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로마 공화정 시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은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시가행진을 했는데, 바로 옆에 노예를 태워 행진 내내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이 말은 장군에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 사람과 삶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 등을 상기했을 것이다.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어느 시대보다 긴 수명을 영위하는 현대의 인간은 얼마큼이나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까. 김영민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묘지가 사람들의 생활공간 가까이에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리쿠르고스(Lycourgos, 스파르타의 입법자)가 그토록 말했건만, 오늘날 사람들은 되도록 죽음을 외면한다. 묘지와 화장터는 혐오 시설로 간주되고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몽테뉴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죽음이 주는 무서움에 대한 가장 한심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바보이기에 사리를 못 보는 장님이 되려느냐!'"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6쪽)

그리스도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죽음'보다 '죽음 이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 그러나 '죽음'을 묵상하는 일과 '죽음 이후'를 묵상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랍 몰의 <죽음을 배우다 – 아르스 모리엔디>(IVP)와 김영봉 목사(와싱톤사귐의교회)의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 삶과 죽음에 관한 설교 묵상>(IVP)이다.

<죽음을 배우다>(IVP)와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IVP).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좋은 죽음' 전통 잃어버린 기독교

<죽음을 배우다>는 기독교 전통이 죽음과 죽음을 준비하는 문제를 어떻게 다뤄 왔는지, 오늘날 관점에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 살핀다. 책 표지에는 '죽음의 기술'을 뜻하는 라틴어 '아르스 모리엔디 Ars Moriendi'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본문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15세기, 사제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왔던 목판화이자 소책자 이름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죽음과 싸워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경우, 병마 앞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기보다 기도를 통해 치유의 기적만 바라며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죽음을 배우다>는 현대로 오면서 '죽음 이해'가 어떤 식으로 달라졌는지 조망하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따져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지난 세기, 죽음은 우리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20세기 전반에 이르러 사람들이 죽는 장소가 가정에서 병원으로 옮겨졌다. 1908년에는 전체 사망 건수의 14%(이하 통계는 미국의 상황 – 기자 주)가 병원이나 요양원 등의 기관에서 이루어졌지만, 불과 6년 후에는 이 수치가 25%로 치솟았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이 수치는 80%에 육박한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일반인들이 중증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전문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는 일을 전담했다. 이런 변화 덕분에 병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환자들이 – 최소한 일시적으로는 –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이 어떤 모습인지 잊어버리고 중요한 것을 놓쳐 버렸다. 요즘 사람들은 죽음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죽음을 배우다>, 22쪽)

목회자의 심방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죽음의 질이 낮다는 연구 결과 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교회가 잘 죽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불치병으로 고통받을 때 치료가 되리라는 믿음을 놓지 못해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호스피스 종사자, 의사, 간호사, 생명윤리학자, 유가족, 간병인, 영성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 문제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 △죽음 앞에서 교인과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장례식과 애도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하나하나 사려 깊게 풀어낸다. <죽음을 배우다>를 읽다 보면, 죽음과 삶에 대한 이해는 실상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된다.

"과거의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라는 신성한 순간을 오랫동안 준비했다. 그들은 죽음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영생의 모든 것이 걸린 사건으로 인식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죽음을 신실하게 실행하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침상에서, 임종을 앞둔 자신을 밤샘 간호하며 천국에 들어갈 증거를 찾는 가족과 친구들을 맞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배우기를 힘썼다. 영생에 가까이 갈수록 그들의 영성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중략) 가족과 친구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공동체 일원에게 들려줬다. 공동체는 평안과 소망 가운데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중략) 이렇게 사람들은 잘 죽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다. (중략)

수세기 전(오늘날 만성절을 지키는 전통에서는 아직도) 교회는 안식일마다 회중석에 앉아 있는 교인들뿐 아니라 부활을 기다리며 무덤에 누워 있는 신자들도 교회의 구성원으로 보았다. 죽은 신자들의 시신을 교회 건물 옆 묘지 또는 건물 지하나 벽 속에 매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성도의 교제'는 식탁 교제나 소그룹 모임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59~60쪽)

<죽음을 배우다> / 랍 몰 지음 / 이지혜 옮김 / IVP 펴냄 / 272쪽 / 1만 2000원.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죽은 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산 자를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는 김영봉 목사의 장례 설교집이다. <강단과목회>에 3년 동안 연재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장례 설교' 총 16편이 담겼고, '여는 묵상'과 '닫는 묵상'이 각각 책 처음과 끝에 놓여 기독교 신앙으로 어떻게 죽음과 삶의 문제를 대할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마지막 부록에서는 △임종 과정에서 어떻게 목회할 것인지 △장례 설교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등 주의 사항과 간략한 매뉴얼을 제시한다.

각 설교는 설교 본문, 고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간략한 정보, 설교문으로 구성돼 있다. 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담긴 삶의 구체적 정황들, 고인이 생전에 보인 신앙의 모습들 등이 고스란히 장례 설교에 담겼다. 고인을 향한 '맞춤 설교'다. 저자 김영봉 목사 특유의 따뜻함과 목회적 배려가 잘 묻어나는 장례 설교의 모본을 만날 수 있다.

"고인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유학 중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이민 생활을 시작하셨다. 원래 심약했던 고인은 첫 아들을 낳은 후부터 우울증을 앓기 시작하셨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 승승장구하는 남편, 백인 아이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자녀들 그리고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미국 생활 등으로 인해 우울증은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졌다. 남편이 은퇴한 뒤, 잠시 동안 건강하던 고인은 말년에 골수암 진단을 받으셨고 치료 과정에서 다시 병세가 깊어졌다. 그렇게 약 3년을 고통받다가 70대 후반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이 설교는 고인의 고별 예배에서 나눈 말씀이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37쪽)

한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그 사람의 인생과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례 설교에는 한 사람을 이해하고 추억하는 차원을 넘어 유족, 신앙 공동체에 위로와 감화를 주는 메시지가 녹아 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설교집을 읽는 것이 아니라, 16개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일이다. 사람을 어떻게 진솔한 태도로 대하고 기억할 것인지 상기하는 작업이다.

얇은 책이지만, 상실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 앞에 어떻게 머무를 것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을 어떻게 격려하고 위로할 것인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을 읽으면, 고별 예배 설교 현장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책에 담긴 고인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고 묵상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갈 것을 권한다.

"조객으로서, 유가족 입장에서 말하자면, 여러 번의 '예배'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여러 번의 '설교'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찬송과 성경 말씀 그리고 기도입니다. 설교는 대부분 안 들리거나 안 듣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상황에서도 설교자는 하나의 고별 설교에 마음을 쏟고 다른 예배에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간단히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233쪽)

"고별 예배 설교에서 가장 마음을 쓰는 것은 고인의 생애에 대한 신앙적 해석입니다. 고인에게 중요했던 사건이나 이야기를 성경 말씀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신학은 한 사람의 전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기는 해석된 역사입니다. 해석되지 않는 역사는 사건일 뿐입니다. 해석되지 않은 한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마음을 담아 말씀을 준비하면 유가족에게는 위로와 은혜를 안겨 주며, 장례식에 참여한 조객에게는 자신의 인생 여정을 반추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중략) 장례 예배에서 목회자는 전도의 열정을 자제하고 고인과 유가족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마음 다해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날 것입니다." (234~235쪽)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 김영봉 지음 / IVP 펴냄 / 236쪽 / 1만 1000원.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두 책을 읽다 보면, 죽음을 들여다볼 때 인간의 삶이 더 풍성하고 생동감 있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일도 삶의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두 책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 곁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와 소중함을 일깨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결코 주변 사람들, 그리고 사회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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