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장발남'?

'예수님의 외모'라고 하면, 보통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아마 가장 빨리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장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이미지가 아닐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화가의 미술 작품부터 현대에 출판되는 어린이용 만화까지, 매우 일관되게 예수님은 곱슬머리 장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인물로 묘사된다.

사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머리가 길었다거나 수염이 많았다는 묘사는 없다. 구약에서 긴 머리를 가졌다고 명확하게 묘사하는 삼손이나 압살롬 같은 인물이 있지만,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 머리 길이나 수염에 딱히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기독교 공인 이전에 나온 그림 중에는 예수님을 짧은 머리에 수염이 없는 평범한 모습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

바울이 도리어 "남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불명예"(고전 11:14, 새번역)라고까지 하는 부분을 보면, 예수님 시대 당시에도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것이 사회 통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추측할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발남 예수님' 이미지는 기독교 공인 후 예수님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서서히 정립된 이미지이다. 기원이 어떻게 됐든, 이렇게 묘사된 '장발남 예수님'이 지금까지도 흔치 않은 비범함을 우리에게 내뿜는다는 것 또한 사실 아니겠는가.

왜 뜬금없이 '예수님은 왜 장발로 그려졌는가' 질문을 던졌냐면, 예나 지금이나 '장발의 남자'라는 존재가 주는 이질감을 환기하고 싶어서 그랬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직접 2년 가까이 장발남으로 지내며 교회 안팎에서 '낯선 존재'로 살았던 그 시간을 교회 청년으로서 고찰해 보고 싶었다. 예수님이 장발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돌아볼 수는 있었다.

지금이야 '머리를 2년 동안 길러서 모발 기부를 했다'는 이야기로 장발남이었던 이유가 깔끔하게 정리되지만, 사실 필자가 머리를 기르게 된 계기는 딱히 없었다. 2년 전에 모종의 사정으로 갑자기 백수가 되어 버리고 허무함이 극에 달했을 때 여러 기행을 일삼았는데, 그중 하나가 무작정 머리를 기르는 것이었다. 6개월쯤 머리를 기르니 뒷머리가 고무줄로 간신히 묶일 정도로 자랐다. 이때부터 주변 시선이 묘하게 변하면서 '남자가 왜 그렇게 머리를 기르냐'는 질문을 무수히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답을 얼버무리다가, 갑자기 대학 시절 기독교동아리연합회에서 알게 된 분이 머리를 몇 년 동안 기른 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환자를 위한 가발을 만드는 데 기부했던 것이 생각났다. 좋은 핑계거리가 떠오른 것을 좋아하며, 왜 머리를 기르냐고 물어보는 사람마다 "머리 길러서 기부할 건데요"라고 둘러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뱉어 버린 말을 실천하기까지 1년 반이 더 걸렸다.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 작. '엠마우스의 순례자들 Les pèlerins d'Emmaüs'(1648). 가운데 예수가 장발로 그려졌다.

스스로도 낯설었던 장발남 생활

머리를 기르는 데 오래 걸려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장발의 남자를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받는 무수한 눈총이었다. 남자 화장실에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공중화장실을 마음대로 가는 것이 불가능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별 수 없이 카페에 있는 1인용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정 여의치 않은 경우 인적이 드문 남자 화장실을 찾아 후드 티 모자를 쓰거나 묶은 머리를 살짝 가리고 들어갔다. 늘 마주치는 사람만 보는 일터에서 그나마 남자 화장실을 별생각 없이 사용했는데, 어느 날은 청소 노동자분이 남자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여학생으로 오해해 난처해진 적도 있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벌어지다 보니, 길거리에서조차 매일같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달라붙는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느껴졌다. 한밤중에 골목길을 다닐 때면 내 마른 체형과 긴 머리를 보고 여자로 오해해서 이상한 사람이 따라붙지 않을까 하는 이유 모를 두려움까지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여자로 알고 길거리에서 '묻지 마 주먹질'을 당했다는 다른 장발남의 경험담이 내 이야기가 된 적은 없어서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나름 재밌는 순간들도 있었다. 실험실 선배들은(필자는 대학 실험실에 출퇴근한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과 장발이라는 사실을 조합해 '예수님'을 연상해 냈다. 평일에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못해 머리를 풀고 출근한 나를 본 선배들이 "예수님 나타났다!"라고 외치면 서로 익살스럽게 웃을 수 있기도 했다.

학교 교수님들께 연구 계획 심사를 받을 때도, 전공 지식과 연관해서는 가차 없이 질타가 날아왔지만 내 머리 길이에 대해서는 지적하기는커녕 왜 머리가 긴지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나중에 오히려 머리 길이가 아니라 발표 중 머리를 묶을 때 쓴 연보라색 머리끈이 신경 쓰였다는 어느 교수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 후 어느 과학기술인 모임에 참석하게 됐는데, 나의 우려와는 달리 두어 번 모임에 참석하는 그 시간 중 정말 아무도 내 머리 길이를 두고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굳이 내 장발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길거리에서 눈치를 보던 평소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편하게 모임 회원들과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중 한 회원이 나를 '머리 긴 그 남자분'으로 기억하는 것을 보고, 긴 머리로 다니는 것도 나름 재밌는 생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에서의 장발남 생활은 당혹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그 정도로 재밌는 이야기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교회에서 내가 장발남 시절 겪은 일들은 대부분 비슷했기 때문이다.

장발남 향한 교회 사람들의
일관된 반응, 또는 배제

"머리 언제 자를 거야?"

교회에서 지겹게 들었던 그 질문 속에는 (기부할 길이가 되면 자른다고 한결같이 대답하기는 했지만) 내가 교회 남자 청년으로서 언젠가는 '정상적인 짧은 머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자연스럽게 깔린 것처럼 느껴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머리를 기르기 전에 나를 알던 교회 사람들이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리는데, 그때로 언제 돌아가느냐"는 의미로 물어본 경우가 많아서였다.

장발 시절에 필자를 처음 본 교회 사람들은 달랐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나를 보고 여자인지 남자인지부터 궁금해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형제다움'과 '자매다움', 그리고 '주님 안에서 남녀의 연합'을 중요시해 왔던 교회에서 나는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가야 할' 사람으로 취급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남성'으로서 달라진 건 분명 머리 길이 하나뿐인데, 그 달라진 외모 하나만으로 나는 이미 내 '비정상적' 정체성에 대해 도전을 받고 있었으니. 그래도 '교회 다니는 장발남'이라는 존재가 내 주변 비신자들에게는 '교회에는 재미없고 꽉 막힌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도 하는 등의 긍정적인 경험이 되기도 했다.

도리어 교회에서 내가 겪은 경험은 그 정도에도 못 미치는 것 같았다. 교회에서 늘 반갑게 마주치던 얼굴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니, 친밀하다고 느끼던 사람들이 돌변한 그 모습이 나에게 있어서는 더 크고 조직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사무엘상 16장 7절 후반부, 새번역)는 성경 말씀이 교회 현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 같았다. '머리 긴 남자는 여자 같고 별로'라는, 교회 안에서 오히려 강하게 느껴지는 고정관념은 내가 교회에서 일정 부분 배제당한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이렇다 보니, 도리어 교회 안이 배제의 공간으로, 교회 밖이 환대의 공간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내가 교회에서 배웠고 지금도 믿는 하나님은, 외모보다 중심을 보시고 나 같은 죄인도 받아 주고 살리신 하나님이었기에 나는 새로운 고민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 같은 낯선 존재를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 교회와 세상이 구별되는 지점은 대체 어디일까. 아니, 정말로 구분되기는 할까.

낯선 존재 받아들이기 위해
낯설어지고 낮아지는 교회

사실 예수님 머리카락이 짧든 길든 그것이 예수님 사역에서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일 테니 말이다. 교회에서 익숙하게 들어온 예수님 행적을 보면, 낯설고 어려운 존재에게 손 내밀어 주는 사건이 가득하다. 물 긷던 사마리아 여인, 실로암 못의 날 때부터 눈먼 사람, 혈루증을 앓는 여인, 세리와 죄인 등이 그 예시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들과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비범한, 또는 낯선 존재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보고 따지는 대목(마가복음 2장 16절)에서 보듯, 기존의 종교 지도층이 배제했던 이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아가자' 할 때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모습이 아닐까.

사도 바울이 또 어떻게 편지를 썼는가 찾아보면 이렇다.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도,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않은 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골 3:10-11, 새번역)."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고전 12:13, 새번역)."

이런 구절들에서 보듯, 초기 교회 공동체 또한 예수님을 따라 기존에 세상이 그어 놓은 배제와 차별을 성령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따라 사는 공동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작. '최후의만찬 The Last Supper'(1495~1497).

이쯤에서 한국 사회가 당면한 배제와 차별의 문제가 어디 있는지 떠올려 보자면,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글을 쓰는 입장에서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를 정도이다. 다문화 가정을 향한 편견이나 예멘 난민 사태를 통해 드러난 이슬람포비아는 시작일 뿐이다.

1인 가정의 확대 및 기존 결혼 제도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올지언정 당장 사회제도가 '정상 가족'의 범주를 벗어나는 이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보장하던가. 가족을 이룬다 한들, 장애인 교육 시설을 위해 학부모가 지역 주민 앞에 무릎 꿇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정상성'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잘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한국교회는 이러한 혼돈 속에서 '화해의 직분'(고후 5:18)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까. 화해로 흘러 들어가야 할 에너지는, 도리어 차별과 배제를 굳세게 하는 데 쓰이고 있는 듯하다. 각종 가짜 뉴스 진원지가 '교회 카톡방'으로 지목되는 현실은 그저 일부의 일탈로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저에는 교회가 사회를 향해 감당해야 할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고 배제에 익숙한 사회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다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 사회가 산업화 이후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한국교회 주류 또한 중산층 위주로 재편되었고, 이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하나의 강고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작용하게 되었다. 박노자는 이러한 교회를 "인맥 형성과 남녀의 만남 알선"의 공간이라고 꼬집었다[<권력과 교회>(창비)].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서기 위해 제자 훈련을 강조한다 한들, 한국교회 제자 훈련 또한 사회적 책임을 놓친 채 도리어 교회 조직만 유지하기 위한 평신도를 길러 내기 위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된 바 있다[<한국교회 제자 훈련 미래 전망 보고서>(IVP)]. 동질성과 폐쇄성으로 둘러싸인 교회 공간에서, '정상 상태'로부터 배제당한 이들에 대한 자리는 과연 남아 있을까.

뜻밖에도, 나는 다시 교회 공간에서 '화목하게 하는 교회'의 비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에는 지적장애 지체들을 섬기는 부서가 있는데, 이들 지체 중 매우 드물게 청년부 예배나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겠으나, 처음에는 내가 평소 겪어온 것과 너무나도 이질적인 이들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고 낯설었다. 예배나 성경공부 시간마다 돌발 상황이 여럿 발생했으니 말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익숙해지자, 어느새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마주치는 그 존재가 이제는 내 세계에서 '배제'된 존재가 아니라, 없으면 허전한, '포용'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 기나긴 과정에는 교회 청년부를 섬기는 수많은 사람의 인내와 헌신이 있었으리라. 머리 길이 때문에 언짢은 적도 있었지만, 도리어 주님께서는 이를 통해 교회에서 나에게 더 큰 '포용'의 역사를 보게 하셨다.

한국교회에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포용해야 할 이들은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장발남이었던 필자를 대했던 교회 지체들이 그랬듯, 처음 보는 낯선 존재에 대한 배제 반응은 근본적으로 타락한 우리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가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무한한 은혜를 베풀어 주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 아니던가. 그때 필요한 적응의 시간이 절대 짧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교회가 자산을 꾸준히 세상에 내놓아 희생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먼저 본을 보이신 낮아지심을 닮아 가는 방법이리라. 가진 것을 내놓고 변두리로 내몰린 것 같은 때,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더 큰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하는 은혜를 교회가 누리게 되지 않을까.

"머리 자른 게 훨씬 낫다"는 말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머리를 자르고 모발 기부처에 보낸 후, 여름 수련회에서 처음 교회 청년부 지체들과 마주쳤다. 놀란 표정들과 함께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머리 짧은 게 훨씬 낫다!"였다. 필자는 그런 이야기에 일부러 이렇게 반응하곤 했다.

"지금이 낫다면, 예전에 긴 머리는 별로였단 이야기인가요?"

역으로 그렇게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을 한다 해도 "짧은 머리가 낫다"는 발언을 취소했던 이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사회의 일반 규범인 '짧은 머리 남자'가 되니 일상생활은 훨씬 편해졌지만, 막상 그 편해진 생활 뒤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았던 것은 그 때문이리라.

기부할 머리카락을 우편으로 보내기 전 찍은 사진. 기부를 위한 최소 길이는 25cm다. 사진 제공 박준우

앞에서도 말했지만, 필자는 처음부터 좋은 뜻으로 장발남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2년에 걸쳐 나 자신에게도 낯선 존재가 되어 봄으로 한국교회가, 그리고 내가 낯선 존재를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문제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시간은 주님께서 나에게 '선물', 또는 '은혜'로 주신 시간 아니었을까.

그러한 '낯설어짐'의 체험이,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성육신을 닮아 가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준우 / 대학 실험실에 다니는 대학원생이자 교회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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