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성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매력적인 것, 아름다운 것을 쫓아가는 내용은 한 쪽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더러운 것이나 퇴색한 것으로만 향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멸시받던 창부나 심한 병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을 꼬박꼬박 위로해 주었습니다. 창부라는 단어가 여러분과 인연이 멀다면 인생이나 일상생활로 치환해도 좋습니다. 예수가 모든 사람이 겪는 일상의 고통, 슬픔, 번잡함을 자신의 십자가로 삼아 짊어지고, 마지막까지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 제게는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28~29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일본 기독교인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17세기 일본 기독교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대표작 <침묵>(홍성사)에 대한 강의에서 했던 말이다. <침묵>은 17세기 당시 잔혹한 고문 앞에서 순교가 아닌 배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이는 그의 예수 이해와 무관하지 않다.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포이에마)에는 1979년 엔도가 진행했던 '외국 문학에서의 그리스도교'를 주제로 한 여섯 강좌가 실려 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신부의 일기> 등이다. 엔도의 주요 저서 <침묵>·<사무라이>·<스캔들>에 대한 강의도 있다.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 엔도 슈사쿠 지음 / 송태욱 옮김 / 포이에마 펴냄 / 224쪽 / 1만 2800원. 뉴스앤조이 강동석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엔도 슈사쿠는 문학평론가로 데뷔해 활동했다. 책에서는 엔도가 비평으로 다룬 작품들도 언급된다. '문학과 종교 사이의 골짜기에서'라는 소제목 아래, 무력한 인간의 실존과 구원 문제 등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작품 해설도 매력적이지만, 그가 연신 보여 주는 만담과 블랙 유머에서 비루한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아니, 물론 좋은 부분에서도 신은 여러 가지로 말을 걸어 오겠지만 적어도 지금 제 생각으로는 인간의 가장 비루하고 약한 부분, 어떻게도 해 볼 수 없는 부분을 통해 신은 말을 걸어 옵니다. 또는 신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옵니다. (중략) 지금 이렇게 말해도 '나는 신 따위는 관심 없으니까 잘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겠지요. 확실히 대부분 신에 대해 무관심할 겁니다. 그러나 신은 여러분에게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138~139쪽)

"인간의 좋은 부분, 아름다운 부분에만 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닙니다. 인간의 더러운 것, 가장 비참한 것, 가장 징그러운 것,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것에도 제대로 된 음색을 울려 주지 않는다면 진정한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가 견딜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문제가, 예컨대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라든지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등에 나타납니다."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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