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그는 30년 넘게 담임목사의 충복이었다. 주일예배와 새벽 기도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 봉사에도 열심이었다. 일찍이 담임목사에게 신뢰를 얻은 그는 개척 초기부터 교회 비밀 재정을 관리했다. 수백억대 재정을 주무르며 교회에서 2인자 노릇을 했던 그의 행진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끝이 난다. 정상에서 바닥까지 추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몇 초. 유서에는 "절대 횡령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으로 용서를 구합니다"고 적혀 있었다.

최근 출간된 <신의 대리인, 메슈바>(권무언 지음, 나무옆의자 펴냄)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무언無言은 필명이다. 무명작가가 내놓은 소설 속 장면에서 기시감이 든다. 작가는 소설 형식을 빌려 세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800억대 비자금과 불법 세습 문제를 다뤘다.

책은 비자금 문제와 세습 사태를 다루면서 한국교회 전체를 진단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썩어도 너무 썩었습니다. 교회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내가 아는 한 가장 타락했습니다. 그 중심에 메가처치가 있습니다."(61쪽)

그는 비자금과 세습 문제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가 정작 말하고 싶었던 건 한국교회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이전에 로마 가톨릭 모습으로 변질했다. 돈과 권력을 너무 사랑한다. 대형 교회 목사들은 저마다 교황이 되었고, 교인들은 이들을 신의 대리인처럼 여긴다"고 했다.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무언 작가를 10월 19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제 막 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성남 소재 한 교회에 다니는 60대 남성이었다.

권 작가는 책을 통해 병들어 있는 한국교회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소설 같지 않은 이야기
집필 위해 수년간 취재
"한국교회 문제 다루고 싶었다"

<신의 대리인, 메슈바>는 대성교회에서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김일국 장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담임 명수창 목사가 은닉한 '스페셜 오퍼링', 일명 1000억대 비자금을 30년 넘게 홀로 관리해 왔다. 어느 날, 200억 가까이 투자 손실을 본 김 장로는 명 목사와 장로들에게 의심받기 시작한다.

김일국 장로는 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결국 토요일 오후 명 목사와 면담을 앞두고, 교회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한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김 장로의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발표한다. 그의 죽음으로 드러난 스페셜 오퍼링은 "비공식적으로 보고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헌금"이라고 해명한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교인들이 모르는 수백억대 자금을 관리한 재정장로 사건 외에도 주요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을 연상하게 한다. 경상북도 S군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명수창 목사. 그는 서울 송파구 변두리에서 대성교회를 개척해, 30년 만에 등록 교인 12만 명을 자랑하는 메가처치로 만든다.

명수창 목사를 보좌하는 심복 '심종수' 장로, 언론에 비자금 의혹 기사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법무법인 '로직스', 명수창 목사의 세습을 반대하다 노회에서 면직·출교된 '박세운' 목사 등도 소설에 등장한다.

책에는 대성교회 공동의회 장면도 나온다. 대성교회와 새대성교회 합병 및 명정환 목사(명수창 목사의 장남) 청빙안을 통과시키는데, 이때 찬성자 비율이 74%다. 2017년 3월 명성교회 공동의회에서도 74%가 찬성해 새노래명성교회와의 합병 및 김하나 목사 청빙안이 통과됐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허구다. 설령 실제 인물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중략) 그럼에도 이 책은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 늘 그렇듯 나의 상상력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은 이 책보다 더 심하고 더 역겹다." (<신의 대리인, 메슈바> '작가의 말'에서)

권무언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했다고 했다. 1890년대부터 5대째 신앙을 잇고 있는 그의 집안에는 목회자만 여러 명이다. 가족들 중에는 명성교회 교인도 있었다. 그는 이들을 통해서 명성교회 내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교회와 거래하고 있는 금융권 담당자와 인근 재래시장 관계자를 만나 비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조사하기도 했다.

권 작가의 취재 노트. 수년간 여러 사람을 만나며 교회와 관련한 정보를 모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그는 "재정장로의 죽음은 교인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를 둘러싼 비자금 의혹도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이슈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명성교회 교인들은 잠잠했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더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취재해서 모은 정보는 퍼즐 조각과 같았다. 권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그는 "교회 비자금이나 세습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한국 기독교 전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교회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풍요는 역설적으로 악마의 작품일 수 있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가난하고 불편했을 때 넘쳤던 영성이, 점차 풍요로워지면서 영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탐욕이 자라나면서 물질이 교회를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간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1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풍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10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376쪽)

"고속 성장한 한국교회, 고도비만 상태
목사는 여전히 축복 외치고, 교인들은 '아멘'
'무지의 이중창' 보는 듯"

'메시아'가 아니라 '메슈바'다. 히브리어로 '변절'을 의미한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권 작가는 한국 개신교가 성장과 축복만을 강조하면서 결국은 고도비만 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책을 쓰면서 여러 대형 교회 목사의 설교를 찾아 들었다. 1970~1980년대 한국교회가 그렇게 외쳤던 성장과 축복을 지금도 강조하더라. 거기에 교인들은 하나같이 '아멘'이라고 화답했다. '무지의 이중창'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유명 목사들은 한국에 1000만 기독교인이 있다고 자랑한다. 그런 교회를 세상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장로 대통령과 기독교인 총리, 국회의원 등을 배출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들을 보면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게 창피하다. 목사들부터가 법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멸하고 무시한다."

그는 교인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목사가 약속을 안 지키고 교회 돈을 횡령하는데 교인들은 어째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목사를 신의 대리인처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신앙의 길,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하는 사이에 그녀는 이윽고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신앙은 교회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신앙은 세상으로 흘러가야 하고 세상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바로 그거였다. 당당한 평신도를 한 명 한 명 길러 내는 일. 목사에도 당당하고 세상에도 당당한 신앙인을 육성해야 한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없었다. 우선 자신을 추스르는 게 먼저였다." (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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