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제일교회 안대정 목사와 들꽃마당시온교회 김영진 목사. 뉴스앤조이 강도현

지난주 서울신학대학교 '생명목회세미나' 과목을 수강하는 신학대학원생들과 농어촌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대안 목회를 실천하는 목회자들을 만나기 위해 충청남도 보령으로 내려갔다. 언론과 책에 많이 소개된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들꽃마당시온교회' 담임 김영진 목사와 원산도 원의제일교회에서 10여 년 사역하면서 '말통커피'를 통해 대안 목회를 꿈꾸는 안대정 목사를 만났다.

많은 분에게 김영진 목사의 사역을 들어 왔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안대정 목사와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함께 수학한 사이라 가까웠다. 두 분과의 만남, 배움, 대화를 통해 이번 글의 주제를 결정했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이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공공성을 얻고 '선교적 공공 교회론'을 실천하는지 다루고자 한다.

결합과 연결, 사회적 자본

광림교회에서 9월 주최한 '2018 웨슬리 목회 컨퍼런스'에 주 강사로 참석한 영국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마틴 퍼시(Martyn Percy) 학장은 영국 신학계에서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을 비판하는 대표 인물이다. 그의 비평적 관점이 필자의 논문을 발전하게 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되었기에 이번 컨퍼런스에서 그를 만났을 때 기뻤다. 처음 퍼시 학장을 대면하였지만 저작들을 접했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의 신학 발전을 위해 그의 비평을 고맙게 생각한다. 맞는 부분도 있지만 때때로 그가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의 단편만 보고 비판할 때가 있음을 발견한다.

마틴 퍼시 박사는 <이머징 교회 내 새로운 표현들 조사 평가 Evaluating Fresh Expressions Explorations in Emerging Church>에서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을 비판하는 여러 이유를 제시한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비판은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 Boling Alone>을 인용한 대목이다. 퍼트넘은 새로운 교단들(혹은 교회들)이 공동체를 세울 때 외부보다 내부에 관심이 많다고 언급한다. 이 진술에 근거하여, 퍼시는 새로운 교회 모델로서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도 내부 결속력은 강하지만 외부 공동체를 위한 거시적 하부구조인 영적·사회적 자본의 투자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1)

퍼시는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이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 두 가지 종류 중 결합(Bonding) 사회적 자본을 통해 강력한 내부 공동체를 만드는 데는 성공적이지만, 연결(Bridging) 사회적 자본은 부족해 외부 공동체에 공헌하는 데는 소홀하다고 말한다. 이 비판은 영국에서는 통용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이나 미국에 많은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 모델들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공공성'을 토대로 '공동체성'을 세워 나가기 때문에, 결합 또는 연결 사회적 자본 둘 중 하나(Either A or B)가 아니라 결합 그리고 연결 사회적 자본 둘 다(both A and B)에 초점을 맞추어, 'Pro bono publico'(공익을 위하여)를 실천하고 있다.

Pro bono publico

'Pro bono publico'는 라틴어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 단어를 포괄적으로 해석한다면, 어떤 기관이나 개인들이 공익 활동을 통해 사회참여와 재능 기부를 실천하고 공공선을 만드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상대적으로 문화적·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지역에서 교회의 '통전적 자본'을 재능 기부하여 지역사회의 혁신을 위해 노력한다.

또한 다수의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긍정적 '혼합 생태계'(mixed ecology)를 만들고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교회 사사화에 매몰되지 않고 지역사회와 지역 교회들, 교단에 소속한 다른 교회들 및 교단, 비종교 기관들과 협력하고 공익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

영국에서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을 이끄는 마이클 모이나(Michael Moynagh)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들과 전통 교회들이 서로 존중하고 지원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다.2) 사실 상호 협력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필자가 사역했던 미연합감리교회 북앨라배마연회에서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의 성장은 정체된 교단과 지역 공동체에 활력을 주고 있다. 교단과 지역 교회들은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을 지원하고,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도 교단 생태계 안에서 지역 교회들과 협력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이런 면에서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에 사회적·교회적 하부구조(Social and ecclesial infrastructure) 형성을 위한 공헌이 부족하다는 마틴 퍼시의 비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2015년 미국 켄터키주의 가장 큰 도시 루이빌에 위치한 새로운 표현 교회인 '더 테이블'(The Table)에 방문한 적이 있다. 루이빌은 켄터키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만 '더 테이블'은 루이빌에서 가장 낙후된 포틀랜드 애비뉴(Portland Ave)라는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었다. 이 지역은 빈민, 노숙인, 약물중독자가 많이 있는 악명 높은 곳이다. '더 테이블'은 샌드위치와 햄버거를 파는 전형적인 미국 레스토랑처럼 보이지만, 지역사회를 위한 예배와 제자 훈련과 지역 섬김이 있는 교회이다.

'더 테이블'은 지역 경제를 위해 사회적 기업 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수익을 지역사회에 발전과 공동체 형성(the building community)을 위해 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더 테이블'의 매니저 루니 퍼슨(Lonnie Fuson)은 그들의 목적이 지역 이웃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레스토랑 교회의 특이한 점은 '손님이 낼 수 있는 만큼 지불하고 식사를 하는 것'(pat-what-you-can-afford)이다. 지역의 가난한 이웃들은 이곳에서 값싼 가격에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할 수 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부 손님들은 기꺼이 높은 가격을 내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즐기고 있었다. 퍼슨은 또한 지역 도시 선교 목적으로 지역 사람들에게 매주 토요일 점심에 공짜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테이블'은 포틀랜드 애비뉴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였고, '사회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들은 농장에서 테이블로 바로 이어지는 건강한 먹거리 공급으로 지역사회를 섬기고 농촌 경제 발전에도 공헌하며, 사회 하부구조인 사회 경제에 관심을 두고 사역하고 있었다. 포틀랜드 애비뉴 지역과 같이 낙후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있는 곳에서는 전통적 교회보다 '더 테이블'와 같이 사회적 기업 정신으로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는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앞서 언급한 들꽃시온교회 김영진 목사는 교회가 속한 보령시 천북면을 정말 사랑한다. 필자는 그의 Pro bono publico 정신이 지역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영진 목사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목회하고 살면서, 아름다운 섬에 있는 공룡 발자국을 발견하여 그곳을 공룡섬으로 명칭이 바뀌게 만들고 지역 경제를 위해 관광지로 개발되도록 노력했다. 지역에 있는 보물과 같은 풍경 및 장소들을 외부에 소개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김영진 목사는 교회 밖 마을 사람들도 자신의 목회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을에 시골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오랫동안 마을 축제를 진행하면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김영진 목사가 시골 마을에 음악과 문화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그의 처가 음악·미술·연극·시·사진 등 예술에 조예가 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것을 행할 때 즐겁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여 마을 공동체를 풍성하게 하는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안대정 목사 또한 보령시와 원산도를 사랑한다. 처음 원산도 교인들과 지역 경제를 위해 한과 사업을 구상해 시작하였다. 또한 고령의 교인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도록 지역에 요양원을 만들었다. 안대정 목사는 지역 경제를 위해 잘할 수 있고 사랑하는 커피를 통해 커피 벨트를 만들 것을 구상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김영진 목사와 초교파적으로 협력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영진 목사와 안대정 목사는 지역사회 보령의 공익을 위해 지금도 문화적·경제적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선교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안대정 목사가 운영하는 말통커피. 뉴스앤조이 강도현

존 웨슬리의 공공성과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

미국 내 공공신학은 프리스턴대학을 중심으로 한 장로교와 아브라함 카이퍼의 화란 개혁주의를 지지하는 칼뱅주의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웨슬리안들의 공공신학 연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3) 그러나 웨슬리의 공공 분야(특히 사회 경제)에 대한 관심은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 도시 빈민들을 향한 구제 사역과 설교들을 통해 증명된다.

필자의 박사 지도교수이자, 미국 애즈베리신학대학원 전도및교회개척교수인 제이 문 박사(Dr. W. Jay Moon)는 존 웨슬리가 사회적 기업가, 신학자, 옥스퍼드대학 교수로서 현재 금액으로 400~500만 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다고 이야기한다.4) 수익 대부분은 지역사회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갔다. 같은 학교에서 선교적 공공신학을 가르치는 그렉 오케슨(Greg O kesson) 교수도 보건 분야의 사회적 공헌을 언급하며 존 웨슬리를 공공신학자라고 강조한다.5)

존 웨슬리 설교 141편 중 6편이 기독교인들의 공공 공헌을 격려하기 위한 사회 경제 이슈를 다룬다. 그중 '돈의 사용'(The Use of Money)이라는 설교는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저축하고,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줘라"7)는 웨슬리의 경제관과 사회적 기업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마이클 모이나는 존 웨슬리를 역사 안에서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의 실천 모델로 소개한다. 그는 웨슬리 당시인 1739년 브리스틀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도시 이주민이 많이 늘어나고 그들의 빈곤이 사회문제로 드러났다고 언급한다.8) 그때 존 웨슬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도움을 주는 통전적 선교를 시행한다. 웨슬리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공공성을 갖고 공동체를 돌볼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했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존 웨슬리가 당시 사회 공동체를 위해 공공성(publicness)에 초점을 맞췄던 것처럼, 공동체에 기초한 교회(the community-based church)로서 지역사회와 소통한다.

선교적 공공 교회론 실천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린 한국교회에는 공공신학과 선교학·전도신학의 대화, 이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많은 저명한 기독교 윤리학자와 조직신학자가 공공신학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해 왔지만, 선교학자들의 연구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비록 적은 수의 선교학자만이 '공공신학'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선교적 교회 운동'에 신학적 근거를 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공공신학에 관심이 있었다.

레슬리 뉴비긴은 공동선(the common good)에 관심이 없는 아담 스미스식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구조를 비판한다.9) 뉴비긴은 천민자본주의를 따르지 않지만, 그리스도 주권 아래서 공공 영역에 사는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경제적 영역에 참여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10) 뉴비긴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공동체에서 언어적·상호작용적 매개체를 발견해야 한다고 언급한다.11)

무엇보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복음의 해석'(the exegesis of the gospel)을 위해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공공 영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복음의 해석'은 무례한 선교나 전도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공공 영역에 사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언어로 대화·사랑·섬김·환대를 보여 주는 성육신적 선교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선교적 삶을 위해 우리는 공공의 영역으로 보내셨다. 이것이 선교적 공공 교회론의 가장 기본적 개념이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공공 영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복음의 해석'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소통하고 '공공을 위하여' 삶을 살아야 한다. 뉴비긴은 선교는 일방향적이지 않으며 복음을 위해 쌍방향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13) 이런 면에서 선교적 공공 교회론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공공의 목소리(the public voices)를 경청해야 한다.

1) Edited Louise Nelstrop, Martyn Percy, Evaluating Fresh Expressions Explorations in Emerging Church: Responses to the Changing Face of Ecclesiology in the Church of England (Norwich, UK: Canterbury Press, 2008), 34.
2) Michael Moynagh, Church for Every Context: An Introduction to Theology and Practice (London, UK: SCM Press, 2012), 7.
3) 필자는 논문 Sang Rak Joo, Entrepreneurial church planting as a Model of Fresh Expressions in the South Korean Context: Case Studies Exploring Relationships between Church Planting and Social Capital. Ph.D. Dissertation, Asbury Theological Seminary, Wimore, KY, 2017, 43에서 존 웨슬리를 공공신학자로 묘사했다.
4) W. Jay Moon & Fredrick J. Long, Entrepreneurial Church Planting (Nicholasville, KY: digital oral publication), 2018, 11.
5) Greg Okesson, Public Theology for Global Development: A Case Study Dealing with "Health" in Africa, The Asbury Journal 67 (2012).
6) The Use of Money, The Good Steward, The Danger Of Riches , On Riches, The Rich Man And Lazarus, 그리고 Sermon On The Danger Of Increasing Riches
7) John Wesley. "The Use of Money." Luke 16:9 (Sermon). In Sermons of John Wesley, 1872 Edition. Edited by Thomas Jackson. Online text edited by Jennette Descalzo with corrections by George Lyons and further formatting by Ryan Danker for the Wesley Center for Applied Theology at Northwest Nazarene University, Nampa, ID. http://www.umcmission.org/Find-Resources/John-Wesley-Sermons/Sermon-50-The-Use-of-Money
8) Michael Moynagh, Church for Every Context, 43.
9) Lesslie Newbigin. Truth to Tell: The Gospel as public Truth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1), 76.

10) 필자의 논문 Entrepreneurial church planting as a Model of Fresh Expressions, 49.
11) Lesslie Newbigin. Truth to Tell, 50.
12) Entrepreneurial church planting as a Model of Fresh Expressions, 49.
13) Lesslie Newbigin. Truth to Tell,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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