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교수가 11월 12일 봉천동 더처치에서 열린 과신대 콜로키엄에서, 개신교인들의 창조와 진화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한국교회 교인 중 59%는 성경 내용을 과학적으로 의심한 적이 있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넘어간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교인들은 대체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오랜 지구론'을 믿고 있으면서도, 교회가 가르치는 젊은 지구론과 성경의 역사성을 높게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는 '창조와 진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인식'이라는 주제로 11월 12일 과학과신학의대화(과신대)가 주최한 콜로키엄에서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은 올해 상반기 전국 19세 이상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구 연대와 천지창조에 대한 견해, 창조 과정 및 진화론에 대한 견해, 과학과 신학의 대화 가능성을 주제로 11가지를 물은 것이다. 설문 결과는 한국교회탐구센터(송인규 소장)가 올해 8월 출간한 <지질학과 기독교 신앙>(IVP)에 실려 있다.

정재영 교수가 설문 결과를 하나씩 소개했다. 지구 연대에 대한 견해부터 시작했다. 설문 응답자 중 '젊은 지구론'을 들어 봤다는 사람은 36.3%, 들어 보지 못했다는 사람은 63.7%로 나타났다. 오랜 지구론은 들어 봤다 77.8%, 들어 보지 못했다 22.2%로 나타났다.

젊은 지구론과 오랜 지구론 중 어느 견해를 지지하는지, 근거 설명 전과 설명 후 두 번에 걸쳐 물었다. 근거를 설명하기 전에는 젊은 지구론 15.1%, 오랜 지구론 55.3%, 모르겠다가 29.6%이었다.

이후 "지구의 나이를 6000~1만 년으로 보는 근거는 성경에서 나오는 아담을 비롯한 모든 인물의 나이를 합한 것이고, 지구 나이를 45억 년으로 보는 근거는 지질학적 연대 측정의 결과"라고 설명한 후 젊은 지구론과 오랜 지구론 중 어느 견해에 동의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젊은 지구론이 28.6%, 오랜 지구론이 52.3%, 잘 모름이 19.1%로 젊은 지구론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13%가량 증가했다.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물었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과학적으로도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42%였고, 신학적 교훈이 핵심이므로 따지는 게 부적절하다는 응답도 41.2%로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기록된 설화·신화라는 응답은 12%였다. 아담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인지를 묻자 63.5%가 그렇다고 했고, 25.3%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했다.

노아의홍수는 실제 발생했다고 믿는 사람이 72.7%로 압도적이었다. 고대 세계 설화·신화라는 응답은 19.2%였다. 실제 발생했다고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홍수의 범위를 묻자, 68.8%는 전 지구적 홍수라고 봤고, 27%는 국지적 홍수였을 거라고 응답했다.

 

즉각적 창조와 진화적 창조에 관한 견해도 물었다. 인류와 생물의 기원을 묻는 말에 응답자 64.5%는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했다고 응답했다. 하나님 섭리하에 현재의 생물 종류로 진화됐다는 응답은 16.9%였다. 하나님 없이 현재의 생물 종류대로 진화됐다는 응답은 11.5%였다.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있을지 묻는 데는 양립할 수 없다는 응답이 48.1%로 높았지만, 양립할 수 있다는 응답도 40.3%로 비교적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인식은 어디에서 습득하는지 묻자, 61.9%가 교회 설교나 강의에서 습득한다고 응답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학교 수업이 58.2%로 뒤를 이었다. 책이 40.9%, 언론이 26.4%, 소셜미디어가 25.7%였다.

 

성경을 과학적으로 의심해 본 경험이 있는지 묻는 말에 59%가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의심만 한다고 응답했다. 의심했다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했는지 묻자 이들 중 37.2%는 하나님 말씀이므로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25.3%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다고 했고, 21%는 의심이 갈 때는 과학적 사실을 더 믿는다고 했다. 실제로 탐구해 본다는 응답은 13.7%였다.

과학적으로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41%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묻자, 이들 중 72.6%는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23.2%는 과학적으로 위배되는 내용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정재영 교수는 창조과학에 대해 "종교 신앙을 과학의 언어로 설명해 정당성을 얻으려고 했으나 과학을 종교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신앙의 이름으로 과학을 설명하는 것에 높은 지지를 표했다는 것은, 지성적 사고가 반신앙적이라는 인식을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했다. 일례로 성경이 과학적으로 의심될 때, 별다른 탐구 노력 없이 넘어가는 응답이 많은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이번 조사에서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는 응답과 성경의 역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문항에는 대체로 여성과 중직자 계층에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가 그 이유를 묻자, 정 교수는 "대체로 사회학적으로 여성이 보수적이고 좀 더 감정적이거나 덜 합리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여성의 책임이라는 것은 아니다. 여성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여성이 여기에 적응하거나 길들여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또 교회 내에서는 합리적으로 사고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교회를 다니기 어려울 수 있다. 성평등적인 사고를 하는 여성이 교회 내에 적을 수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여성들의 응답이 이런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발표 후 정재영 교수와 박희주 교수가 토론했다. 박희주 교수는 지난해 박성진 장관 후보자 사건 때 창조과학이 공적 영역까지 나가려 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창조과 진화, 대립 구도 아냐
"창조과학, 교회 내에서 존중할 수 있지만
공적 사안이라면 또 다른 문제"

발표 이후, 정재영 교수와 박희주 교수(명지대)가 인식 조사 결과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정재영 교수는 "보수적인 교회를 다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의외로 오랜 지구론을 지지하고 성경을 과학책처럼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는 응답이 높아서 놀랐다"고 했다.

박희주 교수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서로 대치하는 개념이라거나 양자택일할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 둘은 층위가 다르다. 창조에는 유신론적 입장이나 무신론적 입장이 다 있다. 기독교인은 창조의 궁극적 원인자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반면 진화는 생물의 기원을 묻는 게 아니다. 이 세상 만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되었는지를 묻는다.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생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창조가 맞으면 진화가 틀리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창조과학의 사회적 입지를 보여 준 계기가 2017년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 지명 사건이었다. 박 후보자는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를 지낸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박희주 교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창조과학을 수호하는 분들의 입장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신념이 공적 영역으로 갔을 때는 문제가 어려워진다. 장관은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교회 내에서 인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인 이론인지는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영 교수는 한국교회 내에 창조과학과 진화적 창조를 믿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하는 논의의 장이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에는 이런 풍토가 부족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주장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가짜 뉴스' 얘기도 나오지만 건전한 근거 위에서 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근거 위에서 사실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위계질서 문화다. 정 교수는 "한국 사회에 있는 유교적 질서, 이를테면 위계 서열이라든지 장유유서 문화 때문에 '장로님'이 말씀하면 대꾸가 쉽지 않다. '너 나이가 몇 살이냐'부터 해서 온갖 반문이 다 나온다. 한국교회에서 이런 분위기는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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