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에는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애벌레가 그 꼭대기를 향해 서로를 밟고 올라가고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그동안 해결되지 않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 거 같았다. 무엇보다 행복이 있을 거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수많은 애벌레가 그곳을 향해 미친 듯이 올라갈 이유가 없다. 다만 구름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저 꼭대기가 천국이라 치면, 애벌레들이 뒤엉켜 서로 밟고 올라가야 하는 현실은 지옥이다.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지옥을 통과해야 하나 보다. 그렇게 많은 애벌레는 생각했다.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을 보면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를 떠올리게 한다. 성공이라는 뜬구름에 가려져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모든 학생이 꼭대기를 향해 서로를 밟고 올라가고 있다. '우리는 왜 올라가고 있지? 왜 성공해야 하고, 어떤 걸 성공이라고 하는 거지?' 그 누구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어른은 같은 말을 한다. "너희가 올라가 보면(나이 들면) 저절로 알게 돼." 다들 정확한 목표 없이 단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오르길 포기하는 자신의 모습 또한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어쨌든 올라간다.

예전에 어떤 자매에게, 자신이 과외했던 학생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식사 시간을 9분에서 1분 더 줄이자는 엄마의 압박에 아이는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했고, 그 자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런데 그 후에 학생의 말이 충격적이다. "선생님! 저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쉬고 싶은 거예요."

드라마 '스카이캐슬'. JTBC 홈페이지 갈무리

요즘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큰 요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는 거다. 스카이캐슬이라는 제목이 보여 주듯, 아무나 오를 수 없는 하늘만큼 높은 꼭대기 성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그들만의 공동체가 있다.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직업에, 아무나 지닐 수 없는 명품에,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교육. 캐슬 주민들은 자부심이 가득했고, 그들이 만든 기준에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그런 교육을 강요한 부모를 저주한 아이, 합격하지도 않은 하버드대를 1년 동안 다니며 주변에 거짓말을 일삼아 온 아이, 공부만 알고 자기만 아는 아이라 주변에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아이. 공부만 강요받는 캐슬의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자살은 매우 오랫동안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청소년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늘 꼴찌였다.

올림픽에서 우리를 가장 열광하게 만드는 건 금메달이다. 모든 스포츠 선수와 코치의 목표는 금메달이고, 무엇보다 모든 언론 매체가 금메달에 초점을 맞춘다.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혜택이 큰 반면, 그 목표 하나만을 위해 달려왔지만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많은 선수는 앞으로의 삶이 막막해진다. 그렇다고 전 세계에서 1등만 받을 수 있는 금메달을 딴 선수가 행복할까? 누구보다 메달이 많은 최고의 선수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어려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훈련 도중 폭행을 당해 왔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1등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다른 어떤 일도 참아야 한다는 관행이 스포츠계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금메달이 피해자의 삶을 보상해 주지는 못했다.

내가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에서 제일 좋아했던 특집이 복싱 특집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위기에 놓인 비인기 종목의 매니저가 되어 보는 특집이었는데, 종목은 여자 복싱이었다. 새터민 출신의 선수를 돕고자 마련한 특집이었지만 일본 출신의 상대 선수의 사연도 만만치 않게 사정이 어려웠고,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방송에서 시합의 승패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부분이 인상 깊었고, 참 좋았다. 시합이 아름다웠던 건 승패보다는 시합 준비하는 사연과 과정, 그리고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그들의 도전이었다.

잘못된 관행과 아이들의 불행, 무엇이 문제였을까? 애초의 목적이 잘못되었다.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 있으니, 불행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거다. 의사, 교수, 대통령, 운동선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크리스천이라면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목적은 언제나 그렇듯 관계에 있다. 자기가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환자들과의 관계, 새로운 지식에 목마른 학생들과의 관계, 당장 복지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지독한 가난의 늪에서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서민들과의 관계, 그리고 각박한 세상에서 자신들의 도전 정신으로 위로받는 시청자와 관객들과의 관계. 교육의 목적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있지 않고 늘 높은 등수와 좋은 대학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아이들은 탈출구가 없다. 삶의 목적은 좋은 직업과 1등이 아니라 나와 주변과 사회와의 관계에 있다.

세상이 지향하는 스카이캐슬과 예수가 제시한 '하늘나라'는 분명 다르다. 아니 지향점은 정반대다. 세상은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많은 사람이 동경할 만큼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성공이라 말하지만, 하나님나라는 더 낮은 곳에 내려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관계하고 그들의 희망(구원)이 되어 주는 걸 하나님나라 혹은 낙원이라고 말한다. 메시아를 기다렸던 많은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할 왕을 기대했는데, 결국 오신 메시아는 정말 보잘것없는 출신과 직업에, 세상에서 손가락질당하는 죄인들의 소굴에 들어가 그들의 죄를 대신 덤터기 쓰고 죽었다. 어찌 보면 그 어떤 극보다 충격적인 결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삶의 가치관이 바뀐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결국 그 당시 세상의 전부였던 로마를 뒤흔들었다.

'네 존재의 이유는 1등'이라고 말하는 건 평생 두려움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는 폭력이다. 어른들부터 이런 불행한 목적을 하루빨리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늘 그렇듯이 1등이 아니라 사랑이다. 삶의 목적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했던 애벌레가 결국 찾은 목적은 사랑이었다. 다른 애벌레와 사랑을 하고, 나비가 되고, 아름다운 꽃들의 사랑의 매개체가 되어 꽃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던 나비처럼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안아 주는 어른들의 사랑이다.

이신근 / 희년함께 협동간사

※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