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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로써의 목회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 '거룩한 소명'의 뒤안길

정신실   기사승인 2018.11.02  19: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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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밥벌이로써의 목회'에서 '로써의'라는 표현은 문법상 맞지 않으나, 의미를 더 강조하고자 작가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 편집자 주


내 동생은 목사였다. 지금은 목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들을 주시면 주의종으로 바치겠습니다.' 생기기도 전에 바쳐진 아들이다. 사람이 아니라 목사로 잉태된 동생을 보며 자란 나도 그 서원 기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가 아들이었으면 어쩔 뻔 했나! 대통령, 과학자 같은 장래 희망 같은 것 한 번 가져보지 못하고, 아니 꿈꾸는 순간 그 자체가 죄책감이 될 것이다. 꿈꾼다는 것은 (서원을 거스르는) 죄다. 어린아이에게, 한 존재에게 이 얼마나 가혹한 올무인가. 의식화하진 못했지만 그 끔찍함을 무의식적으로 느꼈고 동생이 가엾었다. 나는 피했다는 안도감조차도 죄책감이었을까. 나 역시 이상한 방식으로 그 기도에 매어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가족이라는 이름의 단일 심리 시스템, 종교 시스템 안에 엮여 있었으니.

흔한 각본대로 자기 꿈을 꾸며 방황하고 엇나가기도 하며 간증거리를 많이 축적한 후 동생은 결국 목사가 되었다. 엄마의 기도대로 '진실헌' 목사가 되었다. 엄마는 '진실헌 목사가 되어 목회 성공하게 해 주세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앞부분만 들어주셨다. 진실한 목사로 살고자 성공하는 목회자의 길을 피해 다니던 동생이 도저히 맨정신으로 목사를 할 수 없다며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 누구보다 엄마에게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 아들 목사 만드는 일을 소명으로 살아오셨다. 어떻게 만들어 놓은 목산데, 제대로 목회는 안 하고 교회개혁실천연대니 뭐니 하며 다니더니 결국 목회를 안 한다니.

평생 해 왔던 대로 엄마는 "네 말은 들으니 네가 설득하라" 했다. 평생 하던 대로 나는 엄마 앞에서는 동생 편, 동생 앞에서는 엄마 편을 들며 고뇌에 빠졌다. 엄마에겐 "목사 시키는 건 엄마 마음대로 했으니 그만두는 건 제 마음대로 하게 두라"고 했고, 동생에겐 "이제껏 해 왔는데 그만두더라도 엄마 돌아가실 때까지만 참아라"고 했다. 50:50의 내 마음속 찬반 갈등 밑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나님이 쓰실 사람을 결국 데려다 쓰신다. 빨리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 매 맞고 돌아오게 되어 있다." 어렸을 적부터 들었던 말. 들을 때마다 턱도 없는 소리라 여겼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엄마 앞에서는 턱도 없는 소리라는 이성이, 동생 앞에서는 비합리적 두려움이 작동했다.

"얘기 해 봤냐? 아이고, 더 말려야지! 가만뒀어? 그려서 목사 안 하고 뭐 헌댜?"

"장사한대. 햄버거 장사. 잘할 거 같지 않아?"

"야이, 년아! 사모라는 년이! 말을 그르케 혀? 아니 목사가 헐 짓이 없어서 장사를 혀?"

"장사가 왜? 예수 팔아서 장사하는 거 보다 진짜 장사를 하는 게 더 낫지."

"저런, 저 주댕이… 끊어."

그리고 금방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나를 먼저 구워삶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평생 그랬던 것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다시 말했다.

"야이, 니가 OO이 데리고 잘 얘기혀. 목사가 장사를 허믄 안 되는 거여. 하나님 앞이서… 하이고, 이게 뭔 일이랴. 걔가 니 말은 잘 듣잖여. 어뜨케 목사를 만들었는디….(울먹)"

동생 뜻이 더욱 확고해졌고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시점, 엄마는 계속 전화를 걸어 와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울고 하셨다. 더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중얼거리듯 툭 뱉은 엄마의 말이 전화선을 타고 내 귀에 꽂혔다.

"애가 셋이나 있는 애비여. 인자 뭘 혀 먹고 살어…."

"뭐 먹고 살어, 뭐 먹고 살어", 결국 먹고사는 문제였다. 먹고살 걱정이었다. 거룩한 소명을 거스르는 죗값을 받되 그것이 먹고살지 못하는 것이 될까 두려운 것이었다. 유레카! 엄마의 마지막 말은 서원된 존재로서의 목사, 거기에 함께 묶여 서원된 내 종교적 삶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일깨웠다. 비로소 목회를 그만두겠다는 동생을 전적으로 지지할 수 있었다. 그 어떤 종교적 두려움 대신 '먹고살 길'을 잘 찾았으면 하는 상식적인 걱정만 하면서 말이다. 평생 엄마의 종교와 동생의 인간적 고뇌 사이에서 오가던 역할 대신 온전히 동생 편에 섰다. 당시 엄마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가 여기 있다.

엄마,

OO이 목사 안수식 사진을 다시 들여다봐. 엄마가 저렇게 입을 꼭 다물고 웃을 때는 진짜 좋아서 웃는 건데. 그날 얼마나 좋았어? 생기지도 않은 아들을 놓고 '주시면 주의종 만들겠다' 기도하여 얻은 아버지의 환갑둥이 아들. 저렇듯 목사 가운을 입기까지 기나긴 기도의 시간, 방황의 시간이었어. OO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오직 저 아들 아버지 대를 이어 2대 목사 만들 소원으로 살아온 엄마의 기도 인생 존경해. 수많은 밤 철야 기도로 지새우고, 그렇게나 많은 끼니를 금식 기도로 대신한 엄마와 하나님만의 사연은 얼마나 구구절절할까? 엄마, 엄마의 기도와 인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엄마를 배신했어. 아픈 마음으로 이 글을 써.

결국 OO일 설득하지 못했어. 아니 안 했어. 엄마가 나 어릴 적에 그랬었지? "야이, 사모의 '사' 자는 '죽을 사' 자여. 너는 사모 되지 마라." 엄마의 그 말 때문이었는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는데 늦깎이로 '죽을 사 자의 사모'가 되었어. 사모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난 두려워. 많은 것이 두려워. 그중 결정적인 두려움 하나가 내 안에 있고 그 때문에 OO의 선택을 말리지 못한 것 같아. 그 얘길 해야 할 것 같아. 엄마에 대한 마음, OO에 대한 마음, 이제 막 목회를 시작한 김 서방에 대한 마음을 위해서 말이야. 무엇보다 이 모든 걸 바라보는 나를 위해서.

구역을 대신하는 가정 교회라는 모임을 몇 년 동안 집에서 했어. 대여섯 부부와 오래고 깊은 우정을 쌓았지. 덕분에 직장 생활 하는 남자들의 삶과 고뇌를 들여다볼 수 있었어.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아이들이 잠든 다음에 퇴근하고, 잠든 아이 얼굴 한 번 들여다볼 새 없이 다시 출근하는 아빠들. 일하고 퇴근하고 또 일하고 퇴근하며 엄청난 양의 일을 하는 것이 삶의 전부야. 민감한 사람들은 가끔 고민도 하더라고. 이런 삶을 살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그렇다고 딱히 어떻게 해 보지도 못해.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능력을 보여 주고 대가로 현실적 보상인 연봉을 받는 직장 생활. 유능감과 연봉은 이들 존재의 근간인 것 같아. 오직 일에만 매여 있기에 몸과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할 시간과 에너지는 없어. 남편의 자리, 아빠의 자리는 생활비로 불리는 돈이 대신하고 정작 남편이며 아빠인 남자는 섬 하나가 되고 마는 것 같아. 크리스천이어도 별 수 없겠다 싶었어. 이렇게 살아가는 남자에게 하나님 찾을 시간,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여유는 사치 아니겠어? '가장 바라는 것, 꼭 이루고픈 꿈'을 나눈 적이 있어. 하나같이 '직장 그만두는 것'이더라고. 잠시라도 쉬어 보고 싶다는 거야. 물론 그럴 수는 없지! 어떻게 쌓아 온 전공과 경력인데, 그걸 포기할 수 있겠어. 더 중요한 것은 엄마 말처럼 '뭘 먹고 사는가' 문제일 거야. 의미 없고 불행한 나날을 꾸역꾸역 살아 내는 것이 '먹고사는 문제' 총책임자로서 하는 유일한 선택이지.

그런데 엄마. 동년배 목회자들은 다를까? 아닌 것 같아. 평신도 형제에게 '전공 포기'의 두려움이 있다면 목회자들은 "소명인데, 그래도 소명인데 포기하면 되냐"고 말해. 다른 두려움일까? 목회자의 두려움은 더 거룩한 것일까? 엔지니어, 영업직이 아니라 소명, 거룩한 소명인데 이에 순응하지 않으면 죄받을 것 같은 두려움? 엄마가 했던 걱정이기도 하지. '힘들고 어렵다고 어떻게 목회 소명을 포기하나? 그건 인생의 실패이고 신앙의 실패이며 존재의 실패지!' 먹고사는 걱정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애가 셋 있는 애비가….' 이 걱정 말이야. 목회 그만두면 당장 사택 지원금 반납해야 하지. 그리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나? 아이들 학교는? 또 전학을 시켜야 하나? 이것도 가정 교회 형제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먹고사는 문제로 직장에 매여 있다면 목회자의 매임이 더 처절하지 않을까.

정말 문제는 목회자들은 정직하지 못하다는 거야. 아니, 정직할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어.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지 않아. 목회자로 고난받는 것은 영광이고, 지질한 삶은 필수 옵션이라고 생각하니까. 불행한 오늘을 인정하지 않기에, 인정할 수 없기에 직장 생활 하는 아빠들보다 더 위험해. 물론 목회의 맛이 있어. 있더라고. 보통의 직장 생활과 다르지. 사람들의 삶에 밀착하여 울고 웃는 자리, 거기 주님이 계시더라고. 헌데, 알고 보니 그건 목회의 본질이 아니었어. '교인 관리'가 주업인 목회 현장을 지켜보면서 목회자들이 처음 헌신하던 그때 그리던 삶이 저런 걸까? 싶어. 목회자들은 불행해. 불행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걸 '주의 일을 하면서 받는 당연한 고난'으로 너무 쉽게 승화한다는 거야. 쉽게 초월되지 않는 것을 초월한 것처럼 살다 위선자가 되고. 결국 마음이 고장 나 남모르게 아픈 사람이 되기도 해.

불행한 부모가 행복한 자녀로 키울 수 없듯 불행하고 아픈 목회자 밑에 행복한 교인들의 삶이란 있을 수 없어. 목회자는 행복한 척이 아니라 진정한 내적 행복을 알고 누릴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엄마, 나의 결정적 두려움은 이거야. 동생이, 남편이 그럴듯한 목회자다움을 위해 자기다움을 말소하고 사는 것 말이야. 그러다 결국 남은 구원으로 인도하고 자신은 망하는 길로 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목회자도 불행할 수 있잖아.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며, 고난 또한 그러하지만 어쨌든 고난은 싫어.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목회자가 정직하게 '나는 불행하다. 때때로 불행하고, 지금 불행하다. 적은 사례비의 궁핍한 삶이 힘들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부모님께 자식 노릇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인정해야 해. 그래야, 이 일상의 결핍과 불행 속에 기쁜 소식으로 들려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지 않겠어. 그래야 자본주의사회에서 길을 잃은 가장들에게, 그 가장이 이끄는 가정에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지 않겠어?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는 정직하게 "나는 지쳤다. 불행하다" 고백해야 해. '더는 불행하게 살지 않겠다!' 불행의 자리를 떠나는 용기도 내어 주면 좋겠어. 그것이 '나는 실패한 목회자다'로 들릴지언정 목소리를 내 주면 좋겠다고. 믿음을 가지라 설교하기 전에 자기 영혼의 메마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과감하게 광야로 나가는 결단을 먼저 보여 줄 수도 있겠지. 그 광야는 목회하던 사람이 햄버거 장사를 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 주렁주렁 달린 아이들을 놓고 백수를 자처하는 곳이 될 수도 있겠지.

문제는 그게 왜 내 동생이어야 하냐는 건데. 그걸 막상 내 동생이 하겠다니 막막하여 앞이 캄캄해. 잘되고 있는 것들에 시선 집중하고, 긍정적인 면만 보면서 이제껏 쌓아 온 것을 누렸으면 좋겠어. 엄마가 늘 하는 말처럼 물이 맑으면 고기도 없고 외롭기만 한데 굳이 그렇게 튀는 선택을 해야 할까. 최대한 말려 보고 싶었어. 헌데, 그 선택을 한 목사가 내 동생이어서 고맙다는 결론에 이르렀어. 정직해서 고맙고, 막막하지만 저질러 준 용기가 고마워.

밥벌이로써의 목회, 목사 스스로 그것을 인정해야 교인들 환상도 깰 수 있을 거야. 교인들은 목사가 이슬 먹고 사는 줄 아는 것 같아.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사례와 연봉 수억의 사례 사이 간극을 현실로 가늠하지 못해. 말도 안 되는 사례비로 사는 은혜가 목사에겐 따로 있는 줄 알아. 수백만 원짜리 양복이 필요한 목사도 은혜로 받아 주고. 목사를 향한 거룩한 투사로 정작 그 목사들을 환상 속에 가둬. 일상을 몸으로 맞서는 상식, 그 상식이 거세된 거룩한 환상은 타락의 온상이 되고 말아. 환상 속의 목회자들은 돈 개념 없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될 수밖에 없어. 권사 기도회에 가서 설교 예화랍시고 드는 것이 "아이 분유값이, 학비가…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며, 주의 은혜로 열리는 권사님들의 지갑을 탐하지. 그 '은혜'에 기대어 목회를 시작하는 젊은 전도사의 경제관념이 어떨 것 같아? 교인들 지갑, 교회 재정을 쉽게 넘보는 목사가 되지 않을까. 처음부터 헌금 도둑을 작심한 목사는 없을 거야. 느슨한 경계를 넘나들다 권력이 생길수록 야금야금 더 큰 돈을 가져다 쓰고 숨겨 두고 하겠지. 이슬 먹고 사는 목사는 없어. 목사는 목회로 밥 벌어먹는 사람임을 피차 인정할 일이야. 하늘의 삶을 살지만 땅을 딛고 살아야 교인들과 다를 바 없지.

시간이 지날수록 OO의 멈춤이 자랑스럽고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나. 엄마, 걱정하지 마.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불안 속에서,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OO의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할 거야. 엄마가 그리던 큰 목회, 큰 교회 당회장 되는 소원은 물 건너갔지만 '진실헌 목자 되게 해 주셔유' 하던 그 기도에는 더 가까워질 거야. 엄마의 걱정과 두려움, 사랑이신 그분의 손으로 만져 주시길 기도해. 그렇게도 그리는 천국에서, 그렇게도 그리던 주님을 저 사진 속 부끄러운 웃음으로 만나게 될 때 엄마가 받을 상이 클 거야. 엄마의 기도, 그 기도로 우리 남매가 살았어. 하나님 앞이서 진실헌 사람으로 살게. OO 마음 돌려놓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미안해.

딸 드림.

동생이 목회를 그만두는데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엄마였다. 결국 강행했지만 노년의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이후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동생은 적절한 일을 찾아서 밥 잘 벌어먹고 살고 있다. 처음엔 "어여 다시 목회 해야지. 내가 천국 가서 아버지 얼굴을 어떻게 보냐" 하시던 엄마도 평안하게 지내신다. 목사 그만둔 아들에게 매를 대지 않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계실까? 엄마는 이제 아흔을 훌쩍 넘기셨다. 몸과 정신의 근육이 하루가 다르게 느슨해지고, 마음 가는 대로 기억을 왜곡해 버리신다. 얼마 전 어느 주일, 교회 다녀오신 엄마가 동생에게 물었단다.

"야, 니가 목사였냐? 오늘 교회서 어느 집사가 정 목사님 잘 있냐고 하더라. 니가 목사였어?"

농담을 하시나, 잘못 들었나 싶었던 동생이 여러 번 확인 끝에 확인했다. 진심으로 네가 목사였냐고 묻고 계시는 것이었다. "엄마가 서원 기도 해서 나를 목사 만들지 않았냐"는 말에 돌아온 엄마의 대답에서 50여 년 묵은 진실이 드러났다. 엄마의 무의식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불편한 진실, 또는 속내. 그것을 꽁꽁 싸매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종교였는지, 종교적 두려움이었는지, 종교적 두려움 때문에 알아서 기는 헌신이었는지. 무엇이 됐든 느슨해진 방어막 사이로 본심이 새어 나온 것은 분명하다.

"야야, 왜 너를 목사를 만들어? 그런 기도를 왜 했겄냐. 느이 아부지가 목회하느라 그르케 고생혔는디, 사랑허는 아들을 갖다 왜 목사를 시켰겄어? 무슨 소리를 허는 거여!"

정신실 작가가 '신앙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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