈 예정"이라며, 관심 있는 지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를 부탁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달려라 커피' 트럭을 운영하는 안준호 목사가 참석자들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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