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세습 아닌 '전유'가 문제

'부당 이권' 승계는 한국 개신교의 극심한 시장 상황이 낳은 폐해

신광은   기사승인 2018.10.30  14:44:26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default_news_ad2
ad42

1. 세습 반대 운동에 찬성한다

최근 모 교회 세습 문제가 불거져 교계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도 시끄럽다. 세습 논쟁에서 전선이 세습 찬성 vs. 세습 반대 진영으로 놓이게 되는 것 같다. 필자는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세습 문제의 본질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많지 않아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글 제목을 보고서 필자가 지금 문제시되는 세습 문제, 곧 모 교회를 비롯한 몇몇 메가처치를 위시해 한국교회 내 자행되는 세습에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런 염려는 버리시기를 부탁한다. 필자는 지금 한국교회에서 자행되는 세습이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질병의 말기적 징후徵候(symptom)라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세습에 결코 찬성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세습은 어디까지나 징후일 뿐 질병 자체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세습은 한국교회 진짜 문제가 아니며,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전술적 차원에서 세습 반대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두 종류의 세습

세습의 사전적 의미는 "재산, 신분, 직업 등을 한 집안에서 자손 대대로 물려받음"(Daum 한국어 사전)이다. 세습이라는 말은 용례상 자주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기는 하지만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부정적 뉘앙스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사전적 의미상 세습은 승계, 상속, 계승과 유사어다. 다만 혈연관계 내에서, 특히 부모-자식 간에 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독특성이 있을 뿐이다.

세습의 의미를 이렇게 따지는 이유는 세습에 두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하나는 무해한 세습이고, 다른 하나는 유해한 세습이다. 영국 교회나 프랑스 일부 개신교회 등지에서 세습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영국 교회는 과거 목회자 초상화나 사진을 걸어 놓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초상화를 죽 훑다 보면 아버지 목사에 이어 아들 목사가 목회하는 경우가 있었음을 종종 보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 '미션디모데' 공동체 같은 교회에서도 간간이 세습을 하고 있다.

굳이 이를 '유럽형 교회 세습'이라고 명명하기는 좀 멋쩍지만 분명 유럽 교회에 세습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세습은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세습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론 이들도 아버지가 하던 목회를 아들이 물려받아서(?) 하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유럽형 교회 세습은 무해하다. 무해할 뿐 아니라 교회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기까지 하다.

유럽 교회를 순방하다가 유럽 교회 세습 사례를 발견하고서, 세습이 나쁘지 않으며 세습 반대는 뭘 모르고 하는 운동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유럽형 교회 세습이 한국형 교회 세습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형 교회 세습이지 유럽형 교회 세습이 아니다.

3. 한국형 교회 세습의 본질

유럽형 교회 세습은, 앞서 얘기한 대로 세습을 하지 않으면 교회가 생존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세습을 하는 것은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한국형 교회 세습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형 교회 세습은 명백하게 자산이나 권한이 승계된다.

한국형 교회 세습이 문제인 것은 '이권의 승계'이기 때문이다. 통상 세습을 비판하는 이들은 '이권의 승계'라는 말 중에서 '승계'에 주목하여 세습을 '부당 승계'라고 규정한다. 필자는 '이권'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부당 승계가 아니라 '부당 이권'이 문제다. 승계가 일어나기 전 이미 담임목사에게 세습을 해 줄 만한 부당 이권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한국교회 진짜 문제인 것이다.

이권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곧 교회 내 동산과 부동산 등 물적 자산, 교인들과 사역자들에게서 취할 수 있는 노동력이나 재능 같은 인적 자산, 인맥 인프라, 교회 브랜드 같은 상징적 자산, 교단 내 혹은 시민사회 내 정치적 영향력, 의사 결정 권한 등이다. 이러한 것들이 부당 이권이 되어 승계하는 것이 한국형 교회 세습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엇이 부당 이권이란 말인가.

4. 전유專有(appropriation)

한국교회 문제는 세습이 아니다. 세습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교회의 다양한 자원 및 자산, 권한을 이권으로 치환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이권을 담임목사가 사유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설령 세습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담임목사 이권 사유화는 이미 그 자체로 문제다. 아니, 그것이 진짜 문제다. 이것이 부당 이권이다.

교회 내 물적·인적·상징적 자산과 의사 결정 권한 등을 담임목사가 사유화하는 것을 필자는 '전유'專有라고 부르고자 한다. 전유(appropriation)란, 누군가가 어떤 것을 부당하게 자기 소유로 취하는 것을 말한다. 경치 좋은 계곡에 식당 주인이 천막 치고 평상을 깐 다음 피서객에게 자릿세를 받는다고 해 보자. 피서객 중에는 식당 주인에게 "이 계곡이 당신의 전유물입니까" 항의할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전유란, 자기 것이 아닌데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삼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의 전유가 바로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 전유가 진짜 문제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전유에 대해 알아보자. 담임목사도 교회 구성원이다. 교회 내 다양한 자원 및 자산, 권한에 대해 일정 부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로 주장하는 것이 합당할까.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의 모든 성도가 교회 지체일 뿐이라는 고린도전서 12장을 토대로 생각해 본다면, 원칙적으로 담임목사 지분은 1/n이어야 할 것이다(여기서 n은 교인 수).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담임목사 지분은 1/n을 훨씬 넘어선다. 많은 경우, 담임목사는 자원 및 권한 대부분에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를 두고 담임목사가 교회 자원과 권한을 전유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전유가 한국교회 질병이다. 세습은 질병의 징후일 뿐이다. 징후는 병 자체가 아니라 그 병이 만들어 내는 표시(sign)다. 열, 기침, 근육통 같은 징후는 그 배후에 홍역 같은 병이 있음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세습이 중요한 것은 그 배후에 전유라는 고질병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세습과 관련해서 보자면, 한국교회 병은 '전유'다. 담임목사가 교회 내 자원과 권한 중 자신에게 주어진 몫(1/n) 이상을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취하는 전유가 바로 한국교회의 진짜 문제인 것이다.

5. 전유는 왜 일어나는가

전유는 담임목사가 교회를 시작할 때 자영업자가 창업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교회를 개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목사 A가 교회를 개척한다고 가정해 보자. 몇몇 동역자와 교회를 개척하기도 하겠지만 대개 혈혈단신으로 교회를 개척한다. 이때 누구 노력이 가장 많이 필요하겠는가. 두말할 것 없이 담임목사다.

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많은 경우, 담임목사는 공간을 얻고, 시설을 설비하고, 성구를 구입하는 일을 감당한다. 교회 이름을 정하고, 십자가와 간판을 달고, 예배 시간을 공지하는 것도 담임목사 몫이다. 예배를 시작하고, 전도를 하고, 교인을 위해 기도하고, 심방하는 것 역시 담임목사 몫이다. 재정 지원이 있기는 하겠으나 비용 대부분은 담임목사가 마련해야 한다. 가족 도움을 받기도 하고, 후원을 받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 은행 대출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자영업자가 창업을 하는 과정과 거의 비슷하다.

이 때문에 교회 개척과 치킨집 창업 사이에 근본적 차이를 찾기는 어렵다. 목사가 창업을 하기 때문에 담임목사와 교회는 운명 공동체로 얽힌다. 치킨집과 사장이 공동 운명체인 것과 같다. 막 개업한 치킨집이 문 닫으면 그 손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고스란히 치킨집 사장이 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개척한 교회가 문을 닫으면 그 책임은 집사, 장로, 혹은 일반 교인이 아니라 담임목사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공동 운명체가 된다.

똑같은 원리로 치킨집이 대박이 나서 매출이 늘어나면 그 매출은 누가 가져가겠는가. 치킨집 사장이다. 마찬가지로 개척한 교회가 크게 부흥해서 많은 자원과 권한이 생기면 그 혜택은 누가 가져가겠는가. 담임목사다. 물론 교회가 부흥해도 그렇게 하지 않는 소수의 양심적 목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만일 교회 개척이 창업이라면' 담임목사가 교회 성장의 이득을 취하는 것을 비난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진다.

100명 목회하던 목사가 교회를 1만 명으로 성장시켰는데 어떻게 월급을 올려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만일 그것을 비난한다면 담임목사에게 위험 부담만 지고 수익은 가져가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주장이 된다. 그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다. 교회 개척이 창업이 되었기 때문에 담임목사와 교회가 공동 운명체로 결합한다. 여기서 전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교회 성장과 쇠퇴는 담임목사 개인 복지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교회가 성장하면 담임목사 연봉도 올라간다. 유명해지고, 강사료도 올라가고, 교단 내 정치력도 올라가고, 의사 결정 권한도 올라간다. 반대로 교회가 축소되면 어떤가. 목사의 자산과 권한도 그만큼 줄어든다. 이것이 전유가 작동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유 때문에 담임목사는 자기 복지를 위해서라도 강력한 교회 성장 의지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졸저, <메가처치를 넘어서>(포이에마)에서 밝힌 대로 이것이 메가처치 현상 출현의 주요 동력이다.

6. 사업으로서 목회

교회 개척은 창업이다. 그래서 목회는 사업이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창업이 아닌 방식으로 교회를 개척하는 목회자는 거의 없다. 사업이 아닌 방식으로 목회를 하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는 지금 목회자 개인의 탐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에 대해, '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교회 개척을 창업으로, 목회를 사업으로 할 수밖에 없는 판이 이미 깔려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목회자가 자신의 숭고한 목회 사역을 사업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반발할지 모른다. 필자는 목사가 불순한 의도로 목회가 아닌 사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교회 상황에서,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목회가 사실상 사업 성격을 띠게 됐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이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교회는 극도의 시장 상황(market situation), 혹은 사업 상황(business situation)에 처해 있다. 목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장 상황 혹은 사업 상황은 이미 존재하는 교회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목회자는 물건을 파는 판매자처럼 행동하게 되고, 교회를 찾는 신자는 구매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건강하지 못한 교회든 건강한 교회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담임목사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기 쉽고, 그러면 교회 문을 닫아야 하고, 생존이 위협받는다. 따라서 목회자는 불가불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업 성격을 띠게 됐다는 말이다.

소비자의 선택은 원칙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운 가운데 이루어진다. 어느 목회자도 소비자에게 선택을 강제할 수 없다. 억지로 자기 교회에 출석하게 만들 수도 없고, 신자가 교회를 떠나려고 할 때 억지로 붙잡을 수도 없다. 이처럼 소비자 선택권은 절대적이다. 목회자는 다만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이 과정이 사업 과정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는 치킨집 사장의 사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시장 상황, 혹은 사업 상황은 왜 생겨난 것인가. 경쟁자가 출현하고 경쟁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없고, 선택 가능성이 없으면 시장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경쟁자의 출현과 그로 인한 선택 가능성이 이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낸다. 즉 한국교회는 경쟁자들이 우르르 출현하는 바람에 신자들에게 수많은 선택 가능성이 생기게 되어 시장 상황에 처한 것이다.

7. 반론: 개신교만 시장 상황 겪는 것 아냐

옳다. 현대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시장 상황, 곧 소비자의 선택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개신교만 시장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성공회, 불교, 신천지, 삼성, LG,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모두가 시장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회가 경험하는 시장 상황은 매우 독특하다. 이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시장 상황에 놓여 있기에 가톨릭교회도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하지만 가톨릭은 소비자의 선택 대상이 특정 지역 본당이나 특정 사제가 아니다(가톨릭은 아직도 신자가 자신이 사는 교구 내 본당을 출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여 소비자는 전체로서 가톨릭, 곧 가톨릭 신학, 예전, 전통, 교회 질서 등을 보유한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 본당끼리, 사제끼리 선택받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경쟁은 다만 외부적으로만 존재한다.

개신교회는 이중의 경쟁을 경험한다. 개신교회는 가톨릭, 불교, 무신론, 신천지 등의 외부 세력과 경쟁한다. 동시에 내부적으로 다른 7만 개의 개신교회와 경쟁한다. 사실 후자의 경쟁이 훨씬 더 심각하고 중요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한국교회는 이토록 내부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게 된 것인가. 일찍부터 한국교회가 개교회 중심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개교회 중심주의는 네비우스 선교 정책, 교단 분열, 신학교 난립 등으로 더욱 격화했다. 이미 7만 개 교회가 존재하는데 그것도 모자라 난립하는 신학교에서 수많은 졸업생이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혹자는 개신교회에도 교단 내 거리 제한 같은 규정이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소비자 입장에서 교단은 무의미하다. 7만 교회는 모두 선택이 가능하다. 이러한 것들이 내부 경쟁을 심하게 만든 원인이다. 극심한 경쟁이 극심한 시장 상황을 초래했다.

비유컨대, 가톨릭이 맥도날드라면, 개신교회는 치킨집이다. 맥도날드는 버거킹과 경쟁을 할지 모르지만 맥도날드 지점끼리 경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치킨집의 경우, 외부적으로 맥도날드, 버거킹과도 경쟁해야 할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수많은 치킨집과도 경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 개신교회가 경험하는 시장 상황에는 개신교회만의 독특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극심한 경쟁의 출현, 그로 인한 선택 가능성의 무한한 확대, 이것이 시장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목회를 창업으로, 혹은 사업으로 만드는 주원인이다.

8. 상품, 매출, 전유

치킨집 사장이 손님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하듯 목회자 역시 소비자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만의 신학, 설교, 목회 철학, 리더십, 카리스마, 성령의 은사, 능력, 대인관계 능력, 상담 능력, 프로그램 등을 개발한다. 이 과정에서 기복신앙을 설파하는 목회자도 생기겠지만, 정반대로 자신의 신학적·도덕적 올바름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기대하는 목회자도 있을 수 있다.

교인들은 수많은 담임목사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고, 그 교회에 출석한다. 따라서 교회 성장에서 담임목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자는 담임목사 설교를 들으려고, 혹은 돌봄, 능력, 축복, 신학, 영성, 감화력, 영향력, 도덕적 고결함 등을 맛보기 위해 교회를 선택한다. 결국 목회라는 사업에서 최고의 상품은 담임목사 자신이다. 하여 담임목사는 판매자면서 상품 자체이다.

목회 사업에서 매출은 뭘까. 일반 사업에서 매출은 돈이다. 목회 사업의 경우, 매출은 헌금이 아니다. 헌금에 눈독을 들이는 목회자도 적지 않겠지만 일차적으로 목회자가 추구하는 매출은 교인 수이다. 여기에 목회라는 사업의 독특성이 있다. 사업으로서 목회는 연예인이 팬을 모으는 노력과 비슷한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국교회는 담임목사 팬클럽이다. 조용기-여의도순복음교회, 옥한흠-사랑의교회, 릭 워렌-새들백교회처럼 교회 이름 앞에 담임목사 이름이 하이픈(-)으로 연결하여 브랜드를 형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이 팬클럽이기 때문에 세습을 하든, 하지 않든 한국교회는 리더십 이양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것은 방탄소년단 팬클럽인 '아미'가 어느 이름 없는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이 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팬클럽화한 한국교회에서 리더십 이양은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세습의 유혹이 더욱 커져 가는 것이다.

교회가 담임목사 팬클럽이기에 담임목사의 영향력과 장악력은 절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스타 없는 팬클럽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마찬가지로 담임목사 없는 교회는 물 없는 호수다. 이러한 담임목사의 절대적 영향력이 전유를 초래하는 것이다. 앞서 필자는 담임목사가 교회 내 자원과 권한의 1/n만 소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는 이 주장을 공허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목회에 대한 최종 책임을 목사가 져야 하고, 판매자도 목사고, 상품도 목사인데, 어떻게 담임목사에게 1/n만 소유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는 마치 스타가 팬클럽 멤버들과 똑같은 지분을 소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식적으로 담임목사는 당연히 그 이상의 지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상식이 한국교회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

하지만 물어보자. 담임목사가 1/n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야 한다면, 대체 얼마큼이나 소유해야 하는가. 담임목사가 스스로 규정을 정하지 않는 한 상한선을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 교회의 경우, 담임목사가 교회 내 모든 자산과 권한 전부를 주장하는 어이없는 일도 생긴다.

중요한 것은 전유가 목회자 개인 탐욕 때문에 생기는 측면도 있으나, 그 이전에 시장 상황인 한국교회에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전유는 개인적이고 도덕적 문제이기에 앞서 구조적·사회적 문제다. 어느 메가처치 목사의 경우, 신학도 건전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했지만, 의사 결정에서 압도적 권한을 행사하는 바람에 비합리적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전유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목회자에게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건강하고 훌륭한 목회를 하는 목회자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 한마디로 전유는, 정도가 크든 작든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세습은 이렇게 전유를 통해 취한 부당 이권을 자녀에게 승계하는 행위다. 그래서 승계보다 더 큰 문제가 부당 이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녀 승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근본 문제를 치유할 수 없다. 물론 필자는 한국교회에서 세습이 마지노선을 넘는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습을 하지 않기만 하면 한국교회가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세습은 하지 않으면서 전유를 일삼는 목회자가 세습을 하는 목회자를 비판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이없는 일이다. 그는 먼저 자신이 교회 내에서 물적·인적 자원이나 자산, 권한 등을 전유하는 일이 없는지 자성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9. 정리

A. 한국교회 세습은 유럽 교회 세습과 다르다.
B. 한국교회 세습은 부당 이권 승계라는 측면에서 병리적 징후다.
C. 승계가 아니라 부당 이권이 문제다.
D. 부당 이권이란 담임목사가 교회 내 자원과 권한을 부당하게 전유하는 것을 말한다.
E. 전유는 교회 개척이 창업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F. 교회 개척이 창업과 같기 때문에 목회는 사업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
G. 목회가 사업이 된 이유는 교회가 시장 상황, 사업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H. 시장 상황, 사업 상황은 경쟁자가 출현해 선택 가능성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I. 한국교회는 외부 경쟁과 내부 경쟁이라는 이중 경쟁을 경험한다.
J. 이중 경쟁 중 내부 경쟁이 훨씬 가혹하며, 이는 목회를 사업이 되게 한다.
K, 가혹한 경쟁이 생긴 것은 교단 분열, 신학교 난립 등 개교회 중심주의 때문이다.
L. 시장 상황, 사업 상황에서 담임목사는 판매자면서 상품 자체다.
M. 한국교회는 담임목사의 상품성을 구매하기 위해 모여든 팬클럽과 비슷하다.
N. 담임목사가 판매자이며 상품이기에 교회 내 자원과 권한의 1/n을 넘는 지분을 요구하기 쉽다.
O. 교회 성장과 위축은 담임목사 복지와 직결된다. 교회와 목사는 공동 운명체다.
P. 교회와 담임목사가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로부터 전유가 일어나며 상식이 이를 보지 못하게 막는다.
Q. 전유는 개인적이고 도덕적이기 앞서 구조적·사회적 문제다.
R. 전유는 거의 모든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10. 기존의 교회 개혁 전략

만일 전유가 한국교회의 진짜 문제라면 대안은 무엇일까. 전유를 치료해야 한다. 기존의 교회 개혁을 위한 대안은 시장 상황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의식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그러다 보니 도리어 시장 상황을 활용하여 교회 개혁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아마도 그들의 교회 개혁 전략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 건강하지 못한 신학의 대안으로 건강한 신학을 장착하라.
2) 비성경적 설교의 대안으로 성경적 설교 능력을 훈련하라.
3) 비윤리적 성품의 대안으로 윤리적 성품을 개발하라.
4) 몰역사적 신앙의 대안으로 역사의식을 가지라.
5) 위 조건을 충족한 후 바른 목회가 경쟁력이 되게 하라.
6) 그러면 분명 건강한 교회를 찾는 깨어 있는 교인이 (아마도) 찾아 줄 것이다.
7) 바른 목회를 하는 교회가 성장하고, 많아지면 한국교회는 점차 개혁될 것이다.

이 전략에는 시장 상황을 고칠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시장 상황을 수용하여 건강한 교회를 하나의 경쟁력으로 활용하라고 제안한다. 필자는 이것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러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이것 말고 달리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렇게 할 경우, 조금이라도 한국교회 타락을 막을 수 있고, 한국교회가 개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왜 한국교회가 처한 시장 상황, 사업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는 것일까. 왜 문제 원인인 전유를 막을 수 있는 길에 대한 모색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일까.

11. 미션디모데 통해 살피는 대안

앞서 프랑스 개신교 공동체 '미션디모데'를 잠깐 언급했다. 미션디모데는 프랑스 위그노의 신앙 유산을 이어받아, 칼뱅주의 신학을 고수하는 보수 개신교회다. 1970년대 초반에 생겨나 50여 년 유지되었는데, 프랑스 전역에 30~40개 지역 교회(?)가 개척되어 꾸준히 성장하는 중에 있다. 한국교회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지만 가톨릭이나 개신교회나 할 것 없이 교인들이 빠져나가 예배당이 텅텅 비어 가는 유럽 교회 상황과 비교해 보면 미션디모데의 성장 추세는 고속 역주행이라고 할 만하다.

앞서 이곳에서는 왕왕 목회 세습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교회 내외적으로 세습을 문제 삼는 이가 거의 없다. 이들 교회에서는 세습은 있어도 전유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들에게는 전유가 일어나지 않는가.

1) 개교회주의가 없다.

미션디모데는 지금 한국교회 패러다임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외형상으로 미션디모데는 30~40개 '지역 교회'가 존재하며, 지역 교회가 연합하여 미션디모데 '총회'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역 교회-총회 구도로 이해할 수 없다. 프랑스 전역에 30~40개 예배 처소가 있으며, 여기서 예배하는 공동체가 있으며, 공동체를 책임지는 목회자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개별 공동체를 지역 교회 혹은 개교회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개별 공동체에 이름이 없다. 미션디모데의 모든 개별 공동체는 똑같은 이름, '미션디모데'로 불린다. 개별 공동체는 각각 독립적 지역 교회가 아니다. 프랑스 전역에 있는 모든 개별 공동체를 단순히 '미션디모데'로 통칭한다. 개교회 연합체나 협의 기구로서 노회, 총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신약시대에 에베소라는 도시에 흩어져 있는 모든 가정 교회를 통칭하여 '에베소 교회'라고 불렀던 상황과 흡사하다.

미션디모데의 개별 공동체는 특정 지역에 따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교회'지만, 개교회가 연합할 때 그들은 복수로서 '교회들'로 보지 않고 단수로 하나의 미션 공동체라고 부른다. 개별 공동체 대표자들이 모여 회의하는 대표자 회의가 존재하지만 이는 지역 교회'들' 연합체인 총회가 아니다. 그저 여전히 하나의 '미션디모데'일 뿐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이해하기 참으로 어려운 구조다. 개교회 중심주의를 너무도 당연하고 자명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개교회와 개교회들 연합체인 총회라는 구도를 뛰어넘은 미션디모데의 구조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이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미션디모데에는 개교회 중심주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 간 경쟁을 찾아볼 수 없다.

2) 개인 예찬이 없다.

혹자는 미션디모데를 멀티 사이트 처치와 유사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한국교회 표현으로는 '지성전 체제'처럼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미션디모데가 멀티 사이트 처치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개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션디모데 홈페이지를 보면, 개인 이름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누가 미션디모데를 세웠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설립자도 있으며, 총회장격 대표자 회의 의장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교회가 개인의 신학, 개인의 통찰, 개인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개인을 사용하셨다고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 예찬이 없다는 점에서 멀티 사이트 처치와 미션디모데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3) 무조건 1인 담임 목회자가 목양하는 구조가 아니다.

한국은 거의 모든 교회에 담임목사가 존재하며 그를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된다. 미션디모데는 1명의 담임 목회자가 목양하는 공동체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경우 여러 명의 목회자가 팀으로 목회를 한다. 따라서 'OOO의 XXX교회'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다.

4) 목회자가 순환한다.

개별 공동체 목회자도 종종 다른 교회로 순환하면서 목회한다. 따라서 목회자가 지역 교회를 사유화할 수 없다.

5) 교인들 헌금을 개교회에 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미션디모데 교인들은 자신이 예배하는 개별 공동체에 헌금을 하지 않는다. 대신 총회격 대표자 회의에 헌금을 한다. 우리로 치면 교단 총회로 헌금을 보내는 셈이다. 따라서 개별 공동체나 그 공동체 목회자가 헌금을 임의로 집행할 수 없다.

6) 모든 목회자 월급이 동일하다.

헌금을 맡은 대표자 회의는 미션디모데 모든 공동체 사역자들에게 월급을 주는데, 액수가 동일하다. 이때 목회자만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션디모데에서 풀타임으로 사역하는 요리사, 행정 직원, 관리 직원도 목회자와 똑같은 액수의 임금을 받는다.

7) 목회자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미션디모데의 모든 풀타임 사역자 임금은 프랑스 최저임금 수준으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교회가 성장해도 목회자 임금은 인상되지 않으며, 반대로 교회가 쇠퇴해도 임금이 삭감되지 않는다.

8) 대표자 회의 의사 결정 구조는 만장일치다.

미션디모데 개별 공동체 대표자들이 모이는 회의가 존재하는데, 우리로 치면 총회다. 대표자 회의 의장이 있으며, 권한은 상당히 크다. 하지만 어떤 사안에 대한 의사 결정은 공동체 대표자들이 만장일치로 정한다. 대표자 회의에서 각 대표자 의사 결정 권한은 1/n이 된다. 따라서 특정 개인의 독단과 전횡은 불가능하다.

9) 교단 내 지역 교회가 수시로 모인다.

미션디모데에 속한 개별 공동체들은 모임 장소를 바꿔 가며 1년 10번 이상 전체 교회 수련회(camp)로 모인다. 강제로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교회(?)는 할 수 있는 한 수련회에 참석하려 애쓴다. 개별 공동체가 수시로 교류하는 것이다. 노회나 지방회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지역 개별 공동체끼리 연합하는 지역 수련회도 수차례 가진다. 사귐을 통해 서로 알게 된 교인들은 교단 내 다른 지역 공동체를 수시로 방문하고 숙박한다. 그 지역 교회 및 교인들은 방문객이 머무를 거처를 상시 마련하여 환대한다. 이러한 교류와 교통 때문에 개교회주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10) 각 지역 교회는 환대 공동체를 지향한다.

일부 지역 교회는 공동 주거를 한다. 공동 주거에는 교회 교인들, 학생들,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 여행자, 방문자 등이 함께 생활한다. 공동 주거에 입주해 살지 않는 신자들도 가급적 인근 지역에 모여 살며, 자기 집을 개방하여 환대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 때문에 지역 교회는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되어 있다.

11) 재정 필요는 자발적 나눔과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맡긴다.

수련회나 교회 개척, 건물 구입 등 많은 재정이 소요되는 사역을 할 경우, 교인들에게 헌금 독려를 하지 않는다. 십일조 요구도 없다. 교인들 중 재산에 여유가 있는 성도가 자발적으로 헌금을 내서 필요한 재정을 충당한다. 때문에 교회나 총회의 지도자들은 재정 필요에 대한 상황을 공유하면서,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한다.

12) 동일한 신학을 공유한다.

미션디모데에서 사역하려면 반드시 3년간(혹은 6년)의 신학 과정을 통해 공통의 신학을 공유해야 한다. 개인의 신학이나 목회 철학보다 교단이 공유하는 신학을 더 중히 여긴다. 신학은 심오한 학문보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과 함께 인성과 삶을 다루는 데 더욱 치중한다. 이를 위해 3년짜리 신학 과정을 통해 3년간 공동 주거를 해야 하며, 공동 주거를 통해 삶의 훈련을 받는다. 함께 생활하는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 부랑아를 섬기며, 공동 주거와 지역 교회에 필요한 일을 위해 노동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학생들은 소명을 분별하고 목회자 후보생을 걸러 낸다.

13) 교회 개척은 필요에 따라 교단에서 한다.

우리처럼 신학생들이 졸업한 뒤 스스로 교회 개척에 뛰어들지 않는다. 교회 개척은 어딘가에서 필요를 요청하면 그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특정 지역 교인들이 필요를 호소하면 대표자 회의에서 그 필요를 조사하고, 필요에 응답하여 목회자 후보생 중 적합한 자를 파송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회 개척은 창업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간략한 미션디모데 소개를 통해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목회자가 교회와 공동 운명체가 될 수 없도록 그 관계를 끊어 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를 사유화할 수 없다. 때문에 전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세습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12. 미션디모데가 한국교회 대안 될 수 있는가

미션디모데만 옳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하우리는 이 공동체에서 배울 수 있다. 미션디모데가 한국교회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미션디모데를 소개하는 이유는 시야를 넓혀 보자고 제안하기 위해서다. 미션디모데는 지금의 한국교회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교회를 개척하며, 목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교회의 진짜 문제, 곧 목회자가 교회 자원·자산·권한을 전유하는 문제를 고칠 수 있다.

세습은 전유 때문에 일어난다. 전유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영성·신학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장 상황이라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일어난다. 시장 상황은 경쟁자들 출현과 선택 가능성이 넓어졌기 때문에 생겨났다. 경쟁자 출현은 교회 분열, 교단 분열, 신학교 난립 등에 의해 생겨났다. 이로 인해 공교회성과 공동체성이 파괴되고, 개인주의가 한국교회를 먹어 버렸다. 미션디모데는 이러한 우리의 추악하고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 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우리가 미션디모데로부터 뭔가를 배웠다고 하더라도 한국교회 근본 문제를 고치기 위해 뭘 어디서 어떻게 손대야 할까. 알 수가 없다. 워낙 커져 버린 한국교회, 워낙 커져 버린 문제다 보니 감히 어찌할 수가 없다. 당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교회 개혁을 위해 애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습 반대 운동이 중단되면 안 된다.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근본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근본 문제는 한국교회가 처한 시장 상황, 사업 상황으로 말미암는 전유다. 전유를 막기 위해서 목회자 권한을 제한하는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 정관 작성이나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를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유는 개인 문제이기에 앞서 구조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조 개혁을 통해 목회자에 의해 일어나는 전유 문제를 고쳐야 한다. 한국교회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누구 말마따나 100년 넘게 고기를 구워 먹어서 판이 까맣게 탔으니 이제 판을 갈 때다.

신광은 / 열음터교회 목사, 고백아카데미 공동대표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ad47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동영상 기사

default_news_bottom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