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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두 명이나 굴뚝 위에 올려놓고서도…"

[인터뷰] 파인텍 고공 농성 동조 단식, 교회협 인권센터 소장 박승렬 목사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9.01.09  22: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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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착잡하다"고 말하는 박승렬 소장(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박 소장을 만난 1월 8일은 파인텍 해고 노동자 2명이 75m 굴뚝에 올라간 지 423일째였다. 이날 파인텍 모회사 스타플렉스는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투쟁하고 있는 이들을 직접 고용하면 노조가 회사를 파괴할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파인텍 문제 해결을 위해 종교계 대표 중 한 명으로 20일째(1월 8일 기준) 동조 단식을 이어 가던 박승렬 소장은, 이런저런 노력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스타플렉스의 발언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우리가 평소에 '안타깝다', '착잡하다'는 말을 많이 쓰니까 어떨 때는 죽은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깊은 곳에서 슬픔이 올라온다. 우리가 책임지고 살아가는 세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가 목숨까지 내어놓고 살려 달라고 외쳐야 하는 이런 상황이 너무 야만적이다."

파인텍 문제는 조금 복잡하다. 폴리에스터 직물을 생산하던 한국합섬은 2007년 파산했다. 2010년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플렉스는 스타케미칼로 이름을 바꾸고 2011년 공장을 재가동했다. 하지만 2013년 1월, 스타케미칼 김세권 회장은 적자 누적을 이유로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했다. 회사는 한국합섬을 헐값에 인수해 공장을 분할 매각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투기 자본의 '먹튀'라고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제명했다.

회사와 싸우겠다고 남은 노동자는 11명. 2015년, 차광호 지회장(민주노총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이 '408일' 고공 농성 끝에 사측의 합의를 끌어냈지만, 회사는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파인텍지회 소속 노동자 5명 중 2명이 2017년 말 다시 굴뚝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회사는 꿈쩍하지 않았다. 차광호 지회장은 동료들이 굴뚝 위에서 또다시 408일을 맞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 8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박승렬 소장(가운데)은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왼쪽)과 송경동 시인(오른쪽)과 함께 21일째 동조 단식 중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종교·시민 단체 대표들은 열흘 후, 차광호 지회장과 연대하기 위해 동조 단식을 시작했다. 408일이 되는 12월 24일을 6일 앞둔 시점이었다. 박승렬 소장과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나승구 신부, 송경동 시인이 참여했다.

아기 예수가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성탄절은 별일 없이 지나가 버렸다. '설마 해를 넘기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도 그저 기대일 뿐이었다. 노사는 연이은 협상에서 서로의 견해차만 확인했다. 과거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사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사측의 노조 혐오 정서는 양쪽을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회사가 계속 고자세로 나오자, 굴뚝 위 노동자들도 배수진을 쳤다. 1월 6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차광호 지회장, 종교·시민 단체 대표들에 이어 시민들도 동조 단식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스타플렉스와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단식에 임하고 있다. 생계를 빼앗긴 노동자들의, 말 그대로 '목숨을 건 투쟁'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 박승렬 소장을 만났다. 그는 1월 8일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교회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사랑의 눈으로 노동자들을 바라보고 곁에 있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소장과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동조 단식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교회협 인권센터 소장이라는 직함을 맡고 있다 보니 그동안 파인텍을 위한 기도회도 참석했고 기자회견에서 발언도 했다. 사실 어느 정도 내가 할 바는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08일은 넘기지 말자"는 말이 무겁게 다가오면서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408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노동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방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12월 24일이 408일이 되는 날이어서 '그 전에 끝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 것도 있다. 2018년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 구유의 어둠 속에 놓인 아기 예수를 묵상했다. 현재 가장 어둡고 낮은 자들이 있는 곳이 굴뚝이라 생각해, 여기서부터 그리스도의 성탄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 기대와 다르게 단식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1월 8일) 오전 회사는 재정적 여력은 있으나, 노조가 회사에 들어오면 망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노동·노동자에 대한 혐오, 무시, 공포감 같은 게 혼재된 발언이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노동자를 천시하는 환경에 노출돼 있어서, 노동의 가치나 소중함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것 같다. 경영자는 노동자를 생산에 필요한 부품처럼 대하고,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 그런 노조 혐오 정서, 노조를 무시하는 행태가 지속됐기 때문에 이렇게 1년 넘게 굴뚝 위 노동자들을 방치한 것이다.

주일예배를 준비해야 하는 토요일을 제외하고 박 소장은 스타플렉스가 입주한 서울 목동 CBS 사옥 앞 농성장에 머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종교계가 양쪽의 협상을 주선하고 있다.

노사 양측 모두 서로에 대한 경계가 심해 잘 만나지 않으려 했다. 종교계가 협상을 '중재'할 수는 없지만, 우선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벌써 중재를 말하기에는 양쪽 감정의 골이 너무 깊다.

사측이 과거 합의안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다시 굴뚝에 올라가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측이 먼저 중재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자신들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종교계가 제시하는 좋은 안 있느냐'는 식으로 협상에 임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먼저 타협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노조에게는 이런 태도가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자본이 노조를 혐오하고 공포심을 갖고 있다면, 노조는 자본을 향한 분노와 불신이 깊은 상황이다.

- 그럼에도 노사 갈등 현장에서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보는가.

저번 KTX 해고 승무원 문제가 좋은 예다. 사측도 종교계가 요구하면 여론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노동자도 종교계가 적어도 사용자 측으로 치우치거나 편파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노동위원회, 언론, 심지어 여론까지 자본가 편인데, 종교계는 최소한 중립적이리라는 기대가 있다. 종교인들이 나서면 서로 마주 보고 앉을 수는 있게 되는 것 같다.

- 종교인이 나서면 가장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교회는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노동 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라는 구절을 저주라고 가르치는 지금의 성서 해석부터 바뀌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철저하게 노동·근검·절약·청빈을 기본 정신으로 가르치지 않았나. 개혁교회가 이런 전통을 잃고 있다.

교인들을 인구 비율 그대로 적용하면 절반이 넘는 수가 노동자다. 본인이 노동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배우자나 자녀 등이 노동자다. 어쨌든 노동자의 가족으로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를 하대하는 문화가 넓게 퍼진 데는 교회 지도자들의 원죄가 크다.

목사는 교인들의 헌금을 받아 생활하면서 세금은 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노동자들이 낸 헌금을 그들의 삶과 분리했다. 헌금을 받는다는 건 노동자의 삶을 받는 것이다. 단순한 돈이 아니고 교인들의 피와 땀, 마음과 삶이 담겨 있는 것인데, 그걸 받아 생활하면서 어떻게 노동을 천하게 여길 수 있나.

- 노동자들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 주장이 합리적이지 않다. 그들의 주장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삶과 마음을 봐야 한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대표에게 속았고, 대표의 탐욕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데 대한 분노와 불신이 있다. 그렇기에 쉽게 자세를 굽히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양쪽이 대화를 통해 조정하고 맞추면 된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지 말고 그들의 삶을 보려고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우리도,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한다. 성경 해석에만 문자주의를 적용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곳에서도 적용하는데, 종교인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보는 사람들 아닌가.

먼저 판단하려 해서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을 봐도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측은지심이 생길 수 있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상황만 보고 판단한다. 교회가 헤아림과 배려,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 주면 좋겠다.

굴뚝 위 노동자들은 1월 9일을 기점으로 고공 농성 424일째를 맞았다. 1월 6일부터는 단식에 돌입해 극한의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노동자들을 극한으로 모는 사회 환경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점을 회복하면 좋을까.

부끄러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저렇게 사람을 두 명이나 굴뚝 위에 올려놓고서도 우리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다는 게 부끄럽다. 내가 해결해 보겠다며 나서는 정치인 한 명 없는 것도 부끄럽다. 이렇게 극한의 갈등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우리 사회 공동체, 이웃이 앓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함께 관심 갖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기도하면 좋겠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 단순히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지난 12월 6일 차광호 지회장이 청와대에서 이곳(목동)까지 오체투지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그 사람들의 일'이었다. 하지만 사회 원로들이 와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조 단식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여론이 조금씩 변했다. 3년간 노동자들과 얼굴도 마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사람의 입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뉴스가 되니까 갈등에서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염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현장을 방문해서 손잡아 주고, 곁에 있어 주는 것도 좋다. 교회가 큰일은 못 해도 작은 자들 옆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는 것만으로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지난해 성탄절 즈음, 목동에 있는 한 교회가 이곳에 와서 캐럴을 부르고 기도하고 함께 눈물 흘리고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캐럴이었다. 딱히 진보적이랄 것 없는 평범한 교회였다. 그분들은 이곳을 치열한 노사의 계급투쟁 현장이 아닌, 약자들의 아픔이 있는 사랑의 눈으로 바라봤다. 투쟁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을 판단하기보다, 위로하고 품어 주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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