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단원고 2학년 5반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말씀 증거를 시작하기 전, 시 한 편을 읽었다.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다. 창현 엄마는 힘든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 시를 보면서 적지 않은 위로를 얻었다고 했다. 교회에 모여 기도하는 일 외에도, 우리 삶 곳곳에 배어 있는 진솔한 기도를 깨달았다고 전했다.

새길교회는 11월 11일 창현 엄마를 주일예배 설교자로 초청했다. 올해 9월부터 '새로운 교회를 찾아'라는 주제로 2018년 가을 연속 말씀 증거를 진행하고 있는 새길교회는, 매달 416생명안전공원 예정 부지에서 예배하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사회를 맡은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세월호 가족들은 지난 4월 합동분향소가 철거된 이후, 생명안전공원 예정 부지에서 매달 예배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들녘에서 바람과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예배한다. 비록 건물은 없더라도 그 어느 곳보다 예수의 임재를 깊이 체험한다"고 전했다. 정 원장은 "창현 엄마의 말씀 증거를 들으며, 이 시대 교회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이뤄 가야 할지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교회를 찾아'라는 주제로 연속 말씀 증거를 진행하고 있는 새길교회는 연사로 세월호 유가족 창현 엄마 최순화 씨를 초청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참사 이후, 품게 된 두 가지 질문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창현이가 왜 침몰한 배와 함께 수장됐는지"

"엄청난 재난을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이 이전과 같은 삶을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창현 엄마는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과 평생 일군 재산을 단 하루 만에 모두 잃어버린 욥을 예로 들며,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의 삶을 소개했다. 매일 감사 기도를 올렸던 욥이 재난 이후 탄식과 항의를 쏟아 냈듯이,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현 엄마는 4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풀지 못한 두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말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어째서 침몰한 배와 함께 수장됐는지 알지 못한 채 질문만 산처럼 쌓인 지난 4년 6개월이다. 하나는 국가를 향한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질문이다."

국가를 향한 질문은 참사 진상 규명과 관련한 내용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더디지만 하나씩 얻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질문은 언제나 제자리를 맴돈다. 창현 엄마는 "우리 창현이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에 그는 자식을 잃은 어미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에만 갇혀 살던 자신이 교회 밖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전에 가졌던 생각들이 완전히 깨졌다고 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과연 우리 삶에 실재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돈이 있었다. 이 사회가 어떤 힘으로 돌아가는지도 알게 됐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다수가 돈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고 있더라. 종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밖에서 거리를 두고 교회를 바라보니, 많은 교회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 교리를 내세우면서 사람들에게 폭력을 자행하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하나님을 섬긴다지만 거꾸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는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엄청난 재난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 이전과 같은 삶을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창현 엄마 역시 4·16 이후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창현 엄마는 참사 이후 교회가 보여 준 민낯을 목격하며 오랜 시간 절망에 빠졌다고 했다. 절망은 교회 밖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소망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교회에서 발견하지 못한 하나님의 빛을 어둠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절망이라는 꽉 찬 어둠 속에 오랜 시간 머물다 보니, 오히려 보이는 게 있고 선명해지는 게 있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빛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래전 각 피조물에 심어 놓은 고유의 빛이다. 마치 이문재 시에 등장하는 시어들처럼 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우리 삶 곳곳에 제 역할을 감당하며 빛을 내는 이들을 보면서 아들을 잃은 어미가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창현이 엄마로서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수님다운, 바울이 바울다운 삶을 살았던 것처럼, 나 역시 남이 아닌 내 삶을 사는 게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창현 엄마(맨 오른쪽)는 화려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허락한 고유의 빛을 내는 존재들을 교회 밖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16년 옥바라지 철거 현장을 찾은 세월호 가족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열리는 '416교회'
"기성 교회 실망한 사람들,
새로운 교회 향한 열망 커져"

창현 엄마는 기성 교회에 실망한 기독교인이 많아지면서 어느 때보다 새로운 교회를 향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 해도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기꺼이 찾아가는 이들이 새로운 교회가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는 존재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정착하는 순간, 교회는 본질에서 벗어나기 쉽고 생명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창현 엄마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생명안전공원 예정 부지에서 예배하는 416교회를 소개했다. 이들은 예배마다, 이곳에서 생명과 안전을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한곳에 정주한 채 교인들을 불러 모으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모인 곳으로 찾아가는 곳이 416교회다. 이러한 모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길 위의 교회'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길 위에 있는 416교회가 언제든지 흩어질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가족과 기독교인들은 올해 5월부터 매달 첫째 주에 생명안전공원 예정 부지에서 예배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말씀 증거를 들은 교인들은 다 같이 '잊지 않을게'를 부르며 화답했다. 목에 노란 스카프를 두른 이도, 손목에 노란 팔찌를 찬 이도 있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생명안전공원 조성을 위해 기도했다. 대한민국이 생명과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간구했다.

정경일 원장은 "세월호 유가족이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보여 주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 공동체를 이루었던 초대교회처럼,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억과 진실의 교회를 만들었다. 세월호 유가족 교회가 길이 되어 우리를, 우리 사회를, 정의·평화·생명으로 이끌 것을 믿는다"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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