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고시원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위한 성찬례가 성탄절에 열렸다. 성공회 신부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사고 발생 47일째. 화재로 7명이 죽고 11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은 세상과 단절돼 있었다. 주변 상권은 성탄절과 연말 분위기로 환했지만, 국일고시원은 지금도 그을음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국일고시원으로 올라가는 입구 왼편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빛바랜 백합 한 송이와 조화 꽃다발, 그리고 종이로 만든 작은 '집'이 있었다. 테두리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문구가 적혔다. 집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해야 했던 희생자들을 '집'으로 추모한 것이다. 바구니 옆에는 '집은 인권이다!'라는 피켓도 걸려 있었다.

국일고시원의 시간은 사고가 일어난 11월 9일에 멈춰 있는 듯했다. 고시원은 건물 2~4층을 사용했다. 40~50명이 거주했다. 계단을 오르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2층 현관문 왼편에는 '화재 예방 수칙'이 부착돼 있었다. 현관문 바로 위에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 16:3)는 말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고시원 2층에 거주했던 조 아무개 씨는 "원장이 교회에 다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화재가 일어난 3층으로 갈수록 냄새가 고약해졌다. 숨을 들이키자 헛기침이 자동으로 새어 나왔다. 3층 현관문은 쇠사슬로 잠겨 있었다. 사망한 7명은 모두 3층에 거주했는데, 창문이 없었다. 창문이 없는 곳은 25~28만 원으로, 다른 방보다 저렴했다. 3층과 4층 사이에 있는 신발장은 불에 타다 말았다. 주인을 잃은 신발들이 신발장 앞에 뒤엉켜 있었다. 타다 만 솜이불도 나뒹굴었다. 고시원 원장은 사고 이후 종적을 감췄고,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국일고시원 2층 현관 상단에는 성경 구절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고시원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성찬례가 12월 25일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앞에서 열렸다. 대한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정의평화사제단·성프란시스공동체와 길찾는교회·걷는교회·씨앗교회가 성탄절을 맞아 '2018 성탄 연합 감사 성찬례'를 주최했다. 다소 추운 날씨였음에도 참석자만 150명이 넘었다. 주요 방송사와 일반 매체들도 나와 취재했다.

이날 말씀을 전한 여재훈 신부(성프란시스공동체)는 목숨을 잃은 7명이 평화로운 안식을 얻도록, 피해를 입은 이웃들이 안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다. 여 신부는 "그들이 살았던 좁고 네모난 방은 집이 아니라 죽어서 들어가야 할 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2차, 3차 피해를 계속 호소한다.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이 아기 예수를 보내 주셨듯이,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웃들의 슬픔을 돌봐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신성한 의무임을 고백한다"고 했다.

시민 활동가도 발언대에 섰다. 이동현 활동가(홈리스추모제기획단)는 고시원·리빙텔·여관 등 비주택이 전국에 1만 2000개 있다고 말했다. 비주택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지만, 사람이 살만한 최저 주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소방과 안전 대책에만 몰두하지 말고, 최저 주거 기준을 만들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국일고시원에 살았던 조 아무개 씨도 발언자로 나섰다. 조 씨는 2층에 거주했다. 사고 당일 새벽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로 트라우마가 생겼고, 하루 평균 1~2시간밖에 못 잔다고 했다.

조 씨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많은데도 서울시와 정부가 흐지부지 넘어가려 한다고 했다. "없는 사람도 인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경을 써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이날 거둔 헌금을 조 씨에게 전달했다.

국일고시원 희생자와 피해자를 위한 예배에는 150명 넘게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는 행사가 끝난 뒤 조 씨를 따로 만났다. 조 씨는 서울 면목동에 있는 교회 집사라고 소개했다. 자신은 우연한 기회로 화를 피했지만, 숨진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깊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어도,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인사 정도는 하던 사이였다고 했다. 우체국에서 일했던 20대 청년과 학원 강사를 지낸 일본인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 씨는 사고 당일 크게 두 가지를 목격했는데, 그게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했다. 하나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의 미흡한 대처였고, 다른 하나는 "살려 달라"고 부르짖던 고시원 사람들의 절규와 시신들이라고 했다. 조 씨는 "소방 당국의 대응이 신속하고 정확했다면 희생자는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일고시원에서 나온 조 씨는 다시 인근 고시원에서 지낸다. 잠들기 전 습관처럼 고시원 천장에 달려 있는 스프링클러를 쳐다보다가 잠에 든다고 했다. 죽음의 경계를 봤다는 조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2살, 7살 자녀가 있고, 와이프도 있다 보니까… 허망하게 가고 싶지는 않더라.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조 씨는 고시원 2층에 거주했다. 예배 참석자들에게 사고 당일 겪은 일을 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고시원 3층에서 시작된 불은 4층까지 집어 삼겼다. 이번 화재로 7명이 숨졌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화재 사고가 발생한 고시원 3~4층은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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