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2007년부터 보수 계신교계는 이를 동성애와 연관 지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를 반대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제정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교계는 '동성애 독재법'이라는 표현까지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보수 교계가 동성애를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 반대하며, 법 제정 논의는 '동성애 찬반 논쟁'으로 변질됐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포함하는 인종, 출신지, 가족 형태, 학력, 장애·질병 여부 등으로 차별받는 당사자들 이야기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차별금지법의 발판이 된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2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 사회 차별의 현주소와 그 대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차별을 직접 겪는 성소수자·미혼모 등 당사자와 그들을 향한 차별에 맞서고 있는 활동가들이 그동안 듣기 어려웠던 현장의 차별 실태를 증언했다.

12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2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첫 증언은 미혼모 단체 '인트리' 최형숙 대표가 맡았다. 최 대표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으로 당하는 차별이 일상적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엄마들은 차별이 아이에게 전달된다는 이유로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숨어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차별당한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비교적 늦은 시기에 미혼모가 된 최형숙 대표는 '출생신고 절차'에서부터 차별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출생신고를 할 때 혼인 내 출생인지, 혼인 외 출생인지 표시하도록 돼 있다. 거기서부터 차별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혼인 내에서 아이를 출산해야만 정상으로 여기는 문화가 형성돼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배제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혼모가 결혼한다고 해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최형숙 대표는 "결혼해도 사회에서 정상적인 가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혼한 첫해에 아이가 학교에서 폭행을 당했다. 친구들이 '새아빠와 산다'는 이유로 괴롭힌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미혼모와 그 가정에 대한 차별을 모조리 없애 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형숙 대표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여성들도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아이를 낳는 여성은 줄지 않을 것이다. 제도가 변한다고 차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겨야 어떤 가정을 이루든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혐오·편견과 차별 때문에 죽어 가는 여성들과 그 자녀들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미혼모의 죽음은 사회적 살인이다"고 말했다.

미혼모 단체 인트리 최형숙 대표는 미혼모들이 자신이 차별당한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이주민 차별과 혐오에 관해 증언한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 사월 집행위원은,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 약 2만 명이 심각한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출생신고나 외국인 등록을 하면 강제 퇴거, 출국 조치를 당하기 때문에 간단한 등록조차 못 하는 아동이 많다. 미등록 상태이니 입학이나 진학이 거부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가정에서 학대를 당한다고 해도 경찰에 신고할 수 없다. 경찰이 미등록 외국인을 발견하면 출입국에 연락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사월 집행위원은 "출입국관리소에 신고되면, 바로 강제 퇴거로 이어질 수 있다. 학대를 받는다고 해도 쉽게 신고할 수 없는 이유다. 외국인 보호소 입소도 어렵다. 생계 급여 수급권자가 아니면 국가의 지원을 못 받는다는 이유로 시설에서 입소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주민에 대한 공공 기관의 강제 단속도 비인도적이라고 했다. 사월 집행위원은 "강제 단속은 기습적으로 진행된다. 이주민들은 단속을 나오는 사람들이 출입국 공무원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얼마 전에는 한 이주 여성이 기숙사로 들어오는 단속반을 피해 도망가다가 붙잡고 있던 전깃줄이 끊어져 다치기도 했다. 그들이 겪었을 불안감과 두려움이 상상이 안 된다. 이렇게 지속하고 있는 강제 단속이 과연 정의로운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보수 교계의 표적이 된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 증언도 나왔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캔디 집행위원은 개신교 반동성애 단체들의 혐오가 2014년 열린 신촌 퀴어 문화 축제 때부터 '폭력적'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그는 "혐오 세력은 매년 퀴어 축제가 열릴 때마다 고성과 욕설, 폭력으로 방해를 일삼아 왔다. 지자체와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에 폭력과 아웃팅에 대한 공포는 전부 당사자들 몫이었다"고 말했다.

캔디 집행위원은 국가 정책·제도도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8월 발표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사회적 약자' 목록에는 성소수자가 없다. 이명박 정부 당시 작성된 2차 NAP보다 후퇴한 지점이다. 교육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국가 기관에서 성소수자 관련 정책을 삭제하거나 뒤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교계는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독재법'으로 부르고 있다. 사진은 2016년 열린 차별금지법 반대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용희 대표.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08년 유엔 사회권위원회를 시작으로 올해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유엔 산하 인권 조약 기구들은 8회에 걸쳐 한국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재직 당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민감한 주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에 따라 누구든 어디에 있든 모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폭력과 차별을 끝내기 위한 여러분의 투쟁은 모두의 투쟁입니다. 여러분에 대한 공격은 제가 옹호하고 지키겠다고 약속한 유엔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격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서 있습니다."

서울시 인권센터 이주영 전문위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보수 개신교의 극렬한 반대를 이유로, 계속되는 차별과 혐오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국가와 정치인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기문 전 총장의 말과 같은 이야기를 우리 대통령, 정치인들에게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 인권센터 이주영 전문위원은 차별과 혐오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국가와 정치인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이후 진행된 자유 토론 시간, 한 참가자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보수 교계의 관심이 '동성애'에만 집중된 구도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법 제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이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전략은 없는가"라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차별을 회피할 수는 없다. 동성애 내용을 숨겨서 법을 만드는 전략을 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 세력은 '성적 지향'이라는 말이 없는 인권교육지원법, 인권조례까지 폐지하려 애쓰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그들의 주장처럼 동성애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동성애자도 동성애자로만 살지 않는다. 한 사람의 차별을 한 가지 정체성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지 않나. 다양한 차별 금지 사유를 포함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의의를 더 풍부하고 보편적으로 알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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