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한동대학교(장순흥 총장)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했다가 무기정학 징계를 받은 A가 학교와 교직원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첫 변론이 11월 8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서 열렸다.

지난 8월, A는 강의·채플 시간에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며 성적 지향을 문제 삼은 최정훈 교목실장, 전 교직원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리는 메일을 발송한 조원철 학생처장, 교내 공지 게시판에 자신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올린 제양규 교수, 무기정학 처분을 내린 한동대 학교법인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A는 이들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각 교수와 법인에 1100만 원씩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첫 변론에는 원고 A와 피고 조 학생처장, 최 교목실장, 제 교수 모두 참석했다. 양측은 약 30분간 각자 주장을 펼치며 팽팽히 맞섰다.

11월 8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서 한동대·교수 상대 명예훼손 첫 재판 변론이 열렸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피고 측은 '메일 발송, 공지 게시 등의 행위가 A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했다'는 원고 측 주장이 잘못됐다고 했다. A가 스스로 폴리아모리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인정해 왔다는 이유를 댔다. 지난 2월 A가 연세대에서 진행된 '성소수자 인권 포럼'에서 '폴리아모리 세션'을 진행했고, 여러 매체와 경로를 통해 성적 지향을 밝혔기 때문에, 이는 공인된 사실이라고 했다.

A 측은 징계 과정과 그 후 개인의 성적 지향을 공개적 자리에서 언급한 일 자체가 나쁜 의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의 변호인은 "사회 전반적으로 이성애 외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관한 부정적 시각이 많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타인의 성적 지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부정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성 정체성이나 지향은 대단히 민감한 부분인데, 이를 개인 의사에 반해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또 "'폴리아모리가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이야기하는 것과, 타인의 성적 지향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공개하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 개인 소신을 치유할 수 있는 병적 문제로 취급하며 퍼트리는 행위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A는 "나는 한 번도 '폴리아모리를 행한다'고 이야기한 적 없다. 제출한 증거를 보면 나와 있다. 피고 측이 계속 '스스로 밝혔다'고 주장하는데,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피고 측은 강의·채플 시간에 A를 특정한 최정훈 교목실장의 발언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한동대 구성원의 관심과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사실에 근거했기에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피고들의 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했다.

"한동대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변호인은 "한동대는 일반적인 학교가 아니다. 피고 최정훈의 지위는 '교목실장'이고, 그가 A를 언급한 수업은 기독교 과목과 채플이었다. '폴리아모리'나 '포스트모더니즘' 등 기독교에 해를 입히는 사상에 대해 가르친 것이다. 이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이야기는 기독교 사학에서 다수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론에는 60여 명이 몰렸다. 반동성애 단체와 지역 교회 교인들, 한동대 교직원·학생이 참석해 30석 규모의 좁은 법정을 가득 메웠다. 좌석 사이사이에 서서 방청하는 사람도 많았다. 판사가 다음 기일을 정하기 위해 질문하자 "다음에는 더 넓은 곳에서 진행해 달라"고 요구하는 방청객도 있었다. 다음 변론 기일은 12월 6일이다.

한동대학생부당징계철회공동대책위원회는 같은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A의 신상을 담은 허위 메시지를 유포한 단체와 특정인에 대한 고소 계획을 밝혔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한동대가 내린 무기정학 처분의 부당함을 알리고 A를 돕기 위해 결성된 한동대학생부당징계철회공동대책위원회는, 재판 직전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정문에서 '한동대 부당 징계 학생 2차 가해, 명예훼손 고소'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 상임대표 권영국 변호사는 "한동대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A에 대한 명예훼손과 인격 살인이 일부 기독교인들과 단체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허위 메시지 유포로 인한 2차 가해, 명예훼손이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있는 한동대와 그를 둘러싼 세력의 헌법 유린 행위를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A의 신상을 담은 허위 메시지를 유포한 단체와 특정인에 대한 고소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포털 사이트와 소셜미디어 등에서 실제로 A의 실명을 거론하며 명예를 훼손한 단체와 특정인을 피고소인으로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에 고소하게 됐다. 검찰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히 침해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불법 행위가 판치지 않도록 엄중히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문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함께 허위 메시지 유포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계속되는 명예훼손에 강력히 대처할 것이다. 이 같은 행위가 한 인간에 대한 인격 살인이며 혐오·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를 요청한다"고 했다.

오전 8시부터 재판 직전까지 법원 앞에서 기도회가 진행됐다. 기도하고 있는 한동대 학생들. 뉴스앤조이 장명성
총학생회 소속 학생이 작은 현수막을 펼치고 서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한동대 총학생회는 재판 하루 전인 11월 7일, 사건의 경위와 재판 취지를 간략히 요약하며 중보 기도를 요청하는 공지를 인트라넷 게시판에 올렸다. 재판 당일 법원 앞에서 기도회를 진행하고, 재판 관련 학생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재판 직전까지 법원 앞에서 진행된 기도회에는 학생 20여 명이 참석했다.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법원 정문에서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의 학생임이 자랑스럽습니다", "한동인은 교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치고 서 있기도 했다.

김광수 총학생회장은 "이 재판은 한동대 구성원 모두에게 슬픈 일이다. '기도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있었고, 구성원들이 모여 기도할 수 있는 형식을 마련하고 싶었다. 또 재판 특성상 외부에 보이는 면도 있기 때문에 한동대 학생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리해서 현수막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기도회와 현수막 퍼포먼스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총학생회 공지가 너무 기계적 중립 아닌가"라는 기자의 말에, 김 회장은 "의도적으로 사실만 건조하게 나열했다. 가치 판단은 제외하고, 학교와 관련 단체들이 표현한 단어 그대로 사용했다. 해당 학생에게 '공지를 보고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는데, '의도와 상관없이 힘들었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계획한 학교 행사는 그대로 진행해야 해서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오전 9시께 법원 정문에는 "한동대학의 인성 교육을 지지합니다", "판사님! 교육을 살려 주세요"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들은 "포항 지역 교회, 개신교 단체가 모여 결성한 '건강한가정지킴이연대연합'이다. 한동대 학부모도 소속돼 있다"고 스스로 소개했다. 이들 중 한 명은 기도회를 진행하는 한동대 학생에게 "동성애 반대하는 것 맞느냐"고 묻기도 했다. 학생들은 "학생마다 의견이 다르다"고 답했다.

오전 9시께 법원 정문에 피켓을 든 사람들이 나타났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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