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는 1월 14일 토론회를 열고 안희정 성폭력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짚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법원은 감리교신학대학교 ㅅ 교수가 논문 지도 교수 지위를 이용해 제자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권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도덕적 문제는 될 수 있지만, 권력 차이에서 발생한 위력을 행사해 성적 접촉까지 이어졌다고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논리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판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안희정 전 지사는 위력을 이용해 수행비서에게 수차례 성폭력을 가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때도 재판부는 위력은 존재하지만 이를 행사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위력은 존재 자체가 곧 행사"라고 한 2005년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것이다.

안희정 전 지사 판결에는 이것 외에도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1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1심 판결의 문제점을 공유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1심 판결에 드러난 모순을 지적했다. 차혜령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는 없었다"는 말 △JTBC 보도 직후 안 전 지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는 글에 대한 판단 부재 △피고인 진술의 맹목적 옹호 등이 1심 판결의 주요 문제점이라고 정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박인숙 변호사는 "위력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업무 외적인 친분이나 이성적인 교감 없이 성관계가 이루어졌다면, 이는 위력 관계에 있는 피고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응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력은 유·무형적인 것으로 업무 외 관계에서 위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며 기존 판례에 반하는 해석이라고 했다. 위력은 존재 동시에 작동하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안희정 전 지사 1심 판결문에는 '성 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성 인지 감수성은 성폭력 사건이 가해자 위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한 2차 피해 가능성 등을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최근의 성폭력 사건 판결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개념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성 인지 감수성이 중요한 고려 기준이 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재판부가 성 인지 감수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통념을 정해 놓고, 김 비서가 이를 어긴 것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 살피는 정도로만 성 인지 감수성을 언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념을 해체하는 것이 아닌 통념을 굳건히 하는 데 성 인지 감수성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안희정 사건이 권력에 의한 성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안희정 전 지사가 지닌 권력·권세·지위만으로도 행위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안 전 지사의 동기를 설명할 때 '지위'를 제외할 수 없다며, 항소심에서는 이 지점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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