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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있는 한국교회를 위하여

리버티대학교 제리 포웰과 보수 개신교의 품격

강도현   기사승인 2018.10.25  18: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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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리버티대학교 졸업생이 함께 왔습니다." 깜짝 놀란 제리 포웰 총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마이크를 건네받은 그 젊은 남성을 쳐다보았습니다. 제리 포웰 총장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청중이 다 놀랐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제가 리버티대학교 졸업생으로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남성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소회를 밝혔습니다. 제리 포웰 총장을 비롯한 리버티대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버티대학교 졸업생이 LGBT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대학교를 다시 찾아왔으니까요.

리버티대학교는 미국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대학은 아닙니다. 올해 미국 대학 순위를 보니 200위권이더군요. 그러나 그 명성만큼은 어느 대학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미국 보수 개신교의 의중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설립자 고 제리 포웰 총장은 보수 개신교를 정치적으로 엮어 낸 분이었고 공화당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공화당 대통령 후보라면 필수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 바로 리버티대학교입니다.

지지난 대선에서는 조금 특별한 일도 있었습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미트 롬니는 몰몬교 신자였습니다. 아무래도 보수 개신교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리버티대학교가 롬니를 초청하여 머뭇거리던 보수 개신교 세력을 다시 결집하게 합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1990년대부터 리버티대학교는 '동성애 합법화 반대'를 정치 이슈화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습니다. 물론 압도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리버티대학교에서 공화당 지지는 곧 신앙과 같은 의미였죠. 평화, 빈곤 퇴치 등 다른 기독교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LGBT를 지지하는 기독교 운동가 그룹이 학교로 초청됐다는 광고를 하더군요.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의견은 다르지만 서로를 향한 폭력에는 함께 반대한다는 캠페인 차원에서 진행하는 행사였습니다. 리버티대학교 학생들도 추첨을 통해 그 모임에 초청됐고 저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행사 당일이 되자 동부의 작은 도시 린치버그에 메이저 언론사가 모두 모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동성 결혼 합법화 논란이 아주 뜨거웠습니다. 이런 행사를 리버티대학교가 열었다는 것 자체가 큰 이슈였죠. 보수 개신교 내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제리 포웰 총장이 변절했다는 비판도 있었고요. 행사 당일 상당한 피케팅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제리 포웰 총장에게 이 행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리버티대학교 졸업생이 나타난 것입니다. 제리 포웰 총장으로서는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고 제리 포웰 총장(1933~2007).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어떻게 보면 행사를 함께 주최한 LGBT 활동가들이 허를 찌른 것이고, 리버티대학교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도발이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저도 긴장하면서 제리 포웰 총장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상황은 생각보다 쉽게 정리됐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제리 포웰 총장은 졸업생을 환영하면서 그 상황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리 포웰 총장의 품격이 빛났습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참 대단한 행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리 포웰 총장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그가 보여 준 정치적 행보를 보면 의심과 비판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보면 제리 포웰 총장의 근본주의적 태도는 기독교 가치를 협소하게 제한할 뿐 아니라 전쟁으로 돈을 버는 세력에게 이용당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게 말해 이용당하는 것이지 전략적 동맹이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고 제리 포웰 총장은 별세하실 때까지 정치적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극단적 정치 편향을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저는 리버티대학교 졸업생으로서 그 입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행사에서 보여 준 그의 품격은 참으로 멋졌습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여유, 논란은 논란대로 날을 세우지만 폭력에 대해서는 함께 반대할 수 있는 품격 말입니다. 지금 리버티대학교 소식을 듣다 보면 그 품격을 잃어버린 것 같아 정말 아쉽습니다.

우리 모습은 어떤지 돌아봅니다. 상대방에게 품격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우스운 일인가요. 그저 제 모습, 우리 모습만 돌아볼 뿐입니다. 저희도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반성할 일이 없는지 성찰하고 지금보다 조금 더 품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조금 더 품격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고민에 고민만 더해지는 가을날,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평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필동에서
대표 강도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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