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너는 나다.' 불법 촬영물 규탄 시위에 나선 여성들이 내건 구호를 김애희 센터장(기독교반성폭력센터)이 소개했다. "한국 여성 10명 중 2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신체적 성폭력을 겪는다"는 여성가족부 2016년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와 연결되는 이 말은, 여성에게 성폭력 문제는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총신대학교 총여학생회비상특별위원회가 주최하는 '반성폭력이 총신을 구한다' 세미나가 10월 30일 사당캠퍼스에서 열렸다. 강사로 나선 김애희 센터장은 성폭력의 특징과 예방 방법을 교육했다. 김 센터장은, 교육 내용은 대부분 학생들이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라면서 토론하며 주제를 풀어 나가 보자고 제안했다. 축제 기간인데도 30여 명이 참석해 교육을 들었다.

세미나를 주관한 김자은 총여학생회비상특별위원장은 "그동안 총신대 내에 성폭력 예방 교육이 없다시피 했다. 학교에서 하는 교육은, 채플 끝나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학생들 사이에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김애희 센터장을 초빙했다"고 말했다.

김애희 센터장은 성폭력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교회에서는 '약자'인 부교역자, 청소년의 피해 사례가 절대다수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김애희 센터장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의 현실을 먼저 설명했다. 중요하거나 힘이 있는 자리에는 대부분 남성이 들어가 있고, 임금도 더 많이 받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일례로 서울대 법대 교수는 60여 명인데, 그중 여성은 10명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총신대학교 교수 성비는 어떤지 물었다.

한 학생은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는 같은 생각이지만, 임금 차별이나 교수 성비를 언급하는 것과 여성들이 성폭력을 겪는 현실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일례로 유아교육과 같은 경우는 여성 교수 수가 더 많다. 이런 비유는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애희 센터장은 상담이나 음악, 특히 유아교육 같은 특정 학과에만 여성이 몰리고 나머지는 남성이 몰리는 이유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총신에 여성 '신학' 교수는 한 명도 없다. 중요하고 힘 있는 자리에는 남성만 있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성폭력은 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권력 관계의 문제"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사회적 취약 계층이 주로 피해를 당한다는 것이다. 교회로 예를 들면 담임목사·장로 같은 지도층이 아니라 부교역자·전도사·청소년들 피해 사례가 절대적으로 많다고 했다.

김애희 센터장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맞아 한국YWCA가 기념행사를 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김애희 센터장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사건을 조용히 덮거나 어물쩍 넘어가려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책임 전가의 대표적 사례가 '성폭력 신화'다.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알지 못하는 남자 차를 얻어 타고 강간당했다면 여성에게도 일부분 책임이 있다'는 문항에 51.1%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문항에도 44.1%가 그렇다고 답하는 등, 성폭력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성폭력으로 받은 상처는 치유가 어렵다'는 통념도 있다. 피해자는 평생 위축돼 살아간다는 선입견과도 연결돼 있다. 김애희 센터장이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자, 한 학생은 "피해자처럼 살기를 요구하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피해자가 여행이라도 가면 '저렇게 놀러 다닐 정신이 있냐. 당한 거 맞냐'고 의심하는 거다. 치유가 어려울 수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심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축제 기간에도 학생 30여 명이 참석해 강의를 들었다. 학생들은 중간중간 질문하거나 김 센터장의 질문에 대답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김애희 센터장은, 성폭력은 꺼내기 어렵고 공론화하기 힘든 주제지만 계속 토론하고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질문하지 않는 문화가 교회 내에 만연해 있는데, 이를 바꾸는 노력을 해 보자고 했다. "한국교회에서 환영받는 교인들은 질문하지 않는 교인이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면 따르고 믿고 신뢰하는 게 교회에서 교인이 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배우고 자란다. 우리는 쉽게 의문을 품지 못한다. 그렇지만 변화를 위해 모이고 떠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하고 사유하라"고 주문했다. 토론이든 워크숍이든 연극이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김애희 센터장은 "성폭력이 우리에게 민감한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닫아 둘 수만은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폭력이 굉장히 내밀한 방식으로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을 바꾸지 않으면 이 문제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조직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또 총신대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은 잘 정비돼 있는지, 학교가 성폭력 사건을 규정대로 잘 처리하고 있는지, 피해자가 신고하기에 쉬운 구조인지 등도 이번 기회에 잘 살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반성폭력 세미나는 10월 31일 총신대 제1종합관 시청각실에서 두 번째 강의를 연다. 총신대 출신 박유미 박사가 '구약 성폭행 속 여성, 남성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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