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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심판 계속 들으니 세뇌" 신옥주를 믿은 사람들

"아직 피지에 수백 명 있어…정부가 나서 달라"

이용필 기자   기사승인 2018.11.08  20: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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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타작마당'으로 교계와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은혜로교회 신옥주 목사가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있다. 신 목사는 아동학대, 특수상해, 외화 반출, 노동 착취, 감금 등 11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공판 내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신옥주 목사는 교계에서 활동한 지 10년밖에 안 됐지만, 숱한 논란을 일으켜 왔다. 주요 교단들은 신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참여 금지를 결의했다. 신 목사가 이끄는 은혜로교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단으로 규정한 교단을 찾아가 난동을 부렸다. 신옥주 목사를 추어올리면서 대형 교회 목사들을 비난하는 시위도 했다.

당시 은혜로교회 신자들 중에는 삭발한 사람이 많았다. 신 목사는 죄를 회개하는 차원에서 신자들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종용했다. 교인들은 은혜로교회에 오기 전 속했던 교회나 선교 단체를 비방하는 영상을 찍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2008년부터 활동 시작
자의적 해석, 종말론 강조로 교세 확장
주요 교단, 이단 지정 및 참여 금지

은혜로교회 신자들이 신옥주 목사의 이단 규정에 반발하며 가두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신옥주 목사는 2008년 경기도 부천에 교회를 개척했다. 중국 선교를 다녀온 직후였다. 당시만 해도 신 목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목회자에 지나지 않았다. 신 목사는 목회보다 목회자 부부 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입지를 넓혀 갔다. 신 목사는 몇 가지 특징을 보였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종말론을 강조하고, 기성 교회 비난에 열을 올렸다. 이 같은 강의에 심취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 갔다. 개척 2년 만에 용인·과천 등에 지교회를 세웠다. 교인도 수백 명으로 늘었다.

은혜로교회피해자대책위원회 조성일 총무는 11월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옥주가 처음에는 목회자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목사는 빠져 나왔는데 일부 목회자가 포섭됐다.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 목회자가 많았다. 그 교회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은혜로교회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가족의 영향을 받아 은혜로교회에 다닌 피해자도 있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 출석하던 김송이 씨(가명)는 어머니의 끈질긴 요청에 못 이겨 2012년 9월 용인 은혜로교회로 옮겼다. 김 씨는 "교회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두침침했고 나이 있는 교인이 많았다"고 말했다.

당시 신옥주 목사는 "때가 가까웠다"고 설교했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활동을 개시했고,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기후 조작까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난처'로 떠나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기존 교회에서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공포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피지라는 말은 안 했지만, 피난처를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신옥주 씨가 많이 했다. 계속 듣다 보니 세뇌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신옥주의 이야기를 믿게 됐다"고 말했다.

주광수 씨(가명)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3월 부천 은혜로교회에 발을 들인 그는 "신옥주 목사가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 주님이 언제 올지 모르니 눈을 뜬 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성 교회에서 들을 수 없었던 재림·심판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신옥주 목사는 설교할 때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를 언급했다. 종말의 때가 오고 있다면서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피난처를 찾기 위한 작업이 이뤄졌다. 신옥주 목사의 아들 김정용 씨가 3년 반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피난처를 물색했다고 했다. 그 결과 피지를 최적의 장소로 택했다. 신 목사는 "기후가 좋고, 겨울이 없다. 노아의 후손 함 족속이 사는 땅으로 하나님이 예비해 주셨다"고 소개했다.

은혜로교회 신자들은 2014년부터 피지로 이주했다. 주광수 씨와 김송이 씨도 각각 2014년, 2015년 피지로 이주했다. 신 목사가 말한 '낙토'를 꿈꾸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육체노동과 타작마당이었다. 애당초 낙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귀신 쫓아낸다며 '타작'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행 
지시 따르지 않아 추방당하기도

신옥주 목사는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신 목사를 따르는 신자 400여 명은 지금도 피지에서 지내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올해 8월 SBS 그것이알고싶다는 은혜로교회의 '타작마당'을 방영했다. 엄마가 딸의 따귀를 때리고, 딸이 엄마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을 비롯해 신 목사가 교인들을 폭행하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했다. 귀신 때문에 사람이 죄를 짓게 되니까 때려서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타작마당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행됐다.

타작마당은 2014년 초 갑자기 등장했다. 김송이 씨는 "어느 날 죄를 고백하는 시간이 있었다. 예배 도중 신옥주의 이복동생 A가 나와 '간음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신옥주가 '죄를 사해 주고, 원수를 갚아 주겠다'며 A의 뺨을 때렸다. 다른 교인들도 차례로 나와 지은 죄를 고백했고, 신 목사에게 따귀를 맞았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후로 타작마당은 교회의 통과의례로 자리 잡았다. 신옥주 목사가 일일이 할 수 없으니, 아예 타작마당을 하는 사람을 따로 두기까지 했다. 김 씨는 "한국에 있을 때 중학생들에게 타작을 당하기도 했다. 수치스러웠지만 참고 견뎌야 했다. 믿음의 증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 씨는 "그때만 해도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구성원 전체가 같은 일을 반복하니까 세뇌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피지에서도 타작마당은 계속됐다. 김 씨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타작마당과 강제 삭발을 당했다.

주 씨는 한국에 있는 딸이 방송사와 한 인터뷰 때문에 강제로 추방당했다. 주 씨의 딸은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피지에서 매일 풀을 뽑고 있고, 어머니는 매일 물건을 팔고 있다. 부모님을 한국으로 데려와 달라"고 요청했다.

주 씨는 "방송을 본 신옥주 목사 측이 '한국으로 가서 반박 기자회견을 하든지, 아니면 딸을 피지로 데려오라'고 하더라. 딸이 한 말은 100% 팩트인데 마치 우리를 반역자 취급했다. 지시를 따르지 않자, 나와 아내를 피지에서 추방했다"고 했다.

신옥주 피해자 측은 "외교부가 적극 나서 또 다른 가해자들을 피지에서 강제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옥주 피해자들이 2016년 5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방송과 뉴스로 논란이 됐지만, 지금도 피지에는 은혜로교회 신자 400여 명이 남아 있다. 탈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평균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매일 밤 2시간 정도 예배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주 씨는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거짓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진실을 말했다가는 타작 대상이 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피지에 있을 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주 씨는 "가족끼리 떨어져 지내게 한다. 너무 악랄하다. 가자마자 아내와 헤어져야 했다"고 말했다. 김송이 씨는 "엄마와 남동생이 같이 갔는데, 우리도 따로 떨어져 지냈다. 아직 남동생이 피지에 남아 있는데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어 걱정이다"고 했다. 조성일 총무는 "가족끼리 지내게 하면 아무래도 관리가 어렵다. 그래서 가자마자 떼어 놓는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방송과 뉴스로 은혜로교회 문제가 이슈가 됐지만, 어느 순간 관심이 시든 것 같다며 우려했다. 피해자 측은 신옥주 목사의 아들 김정용 씨를 비롯한 실세가 여전히 피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외교부가 적극 개입해 또 다른 가해자들을 강제송환해 조사하고, 세뇌당한 이들이 벗어날 수 있게 은혜로교회 집단을 해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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